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해파리]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딱 10년 전에 친구가 흔드는 팔에 맞아 입술이 터진 적이 있다.
그리 세진 않았지만 워낙 입술 살이 다른 곳보다 얇다 보니 피가 났고 나도, 그 친구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 학교 자판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거기서 친구가 미안하다면서 작은 캔 오렌지주스를 사줬다. 생일 때 받는 작은 선물들 말고, 미안해서 주는 작은 것을 이때 처음 받아봤다.
대단한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었지만 참 신기한 기분이었고 '미안하다고 무언가 줄 수도 있구나'라는 (그때 당시) 상당히 어른스러운 행동에 감탄했다. 그게 고작 육백 원짜리 였지만 말이다.
사실 미안하다는 말, 괜찮냐는 말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요즘엔 미안해서 주는 무언가보다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 더 비싸다.
작년 11월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는데, 내 생일날 우리 집에 찾아와 준 친구가 있다. 이때 코로나 핑계, 백수 핑계 대가면서 하루, 일주일 그렇게 몇 달을 밀렸던 내 선물이 너무 부끄러웠고 빨리 선물을 골라 샀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그 물건을 골라 재빨리 결제했다.
한동안 지인들의 경사에 기프티콘을 보낸고, 취업한 친구들에게 슬리퍼를 사주는 일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이들의 기쁨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나?' 돌이켜보게 됐다.
가끔 야밤에 그 진심을 줄 수 없어서 선물들을 사보 낸 건가 혼자 의심을 하곤 했다.
때론 내 정성이 보이는 선물이 되기도 하지만 진심이 통하는 말이 먼저였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보다 물건들이 점점 값싸지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