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단어이기도 하고. 읽는 내내 ‘죽음’을 떠올렸다.
이제 세상 이치를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부고를 듣는다. (...) 이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이제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알 것만도 같았던 삶과 세계를 갑자기 불가사의한 것으로 만든다. 이 세계는 결코 전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어떤 불가해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 우리의 삶이란 불가해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태로운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일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中
인생은 곧 고통이라 생각했다. 사람마다 고유의 가치관에 따라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알고있는 명제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모든 것은 소멸한다.’이지 않나. 인생에서 죽음은 필연이다. 죽음은 고통스럽다. 죽은 자에게든, 살아 남아있는 자에게든.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고통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죽음(고통스러운 일)은 필연이지만, 살면서 기쁜 일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기쁜 일’은 우연적이다.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일은 필연이고, 기쁜 일은 우연이라면 산다는 그 자체가 고통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래서 우연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그 기쁨을 마음껏 즐겨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깎아지른 벼랑도 그 바로 앞에 서 있을 때나 무섭지,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아름답게 보인다. 풍랑 한가운데 있는 선원들은 공포에 사로잡힐지 모르지만,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다. (...)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中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왜 이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피와 불이다. 스케일링을 잘못 받아 아침마다 밤사이 입에 고여있던 피를 뱉어내며, 피의 새빨감이, 그 질감과 형태와 빛깔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불도 마찬가지다. 휘어지는 불길과 흩어지는 불씨, 짙고 옅어지는 색이 아름답다. 피와 불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요소이지 않은가. 공포와 아름다움은 맞닿아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마침 신경미학(뇌과학) 관련 강연을 신청해두었다. 뇌과학적으로 아름다움을 어떻게 느끼는 지 질문을 품고 잘 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