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elite Dec 09. 2016

영어공부, 뭐가 문제?

영어를 '공부한다'는 자체가 문제!

2016년 12월.... 이 하수상한 시절에 잠깐 옆길로 새는 잡담을 해보자. 검색엔진으로 들어온 분들을 위해 미리 적으면... 이 글은 한국 사람들이 흔히 관심 갖는 영어 공부법을 알려주는 내용이 아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10여년을 공부해도 영어 컴플렉스/울렁증에 시달리는가 -_-; "내가 바보라서 그런가" 자괴감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_-; 문제에 대해 발상과 접근방법을 바꿔서 진단해 보는 글이다. (참고로 이 글의 결론을 여기 글에서 재밌게 표현했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tvN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을 진짜 어쩌다 보게 되었다. 전에 보니까 이 프로그램에 입시학원 강사들이 나와서 강연을 하는데, 강연하는 분야에 대해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딱 입시학원 강사 수준의 강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머리에 쉽게 들어오는 강연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깊이가 없고 비전문가한테도 오류가 종종 보이는 단점이 있다는 의미다. 오늘은 강사가 조승연이라는 사람이던데, 다른 프로그램에서 볼 때 조승연이라는 사람이 책도 많이 읽고 언어 감각이 뛰어나면서 박학다식하지만 생각의 깊이가 얕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강사의 특성에 일관성이 있다고 해야 하는지 -_-; 그런 사람이 그런 프로그램에서 무슨 영어 공부에 대해 강연을 한다 ...!?!????...  "입시학원 강사들의 흔한 레파토리, 한국인의 영어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또 늘어놓는구나"하며 다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버렸지. 그러다가 또 어쩌다 강연 한 부분을 보니까 그래도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 좀 있다.

    언어마다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방법이 다른데, 이것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방식이나 사고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언어마다 색을 구분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이게 실제로 사람이 색을 인지하는 것에 영향을 준다거나... 다른 예를 보면, 흔히 알고 있듯이, 영어에서는 주소를 적을 때 내 이름→가족 이름→집 건물→동네→도시→국가, 이런 식으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고 작은 범주부터 식작해서 큰 범주로 가는 순서로 표시하고, 한국에서는 반대로 국가→도시→동네→집 건물→가족 이름→내 이름 순으로 표시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 습관이 어떤 장면을 보면서 인지할 때도 차이를 만든다는 거다. 영어 사용인은 장면 중에 관심이 가는 특정 대상에 집중하는 습관이 있는 반면, 한국어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배경 전체를 먼저 살피고 차츰 관심 영역을 좁혀가는 방식으로 장면을 인지하는 습관이 있다고...


    언어에 따라 색깔 인지력이 달라진다는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들은 적 있는데, 언어에 따라 장면을 인지하는 습관이 다르다는 얘기는 나에게도 새로왔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것... 2000년대 초반(2000~2005년 사이)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계에서 주목을 많이 받고 있을 때, 어떤 미국인? 영화평론가가 한국영화의 특징에 대해서 (영어로)적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와서 문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의미에 맞게 대략 옮겨보면... 한국 영화는 영화 초반부에 영화의 배경과 인물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충분히 나오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점이 미덕이라는 거다.

    10여년 전에 읽은 글 한 꼭지를 왜 기억하냐면... 그 전까지 한국영화 시장은 미국영화-서유럽영화-서유럽풍 일본영화(내지는 일본영화에 거의 직접 영향 받은 한국영화)가 휘어잡고 있었고, 이런 서유럽풍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게 참 불편했거든. 시작하면서부터 갑자기 뜬금 없는 뭔가가 일단 벌어지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뜬금 없던 일들의 배경과 관련 인물이 차츰 드러나도록 전개하는 방식 말이다. 서유럽 풍 영화들이 이런 표현 방식의 묘미를 잘 살리도록 다양하고 효과적인 표현 기법을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왠지 그런 게 불편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부터 한국 영화의 발전을 주도했던 당대 젊은 영화감독들이 이런 불편을 많이 해소해서 개인적으로 참 반가왔었지. "나만 불편한 게 아니었나보다" 생각도 들고... 그게 또 영어권 사람에게도 한국 영화의 특징으로 눈에 뜨였다니 특별히 기억했던 것... 오늘 강연 내용을 참고하면, 그런 영화적 표현 방식에 대한 호불호 역시 언어 습관과 관련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제 옆길로 그만 새고 -_-; 제목과 관련된 영어 이야기를 해보자.


조승연 강사가 Bob Marley의 'No Women No Cry' 노래를 예로 들면서, "No Cry"의 'no'가 자메이카 영어에서 'do not'의 의미라는 설명을 해주는 것까지는 강연이 재미있었거든. 미국 사투리던가 흑인 속어던가 중에서도 no = donot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 -_-; 영어 자체도 그렇지만, 미국이 인종/민족 집합소인 만큼 미국영어가 워낙 다양한 언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온 것이라 지역이나 시대/상황마다 각양각색의 특색이 있다더라구.

