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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정 Sep 29. 2015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도서관 화장실에서 마주친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라는 문구.


그 앞에서 오래오래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충분하다, 는 말이 남기는 여운이 좋았던 까닭이다. 




충분하다는 말은 예컨대, 이것으로 혹은 당신만으로, 또는 그 정도면 이라는 말과 붙으면서 스스로 풍기는 냄새를 더 정답게 만든다.


사전상으로는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자주 쓰이는 용례를 보면 '약간 모자라지만 괜찮다'는 뉘앙스를 더 풍긴다.


약간 부족하지만 여남은 공백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채우겠다는 다정한 말이다.


더 있으면 좋겠지만 이 만큼만 받아도 괜찮다는, 이 이상으로 욕심 부리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충분합니다,라는 말에는 충만함과 만족감과 소박함, 그리고 그 절제미가 가득 담겨있다. 


내 마음은 굵고 단호하게 쓰여진 그 문장 앞에서 한없이 부풀어 오르고 말았다.







손을 씻고 물기를 탈탈 털어 내고 나서 한 장으로 큰 물기만 싹싹 닦아낸 후, 약간의 자연바람에 말리면 된다.


물기를 털어내는 수고로움과, 자연바람에 말리는 동안 약간의 찝찝한 기분만 참으면, 정말 한 장이면 충분하다. 딱 한 장이면.


한 장을 써도 될 것을 두 장이나 쓰면서 낭비하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럼으로써 우리가 낭비하는 것은 비단,  물질뿐만이 아니다. 


쓸데없는 정신적인 소모도 물질적인 낭비에 비견할 하다.






'한 장이면 충분하다'고 애타게 외치는 문장이 무색하리만치, 바로 옆 휴지통은 물기를 채 흡수하지 못하고 버려진 휴지로 가득했다. 


한 장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탓에, 아예 손 닦는 용도로 두는 휴지가 사라져버린 공중 화장실도 여럿 보았다.


그냥 주어지는 것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겠다.






타인을 이해하는 아량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그릇은 컸으면 좋겠으나


행복을 담고, 물질에 만족을 느끼는 그릇은 작았으면 한다. 


차 한 잔과 빗소리 한 줌으로도 쉬이 둥글어지고 보름달처럼 인정스레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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