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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Sep 21. 2015

밝음과 어둠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인생이지만,



                                                                                                                                                                                                                                                                      

창문이 있지만 볕 따위는 들지 않는 반지하방과 창문이 없지만 지상의 공기로 숨 쉴 수 있는 고시원 사이.


아주 자극적이고 맛있지만 몸에 좋을 리 없는 인스턴트 음식과 아주 맛없고 밍밍하지만 몸에는 좋은 음식 사이.


내게 주어진 선택지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어떤 걸 택해도 조금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를테면 똥으로 만든 카레와 카레맛 똥(!)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같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골라야 하는 온전치 못한 선택지들만이 내 몫이었다.





이건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삶을 이루고 있는 '지질함'과 '우울'과 '어둠'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내게 주어지는 썩은 과일 중에서 '차악'을 골라내야 했고, 그나마 덜 지질한 것들을 골라 내 삶을 채워왔다.

 

지질하거나 덜 지질하거나 어쨌든 지질한 건 매한가지므로 내 삶은 굴욕과 부끄러움과 그 이후에 찹쌀떡처럼 딸려오는 후회 가득한 반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할 수 있다.


쨌든 나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온,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내 속의 어둠과 우울을 사랑한다. 


실패와 우울과 그늘, 미련 같은 조금 부족한 단어들과 소주를 나눠마시며, 그렇게 살아왔기에 내가 쓰는 글은 모두 그런 것들로부터 온다. 



긍정이나 희망은 공수표 남발하듯 찬양하면서 인간 본연의 어둠은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들을 보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진짜 긍정할 수 없는 순간에 밝음만을 사랑하는 그들은 어디로 숨어들까. 


그런 친구들에겐 언제나 완벽한 선택지만 주어졌나 싶어 억울한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애매한 선택지 사이에서 서성이며 사는 삶도 괜찮다, 여기기로 한다. 


모든 희극은 비극을 수용한 자의 여유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사는 게 문득 고단하다 느껴질 때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곤 했다.


마음이 뻐근해지고 나서야 의미가 탄생하는 일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있자면, 대낮에 보던 사물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그렇다. 삶이 던지는 복잡다단한 의미들은 밝은 곳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비극을 품지 못한 희극은 공허한 외침일 뿐. 




오늘도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지만 괜찮다. 전부.



아무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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