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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xaramius Apr 20. 2017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by Rebecca Skloot

(한국어판 제목: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문학동네)

(책 제목이 30자 제한으로 인해서 잘렸습니다.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인데...)


‘HeLa 세포’에 관한 책입니다.


생물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이 세포에 대한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과학자들이 환영했습니다. 이 주제만큼 과학/과학철학/과학윤리/인종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도 없거든요. 처음 나왔을 때 Science, Nature는 물론 다른 매체에서도 꽤 비중 있게 소개했다고 기억합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신입생들에게 꼭 읽으라고 권유했었구요. 그럴 정도로 대단한 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HeLa 세포란?


HeLa 세포는 세포생물학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시험관에서 키우게 된 사람 세포거든요. 독이나 약의 효과,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알아보고자 할 때 사람에게 직접 실험할 수 없으니 그 대신 인간의 세포를 배양해서 실험을 합니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사람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워서 실험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실험실에서 키우면 세포가 너무 빨리 죽었거든요. 그런데 HeLa 세포가 등장해서 이런 실험들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포를 이용한 대표적인 과학적 업적(?)이라면 Polio 백신 (지난 글 참고) 개발이 있겠고, 그 외에도 HIV를 비롯한 많은 바이러스 관련 연구나 암의 기전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가 이 세포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세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세포를 얻는 과정에서 있었던 윤리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이 세포는 Henrietta Lacks라는 암 환자의 세포에서 얻었습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George Gey라는 의사와 함께 일하던 연구원이 Lacks의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그녀의 암세포를 떼어내서 실험실에서 기르던 중, 이 암세포의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다른 세포와는 달리 죽지 않고 계속 분열하는 거죠. 이 특징을 발견한 Gey는 이 세포의 특징을 잘 살린다면 다른 연구에 잘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HeLa 세포가 전 세계에 있는 실험실에 널리 쓰이게 되고 나중에는 이 세포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기업도 생겨납니다. 문제는, 환자인 Lacks와 그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거죠. 


당시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세포를 떼어내서 실험실에서 쓰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당신, 또는 당신 가족의 세포가 이런이런 연구에 쓰려고 하는데 동의해달라는 요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이렇게 해서 전 세계에 있는 실험실에서 HeLa 세포로 각종 실험할 때까지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Henrietta의 가족들은 생물학에 대해 거의 모르기 때문에 Henrietta의 세포가 살아있으니 그녀가 아직도 살아 있고 각종 이상한 연구에 이용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차차 바뀌게 됩니다.) 현재까지도 그녀의 가족들은 수많은 연구에 이용된 HeLa 세포의 존재를 자신들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말하면서 환자들의 자신의 세포/조직에 관한 권리와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제한/걸림돌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알려줍니다.



법적인 문제?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겠죠. 실제로 John Moore라는 사람이 자신의 암세포를 이용해서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세포를 만들고 상업적으로 판매한 UCLA를 고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법원에서는 ‘한번 자기 몸에서 버려진 세포는 자신의 것이 아니며 거기서 얻은 금전적 이익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해서 환자의 권리 대신 과학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절차적 복잡함때문에 과학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 준 게 크죠. (단 금전적인 이익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합니다.) 지금에 이 결정을 다시 내려야 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보다 유전정보를 얻는 기술이 발달한지라 다시 법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책 출판 이후 이야기


이 책이 나온 것이 2010년이고, 이 책 덕분에 과학과 윤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과연 과학계는 그 뒤로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2013년, HeLa 세포의 지놈 정보에 관한 논문이 출판될 예정에 있었습니다. 이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은 Henrietta의 유전정보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의 유전정보 일부도 공개된다는 얘기죠.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논문처럼 무제한으로 공개할 것이냐 아니면 Henrietta의 가족들의 사적인 정보를 존중해서 공개하지 않을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 국립 보건원 (NIH)의 Director로 있는 Francis Collins가 나서서 제한적으로 유전 정보를 공개하고, 연구에 사용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Henrietta의 가족들을 포함한 위원회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요즘 시대에 원하면 이런 정보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요.) 



좋은 소재. 살짝 아쉬운.


확실히 이 책은 과학 윤리 문제와 인종에 관한 문제에 많은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Henrietta가 흑인 여성이라는 점도 이 논쟁에 큰 부분을 차지하죠. (Henrietta가 백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실제 책을 보면 저자가 환자의 가족을 어떻게 만났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서 대화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후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덕분에 HeLa 세포의 과학적인 위치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소홀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있기는 합니다만 너무 기초적인 수준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과학자들 나쁘네, 자기들의 연구 욕심 때문에 환자의 세포를 마음대로 사용하다니!’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얘기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HeLa 세포는 당시 세포를 이용한 연구에 한계를 느꼈던 많은 연구자들에게 그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과학의 발전과 질병의 이해, 치료에 엄청난 도약을 마련해 주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윤리적 문제가 있으면 과학자들과 다른 전문가들이 잘 의논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p.s. HeLa는 /hiːlɑː/ 라고 읽습니다.

p.s.2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번 주에 나온다고 합니다. Oprah Winfrey가 Henrietta의 딸인 Deborah Lacks 역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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