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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aucy Apr 06. 2017

패션과 페미니즘 #4

The Age of Jazz,  1920년대 패션의 특징

 요즘 런던에서 한국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 여성들의 페미니즘의 대한 의식이 점점 높아져 간다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 접할 수 있는 '코르셋 벗기' 운동 또한 얼마나 우리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향해 진보하였는지 보여준다. 가끔 읽게 되는 사설과 인터넷상의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글, 그리고 많은 책들을 보며 느껴지는 페미니즘의 온도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비단 이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페미니즘 운동이 불고 있으며, 허핑턴 포스트는 이를 제3의 페미니즘의 물결로 일컫었다.

‘The third wave offeminism is now, and it is intersectional.’ (Land, 2013) http://www.huffingtonpost.com/entry/the-third-wave-of-feminism-is-now-and-it-is-intersectional_us_586ac501e4b04d7df167d6a8


하이패션 브랜드 크리스천 디올(Christian Dior)에서는 2017년 Spring/Summer 컬렉션에서 "We Should All Be Feminists"이라는 슬로건 티셔츠를 런웨이에 선보이며 페미니즘을 지지했다. 또한 이에 앞서 샤넬(Chanel)의 2015년 Spring/Summer 컬렉션에서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는 엠마왓슨의 UN 캠페인 "History is Her Stroy"를 보고, 이 운동에 동참하며 패션 런웨이 무대로 옮겨 목소리를 전달했다.

Christian Dior, Spring/Summer Collection, 2017

http://www.vogue.com/fashion-shows/spring-2017-ready-to-wear/christian-dior/slideshow/collection#18         


Chanel, Spring/Summer collection, 2015
Street protest – SS15
거리의 시위
Karl’s take on Sixties street protests came with a feminist update and a whole heap of controversy. He took Emma Watson’s History is Her Story UN campaign and ran with it
칼 라거펠트(샤넬 수석 디자이너)는 1960년대의 페미니스트 시위를 새롭게 런웨이에 선보였다. 그는 엠마왓슨의 "Histroy is Her Story" UN 캠페인을 보고서 이에 동참하였다

출처: http://www.marieclaire.co.uk/fashion/best-ever-chanel-catwalk-moments-105827
UN Women Goodwill Ambassador Emma Watson at a special event for the HeForShe campaign

https://www.youtube.com/watch?v=gkjW9PZBRfk(UN원본)

https://www.youtube.com/watch?v=I_JPEYnw8-w (한국어 자막)

For the record, feminism by definition is: “The belief that men and women should have equal rights and opportunities. It is the theory of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equality of the sexes.” I started questioning gender-based assumptions when at eight I was confused at being called “bossy,” because I wanted to direct the plays we would put on for our parents—but the boys were not. When at 14 I started being sexualized by certain elements of the press. When at 15 my girlfriends started dropping out of their sports teams because they didn’t want to appear “muscly.” When at 18 my male friends were unable to express their feelings. I decided I was a feminist and this seemed uncomplicated to me. But my recent research has shown me that feminism has become an unpopular word. Apparently I am among the ranks of women whose expressions are seen as too strong, too aggressive, isolating, anti-men and, unattractive. Why is the word such an uncomfortable one?(...) We are struggling for a uniting word but the good news is we have a uniting movement. It is called HeForShe. I am inviting you to step forward, to be seen to speak up, to be the "he" for "she". And to ask yourself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

아셔야 하는 건요, 페미니즘의 정의에 따면, 남자와 여자는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에요. 이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을 모든 성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이론이지요. 전 성관련에 억측에 대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제가 여덟 살 때는 "Bossy(두목 노릇 하는, 여자들이 거들먹거린다는 뉘앙스)"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웠어요. 왜냐면 저는 제가 직접 연기를 감독하고 싶었어요 부모님들이 해줄 법한 일이지만, 그렇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불리지 않았어요. 제가 14살 때는 언론과 매체에 의해 성적 대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15살 때는, 제 여자 친구들은 그들이 속한 스포츠팀에서 탈퇴하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그녀들은 "근육질"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18살 때는, 제 남자 친구들은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저한테는 이것이 분명했어요. 그러나, 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요, 페미니즘은 인기가 없는 단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분명하게도, 저는 보기에 너무 기쎄고, 너무 공격적이고, 혼자 고립시키며, 남자를 싫어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이라는 랭킹들에 속해있어요.  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불편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단어(페미니즘)를 연합하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은요, 우리에겐 연합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He For She (그녀를 위한 그)"라고 불립니다. 저는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당신을 드러내고,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요. 그리고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나도 페미니즘을 직접 패션과 엮으며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석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였지만, "패션과 페미니즘"을 연재하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나의 포스팅을 접할 독자들에게 서양에서 이미 100여 년 전에 시작된 페미니즘의 역사과 방향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더 정제된 정보와 견해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이제야 페미니즘에 민감해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런던에서 접하면서 느꼈던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명백히 '여성 혐오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묻지 마 살인, 정신병에 의한, 우발적인' 등등의 갖은 수식어를 붙이며 언론과 매체는 이를 얕게 숨기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필자가 안타까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한국 여성들은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한 친구와 페미니즘에 관련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 나는 페미니즘 관심도 없고, 남자 좋아해요. 나는 페미니스트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순간 너무 답답했던지 나도 모르게 욱하며 그녀를 쏘아붙였다. " 그럼 당신은 여성 인권이 평등해지는 걸 바라면 안 되겠네요?, 페미니스트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요, 여성들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남자와 동등해져야 한다는 것을 지지하는 거예요. 그럼 당신은 당신의 회사에서 불평등한 임금 차이가 있을 때 불만을 제기할 필요가 없겠는 걸요? "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것인지 몰랐어요." 비단, 이 친구뿐일까? 나는 아직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숭고한 권리에 몇몇은 무임승차하며 그 권리를 누릴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남과 여의 대결로 바라보고, 행여나 남자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여성의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싸운다면, 이 뜨거운 감자가 식지 않는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금 품어본다.