    그러다가, 자메이카산 broken english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으로 말하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입시학원 강사 수준"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고 대략 비슷한 의미의 말. 그리고 조승연이라는 사람이 입시학원 강사인지는 모르겠고 '어쩌다 어른' 프로그램이 대체로 그런 수준이더라는 뜻)

    영어가 전세계적으로 모국어 내지는 공영어로 많이 사용되면서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고, 그건 (예를 들어) 미국 영어의 규약을 깨뜨려 사용한다는 broken english와 다르다. 자메이카 영어가 broken english면 미국 영어나 호주 영어는 영국 영어에 대해서 broken english라는 거냐? 영국 영어도 상류층 영어, 하류층 영어, 런던 영어, 스코틀랜드 영어... 요새는 차이가 많이 줄었다지만,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차이가 많았다. 그럼 이 중 어느 것이 broken이 될 수 있나? 괜히 시비 가리는 얘기가 아니라, 미국인들이 대체로 잉글랜드 영어를 높이 사는 반면에, 예전에는 스코틀랜드 가서 잉글랜드 영어를 구사하면 차별 받는 사례도 있었다. 잉글랜드 영어가 broken이라서 차별 받은 것은 아니잖나.

https://www.youtube.com/watch?v=mcTKcMzembk


물론, 조승연 강사가 이 부분에서 하고자한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학교 영어시간에 배운 어법에 맞나 안맞나 따지고 있을텐데, 중요한 것은 어법 따위가 아니고, 언어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 시스템의 한계로 글이 다소 지저분하게 보이겠지만 -_-; 그래도 강조를 해서 적어보면...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는, 외국어를 배워서 외국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운다

는 거다.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부할 목적이자 목표로 여기는 것

이것이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한국의 영어 '공부'에 흔히 등장하는 괴이한 목표 중 하나가 "영어를 마스터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마스터한다, 통달한다" 이런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한국어를 공부씩이나 하나? 외국인이 한국어를 마스터/통달한다 이런 목표로 공부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진짜 우스운 목표고 우스운 공부 태도로 보이겠지. 그런데 왜 영어는 마스터하고 통달할 공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이게 우스운 생각임을 알지 못할까?



유구한 역사?!!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언어를 마스터하고 통달할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는 방식에 기나긴 역사적 연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는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공부의 목표로 생각했던 유구한 -_-; 역사가 있다.

    무슨 말인지는 조선시대에 한문을 배우던 방식을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도록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영어에서 단어 하나에 해당하는 한자를 한 글자씩 제대로 외우지 못하면 훈장님한테 야단을 맞고, 그렇게 한자를 익히고 한문을 읽어서 사서삼경 경전을 통달하는 방식이 조선시대 한문 공부의 목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다소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중국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한자와 한문을 열심히 배웠던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열심히 배우던 한자/한문의 발음/어법은 당대 중국 현지 것과 달랐다. 유럽의 라틴어와 비교할 수 있을텐데, 라틴어 비슷하게 죽은 언어인 한문을 공부(!)하고 경전을 읽고 달달달 외어 마스터하고 통달해서, 시험을 잘 치고 그 결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할 목적으로 한자/한문을 열심히 배웠다.

    이런 역사와 전통은 한국 영어 교육의 초기에 그대로 연결된다. 천자문을 외우지 못하면 훈장님한테 매를 맞듯이, 학교에서는 무조건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고 못외우면 매를 때렸다. 그 시절에는 영어사전를 한 페이지씩 찢어 먹어가면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기괴한 얘기가 무슨 성공담/무용담처럼 떠돌기도 했거든. 물론, 외국어를 배우면서 어휘를 외우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외운 어휘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 체득하게 만들기 보다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외우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어, 한국말을 배우는 영국인이 인간 = human이라고 사전을 외워와서는 아무 데나 "이 인간, 저 인간"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나? 그런 황당한 영어 공부법이라는 것이 예전 한국 영어 교육에서는 미덕이었다.

    그렇게 황당할 방식으로 영어를 공부해서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목표인가? 무슨 명분을 내세우는데 현실은, 시험 점수 많이 받아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어서 입신양명하는 것이 목표다.

    21세기 한국의 영어 교육이 초창기 한국 영어와는 양상이 다르다지만,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입신양명하기 위한 공부의 대상이라는 큰 틀에서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소통 목적이 아니라 공부 목표로 배웠으니, 당연히 십수년 배워도 영어로 의사 소통을 못한다. 소통이 목표가 아니니까 죽은 언어를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에 맞는지 broken인지 따지는 것이고...

