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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이호성 Jan 09. 2021

신과함께 발단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 SWDC 

2015년 여름의 끝자락, 빌바오의 도시 경제를 살렸다고 평가받는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앞에서 나의 카메라 셔터는 계속 움직였다. 피사체는 건축학도였던 내가 방문해 보고 싶었던 프랭크 게리의 건물이 아닌 나의 스페인 여행에 동행한 신발이었다. 중학생 시절 육상을 지속할 수 없어, 그것이 한이 되어 신발(스니커즈)을 좋아하게 된 나에게 신발사진은 세계의 모습을 기록하는 새로운 취미의 시작이었다. 신과함께 발단. 




기억의 박스 속 추억

한동안 잊고 있었다. 신발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그리고 다시 뉴욕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커리어와 나의 신발에 대한 열정은 각기 다른 길을 가는 듯했다, 아니 점 점 잊혔다. 뉴욕에서 디씨로 넘어오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그것을 일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현 회사에서 더 성장하고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모르겠다는 다소 씁쓸한 감정도 가져가면서.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한 때 내 관심의 중심에 있던 신발은 기억의 박스 속에 담겨 추억으로만 남는 듯싶었다.   


Nike Air Max 95 Ultra Jacquard

회사에서 새로운 부서로 옮기면서 금전적인 여유가 조금 생기자 이는 곧 한동안 뜸했던 신발 구매로 이어졌다. 나는 나이키의 에에 맥스 시리즈들을 좋아했지만, AM95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었는데 마침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어 바로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SWOOSH가 작은 신발이 멋지다는 선입견이 가지고 있는데 이 신발은 로고가 작아서 맘에 들었다. 요새는 특히 나이키에서 로고가 작은 신발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https://brunch.co.kr/@yeah2o/10)  

지금은 모습이 많이 바뀐 SWDC APT안에서 바라본 디씨

2015년 여름 DC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위해 신발들을 정리하다 새로 산 AM95를 창가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두면 어떨까 싶어 그냥 찍어보았다. 혼자 있으니 뭔가 쓸쓸해 보여 다른 신발들도 같이 올려 보았다. AM95를 중심으로 하나씩 배치를 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야외 수영장이 보이게도 찍어보고, 앞 동 아파트가 보이게도 찍어보았다 (타이틀 사진 참조 https://brunch.co.kr/@yeah2o/3). 


지금 돌아보면 뭔가 조금씩 아쉬운 아마추어 같은 신발사진들이지만,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나의 신발사진 찍기 취미가, 세계 곳곳을 도시들을 배경으로 돌아다니면서.  

SWDC APT에서 Glover Park APT로 이사 가기 전, 작별을 고한 몇 친구들과 함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 직후 부모님과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AM95도 같이 따라갔다. 학부생 시절 건축과 수업 과제 중 하나였던 뮤지엄 설계를 위해 사례로 보았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을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궁금했던 건축물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삶에 치여 잃어버렸던 신발에 대한 열정을 이곳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표출할 방법을 발견했다. 


무의식적으로 AM95와 카메라를 들고 건물에서 나와 구겐하임 뮤지엄을 배경으로 신발과 멋지게 어우러진 사진을 찍고자 열심히 찍고 또 찍었다. 100장 이상 다양한 구도로 셔터를 눌렀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은 아래 하나뿐인 것 같다. 이것도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화질이 조금 아쉽지만.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래 신발 사진의 종아리 같아 보이는 다리가 루이스 부르주아 작가의 거미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나는 일본 도쿄 (2016), 캐나다 오타와(2017)에 있는 부르주아의 거미들에게도 나의 신발들을 신겨주었다 (추후 포스트들에 등장할 예정). 

구겐하임 뮤지엄으로 걸어가는 역동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AM95를 신은 거미 다리가

첫 사진 포스팅은 이곳에 https://www.instagram.com/p/7BZ9JSIAm3/


2016년부터 약 1년간은 나의 인스타에는 신발 사진들만 올렸다 그것도 한 달에 한번 9장씩. 매번 업로드 시 나를 unfollow 하는 지인들도 꽤 생기기도 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신발 사진의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업로드하던 시절이다. 한동안 코비드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 신발 사진 촬영 작업을 못했지만, 다시 시작할 날을 고대하며 그동안 나의 신과함께 한 사진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보려고 한다. 


[2021.01.08에 오린 글 2023.03.05에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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