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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앨린 Nov 02. 2017

용기를 내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또 다시 용기를 내어 부동산을 계약하고 공간을 계획하다.



용기를 내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지난 5월 마음속 깊이 애정을 많이 주었던 회사를 용기 내어 그만두었다.

MCN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시작점에서 터를 닦고 테이프 컷팅을 했던 나에게 '트레져헌터'를 퇴사한 것은 단지 다니던 어느 회사를 그만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여전히 내 나름의 손 때가 많이 묻은 이 업계 안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기에, 더불어 어쩌면 많은 인정과 성장의 기회를 앞에 두었을 수도 있기에, CJ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인 트레져헌터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했던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더 어려운 결정이었을지 모르겠다.



좁은 업계에서 서로 살 부딪히며 지낸 분들이 많아 왜 회사를 그만두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다.

송구하게도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겠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퇴사의 의사를 밝히고 대표님 방의 문을 닫고 나오며 몸이 살짝 떨리는 긴장을 느꼈다. 설렘이 반, 두려움이 그 나머지 반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명확했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부모와 학교, 사회로부터 들어왔던 큰 성취와 성공을 위해 매일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 싫었다.

커다란 성취나 성공, 그로 인한 행복만큼이나 삶은 일상의 총합이기에 나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분 전환을 위해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고 끝나는 이 도시, 이 문화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었다.


거창하지만 소박하게
이 도시, 이 문화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콘텐츠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는 어벙벙한 꿈을 가진 채, 계산도 겁도 없이 일단 퇴사를 했다.


퇴사 직후 몽골로 긴 여행을 다녀온 후,

염원하던 '아티스트'의 타이틀로 첫 미디어아트 그룹전에 참가했고,

오랜 친구 영훈과 함께 새로운 벌릴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동산을 계약했고,

첫 번째 프로젝트를 결정했고,

이를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사랑해마지않는 디지털 미디어에 푹 빠져 일 하면서도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남아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진짜 만남이다. 온라인 세상의 위대함을 소리 높여 외치다 초기비용을 감수하며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야 겠다 결심한 이유는,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순간들이 문득 그리워서다.


이곳에서 만큼은 나는 생각을 직접 손으로 쓰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고,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싶다. 분명 더 즐거울 것이고, 분명 더 집중하게 될 것이고, 분명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경험이 주지 못했던 즐거움과 집중도와 만족감은 다시 디지털 콘텐츠가 되어 더 힘 있는 메시지로 전파될 것이다. 우린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여름 내내 운동화를 신고 노트북을 들쳐 메고 서울의 곳곳을 걸었다. 두 달 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공간을 찾기 위해 강남권부터 마포, 성수 등을 샅샅이 다녔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은 과거 프랑스에서 지식인들의 사교의 장으로 역할을 했던 '살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쓰임은 상업공간이었지만 주거공간의 느낌을 가진 곳을 찾았다. 살롱이 열리기 위한 독립된 방들이 있어야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넓찍한 커뮤니티 공간도 필요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사람들 간의 만남을 부드럽게 이어줄 술과 커피, 차 등의 마실거리가 제공되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긴 여름의 끝자락에 우리는 합정동에서 37년 전 아주 멋지게 지어진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부디 이 곳에서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통하는 주제로, 통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계약했고, 공간을 구상하며, 하나 둘 준비가 되어간다. (야호!)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그 후 벌어진 대부분의 일들이 새로운 첫 경험들의 연속이라 매 순간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이 시작됐고 점점 그 모습을 갖추어 감에도 여전히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시간을 살고있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상황에 용기를 내야할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일단 넣어두고 이제 이 설레는 여정의 순간들, 기억들, 생각들을 자주 기록해보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도 너무나 소중할 이 순간을 이렇게나마 붙잡아놓고 싶어서. 그리고 그 기운을 마음껏 나누고 싶어서.



덧)

첫 번째로 시작하게 된 이 일을 사업이라 부르지 않고 프로젝트라 칭하게 된 이유는, 비즈니스적인 목표보다 이 곳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목표가 훨씬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 시작했어요, 라고 하기가 너무나 쑥스럽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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