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여성 패션, '해방의 시작'
나에게 패션디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시장의 '베스트셀러'를 제작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나의 온전한 꿈이 었다면 아마 나는 석사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왜 패션디자인을 하는지 무엇을 정말 하기를 원하는지 진정성을 찾고 싶었다. 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들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내가 사회 운동가나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형태로 목소리를 내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선례의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디자인의 애매모호한 선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들의 작품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사적 산물이다.
Flapper(플래퍼)의 등장
1920년대는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의 시대이다. 강렬하고 충격적인 스타일의 등장과 새로운 여성성을 표현하는 패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20년대 패션은 여성의 몸의 해방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다. 1차 세계 대전이 서서히 끝나가면서, 변화하는 스타일의 새로운 여성 패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코르셋은 사라져 갔고 발목이 보이지 않던 스커트의 길이도 점점 짧아졌으며, 드레스의 허리선은 눈으로 어디가 허리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 당시에는 아주 충격적이었던 짧은 단발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진한 화장으로 자신들의 얼굴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볼륨을 찾아볼 수 없는 슬림한 실루엣의 소년들 같았고, 이들을 사람들은 'Flapper(플래퍼)'라고 불렀다.
'Good Time Girl'
They smoked cigarettes, drank cocktails(were not in the least ashamed of being occasionally ‘blotto’), roused lips. They also started painting themselves. The other thing that shocked elderly people was the zeal of the modern geal for cutting off her hair. (Laver, 1964, 'Women's dress in the Jazz Age', p.9-12 )
그들은 담배를 피웠고, 칵테일을 즐겼으며(종종 '꽐라'가 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한 재즈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진한 화장을 하기 시작했으며
아주 짧은 단발머리는 어르신들에게 가히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들은 남자처럼 대담하게 행동했으며
한편으론 건방지고 재치 있으며 뻔뻔스러운 태도를 가진 여성들이었다.
이 시대는 페미니즘의 시발점과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1900년대 초반의 여성 투표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패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평등권'과 동일 선상에 놓여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은 남성과 삶의 모든 측면에서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났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힐러리 클린턴의 인터뷰를 인용하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xj-VSex4vQ
"I am always a little bit puzzled when any woman in whatever age, particularly young women, said something like you’ve heard it, I believe in equal rights but I am not a feminist. A feminist is by a definition someone who believe in equal rights. I am hoping that people will not be afraid to say that. That doesn’t mean you hate men. It doesn’t mean that you want to separate out the world so that you’re not part of the ordinary life that’s not what it means at all. It just means that we believe women have the same rights as men politically culturally socially economically. That’s what it means."
"나는 항상 좀 이해를 못하겠어요, 아마 당신도 들어보았을 거예요. 어떤 여성들이든 특별히 젊은 여성들이 '나는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야.'라고 말할 때요. 페미니스트란 정의에 따르면요, 평등한 권리를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왜냐하면 이 뜻은 당신이 남자를 혐오한다는 뜻도 아니고, 평범한 삶을 떠나 세상에서 동떨어져 살길 원한다는 뜻도 아니에요. 페미니스트라 함은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거예요."
도도한 그녀들의 당당한 태도
전쟁직 후, 많은 것들이 전쟁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 갔으나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여성들의 태도이다. 전쟁 이전에는 여성들이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특히 아가씨들은 남성 보호자를 어딜 가든 동반하여야 했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쟁은 여성들을 강하고 독립적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 그녀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현상은 많은 여성들이 당당하게 도시를 거닐게 하였으며 여성의 사회적 인식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Even the names of cocktails sounded an alarming notes in the ears of moralist. ’Bosom’,’Caresser’,’Maiden’s’,’Blush’,‘Widow’s Kiss’,’Glad Eye’,’Between the Sheet’. Surely drinks with names like these should not be consumed with impunity by respectable young women. The cocktail shacker become almost the symbol of the age.’
(Laver, 1964, 'Women's dress in the Jazz Age', p.33 )
심지어 칵테일의 이름도 쇼킹했다.
'가슴', '애무하는 사람', '처녀의 것', '미망인의 키스', '만족스러운 눈', '침대보 사이에' 물론 이런 이름의 칵테일들은 고상한 아가씨들에게 처벌 없이 소비되어선 안되었지만 말이다. 칵테일 제조는 이 시대의 대표적 심벌이 되었다.
Designs by Jacques Doucet, 1924-25
그 시대의 모든 여성이 플래퍼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플래퍼의 등장과 이 새로운 여성시대의 개막은 사회적 변화와 패션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한다. 코르셋의 종말을 가져온 굴곡 없고 날씬한 혁신적인 실루엣은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에 의해서 처음 소개되었고,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 Coco Chanel)에 의해 점점 더 발전했으며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유행으로 번져 나갔다. 이 선구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스타일은 당대의 여성에게 몸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 준 선물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코코샤넬과 그녀의 초기 디자인
글: Emma park
A list of illustrations and a list of references
are available upon requ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