4. 스포츠, 레저 패션의 도래

- 스포츠 패션은 원래 일종의 "멤버"들만 즐길 수 있었다. 사회의 "엘리트"들은 전쟁 동안, 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이 후 새롭게 자유를 누리게 된 여성계층은 진취적으로 골프, 스케이트, 사냥, 스키, 승마와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한다.

-  1920년에 샤넬은 Jergey(저지)라는 소재를 자신의 디자인에 사용하여 세상에 소개하였고 이를 그녀의 방식대로 해석하여 남성복의 테일러링 기술에 저지를 적용 시키며 활동성이 좋은 옷을 선보이며 여성들의 몸에 대한 해방에 기여를 한다.

- 자동차 산업도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며, 여성들을 그들의 새로운 고객으로 타겟팅 하기 시작했다.

- 이 시기에 수영이 인기 많은 스포츠가 되었고, 1912년에 최초로 여성의 올림픽 게임 출전이 승인되었다. 좋은 성적들을 거두게 되면서 수영복 디자인이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울 저지(Woolen Jersey)의 소매 없는 탱크 탑 수영복, 화려한 패턴과 다양한 컬러의 탄력이 좋은 소재의 옷들이 선보여졌다.

- "Bathing Belle"라는 아이콘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녀의 선망적인 모습과 매혹적인 외모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이는 대중의 수영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데 기여하였다.    

-공공수영장이 여성들에게도 오픈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의 수영장은 1930년대까지 여성 출입에 제한을 두기도 하였다.  

... the “Bathing Belle”  was an aspirational figure and look  Her popularity increased interests for swimming.(Fiell and Dirix,2011, p.29-30)  
Tennis wear, The 1920S, '1920년대 재즈의 시대'(The 1920s Jazz Age), Fashion and Textile Museum,London
Resort wear, The 1920S, '1920년대 재즈의 시대'(The 1920s Jazz Age), Fashion and Textile Museum,London





5. 다리를 드러낸 그녀들

치마가 점점 짧아지게 되면서, 스타킹과 신발은 중요한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24년 이전에는 많지 않은 여성들만이 스타킹을 신었으며, 그마저도 검은색이나 어두운 컬러 톤의 스타킹이 평범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Seam(마감선)이 스타킹의 뒷부분에 보였다. 1924년 이후에는, 살색 스타킹이 다양한 톤으로 출시되었다. 마감선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고, 기술의 발달로 인해 여성의 다리는 더욱 드러나게 되면서 보수적인 대중들을 놀라게 하였다.

 The seam at the back was developed. It caused nudity exposed out , which  shocked moralists. (Laver,1964, p25)

부츠는 일하는 여성들에 의해 많이 신겨졌으며, T스트랩과 발등을 가로지르는 크로스 스트랩의 하이힐 슈즈가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신발과 발등 위에 착용하는 주얼리가 다양한 형태로 유행하게 된다.


Stockings, '1920년대 재즈의 시대'(The 1920s Jazz Age), Fashion and Textile Museum,London





6. 헤어와 헤어 액세서리


단발머리는 이 시대의 심벌이 된다. 단발머리가 한순간에 바로 유행이 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웨이브 컷의 단발머리를 시작으로 점점 아주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1920년대 중반에 유행으로 번져가게 된다. 1920년대의 "단발머리"라는 정의로 내려지는 스타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 단발머리의 스타일은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단발머리를 돋보이게 해 주는 크로셰 모자와 터번, 헤어밴드, 헤어 스카프 등이 이 시기에 유행하게 된다. 단발머리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스타일이었다. "여자가 짧은 머리라니? 레이디는 그러면 안돼."라는 보수적인 생각들이 만연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발머리 스타일은 플래퍼들의 상징이자 1920년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심벌이 되었다.

Hair Styles of The 1920S
'1920년대 재즈의 시대'(The 1920s Jazz Age), Fashion and Textile Museum,London







7. 란제리(속옷)의 변화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코르셋에 대한 해방을 그의 새로운 디자인과 함께 이루어 내었다. 이 곡선 없는 스트레이트 실루엣은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동시에 패셔너블한 스타일로 여겨졌다. 이 실루엣은 후에 많은 동시대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더욱 발전하였고 20년대의 유행의 큰 물결을 일으켰다. 코르셋의 제거와 함께 여성의 몸을 편하게 하는 속옷, 그리고 이 날씬하고 직선적인 디자인의 옷을 돋보이게 하는 보정속옷 등 여러 방면으로 란제리의 발달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이전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오리엔탈리즘이 란제리와 결합하면서 패턴과 스타일에 적용된다.

The1920s lingeries board
"Undressed", 1920년대 언더웨어, V&A뮤지엄, 런던







여성 패션은 페미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의 패션이 매혹적인 것은 단순히 보이는 화려함 뿐만 아니라, 코르셋의 해방과 함께 여성 인권의 변화가 이루어진 시대상이 패션에 고스란히 담겨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시대의 패션이 당대의 특징을 담고 있을 테지만, 플래퍼의 모습과 이전 시대와는 180도 다른 충격적인 패션의 도래가 이루어진 시기, 역사상 처음으로 페미니즘을 반영한 스타일이기에 1920년대의 패션 탐구는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있다.






글: Emma park

A list of Illustrations and a list of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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