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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Jan 01. 2021

감사할 수 있어 감사

2020년을 뒤돌아보며

"로봇감정"

나는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사람이다. 이는 예전부터 지인들을 통해 많이 들었는데 예를 들면, 나는 영화보기를 매우 즐기고 감명도 많이 받지만 그 감동이 눈물로 연결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 결혼 후 석달간 옆에서 나를 유심히 관찰한 아내는 나에게 '로봇감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정도로, 나는 감정 변화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괜히 특이단순섬세를 추구하는 건 아닌가 보다 (더 궁금한 사람은 https://brunch.co.kr/@yeah2o/1 "덤"을 읽어보시길). 


하지만 이런 '로봇감정'인 내게도 한 해를 마무리할 때 항상 드는 감정이 있다. 


올해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 그리고 올해는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대답 못하는 아쉬움. 언제부턴가 생일을 기점으로 연말마다, 반복해서 든 감정이다. 결국엔 내가 더 치열하게 악착같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가지 못해서 든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이 싫어 새해가 되면 혹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노트에 적어보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고 싶은 바들을. 올해는 노트를 몇 장 넘기다 과거의 기록들을 뒤돌아보며 내가 잊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런데 2020년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감정은 허무함도 아쉬움도 아닌 감사함이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다면 내가 정말 로봇이겠지만 감사함이 다른 감정이 설 자리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작년과 같은 관점으로 올해를 돌아봤다면 아쉬움에 허무함으로 가득 찼을 것 같다. 원래 목표로 했던 직장 내 커리어 전환, 책 저술은 정체되어 있고 지인들과 물리적 만남, 자유로운 여행 등 평소에 하던 일들조차 하나 제대로 못하고 지나친 것 같은 한해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할 것 같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아프지 않고, 재택근무도 잘하고 있고, 인생에서 가장 큰 중대사로 일컬어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또한 했기에 크게 감사한 점도 있지만, 올해는 나의 삶을 평가하는 척도가 달라진 점이 이런 감정의 변화를 불러온 것 같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결혼생활에서 비롯됨). 


감사할 수 있어 감사!

새로운 친구/공동체가 생겨 감사 

친구/공동체의 기쁨/슬픔을 나눌 수 있어 감사

서로 기도해 줄 수 있어 감사


같은 일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

그동안 전 세계를 건강하게 다닐 수 있어 감사

회사를 통해서도 후원을 할 수 있어 감사


가족/친구/지인들에게 자녀가 생겨 감사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감사

항상 연락 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


새로운 꿈/환상을 볼 수 있어 감사

부족함을 매일매일 깨달을 수 있어 감사

다시 주님 만날 수 있어 감사

 

무엇보다 아쉬움의 관점이 아닌 감사함의 눈으로 2020년 한 해를 뒤돌아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상황과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이런 나의 변화된 감정을 잘 담고 있는 송명희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부른 것을) 나누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8aKCyFzZvI

(조회수가 높은 광고가 없는 버전으로 나누어봅니다)

새해에도 감사와 웃음으로~

"로봇감정"을 지닌 나에게도 새해에는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할 수 있는 덜 딱딱한 로봇이 되길 바라면서.

(2020년 마지막 아침식사, 워싱턴 DC 우들리파크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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