    그런 거 안 따져도 외국인과 소통하는 데 큰 지장 없구만 왜 따질까... 못 따지면 시험 점수!!! 그게 깍이니까...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을 못하면서도 영어 어법에 맞는지는 열심히 따지는, 괴이한 습성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소통의 영어에 대한 체험


영어에 대해서 잔뜩 떠들고 있는 나는 사실 이 글에서 잠깐 적었듯이... 학창 시절부터 영어는 물론이고 모든 언어 영역 과목에 쥐약이었다 -_-; 그래서 영어 공부라는 것의 폐해에 대해 느끼는 것이 많을지도?!?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참으로 다양하게도 그 놈의 -_-; 언어영역 과목들이 많았더라구. 국어부터 시작해서, 한문, 고전(고어 한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 학기까지... 어느 것도 내가 원해서 배웠을 리는 전혀 없고, 학교에서 합법적으로 고문했기 때문에 ㅠ.ㅠ 어쩔 수 없이 배워야했던... 당연히 점수도 나빴고, 특히 한국에서 흔히 비교 대상 되는 영어... 내가 주변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 TT.TT


그렇게 영어 포함 외국어 쥐약은 물론 모든 언어영역 쥐약인 내가 미국에 1주일 정도 갈 일이 생겼더랜다. 물론 혼자라면 계획 단계부터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겠지만 -_-; 다행히 동행이 영어를 좀 했고, 목적이 관광이라 심각한 사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기로 했다.

    그 놈의 미국 땅에 가서는 -_-; 처음 하루 이틀은 모든 소통을 옆사람한테 맡겼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옆사람이 자꾸 나한테 상황을 해결하도록 미루고 나몰라라 해버림. 어쩌라구 @.@ (사실은 옆사람이 해결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고, 나에게 영어로 소통할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였던 것 같아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지금은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이게 무슨 @.@ 옆사람만 믿고 왔는데 나몰라라 해버리면 @.@) 당연히 처음에는 엄청 당황? 황당했지. 10여년 학교에서 배운 영어공부? 거의 쓰잘데기 없었음 -_-;

    "관광지까지 와서 영어 땜에 스트레스 받다니" 징징거리기도 했으나 ㅠ.ㅠ 이러다가 관광지에서 낙오하면 dog망신 犬망신 당한다는 절박함에 두번 세번 시도를 하다보니까... 4~5일 째 되는 날부터는 내가 이거저거 마구 조합해서 마구 말하면, 듣는 미국사람 "이건 또 뭔 소리냐"는 표정에 갸웃갸웃 하면서도 결국은 나에게 필요한 답을 준다. 기대하던 방식도 아니었고 환상적인 반전도 아니었지만 어째건 소통에 성공했고,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관광지를 탈출 V-_-V

    모든 언어 영역에 쥐약이고, 주변 사람 중에서 제일 영어를 못하고, 10여년을 쓰잘데기 없는 죽은 영어를 공부하면서 외국사람에게 영어 한마디 못하던 내가, 소통을 목표로 하니까 4~5일 만에 broken이건 뭐건 미국 사람한테 영어로 질문해서 원하는 답을 얻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거다. 나중에 이 일을 얘기하다보면 비슷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당연하지만!


또... 업무를 하다 보면, 영어쥐약이 영어로 email을 보내야 하는 경우, 피하고 싶지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_-; "외국어로 email 척척 주고 받는 사람도 많더구만, 나는 왜 ㅠ.ㅠ" 징징거러 봐야 그 사람들이 내 업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_-; 그래서 일단 email 첫머리에 이 말부터 시작한다. "Please excuse my poor English" ... 내가 한국 사람이라 영어 잘 못하니 감안하고 읽으라는 뜻이지. 그렇게 email을 보내면 걱정과 달리 대부분 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다. 가끔씩은 "나도 한국말 못하잖냐, 영어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등의 좋은 말을 해주는 사려 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맞는 말 아닌가? 나는 영어에 대해 외국인이고 영어가 전문 분야도 아니니까,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하지. 필요할 때 의사 소통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 이상으로 신경 쓰면 비정상 맞다.

    또 한 번은, 내 짧은 영어 구사력으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할 상황이 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서 email에 첨부해 보냈거든. 그랬더니 답장에 "내가 받은 어떤 질의 메일보다 이해하기 쉬웠다"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험 등등으로부터 종종 써먹게 된 말이 있지. "미국 바보도 영어로 말하잖아. 우리가 미국 바보보다 못나서 10년 공부하고도 영어로 말 못하는 거 아니거든" .......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바보여서 10년 공부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던 게 아니다.



잘못된 교육 시스템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간단하고 일상적인 소통을 목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영어 교육을 10년 이상 받고도 그렇게 간단한 일상적 소통조차 못하는 것일까? 기본 이유는 영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비실용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영어를 공부(!)하도록 사실상 모든 한국 사람들한테 강압하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해서, 지나치게 높은 곳을 목표로 억지로 뛰도록 기본도 익히지 못한 애들을 몰아대서는, 대다수 애들이 몸이 망가져서 낮은 곳도 제대로 못뛰게 되는 한심한 상황과 같다.

    더욱 한심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한 것은, 그럼에도 소수 성공한 애들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이런 방식이 성공적인 교육이라고 우긴다는 것... 어떻게 해도 성공하는 소수는 있기 마련인데... 참혹한 노예선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수 사람이 있다고, 참혹한 노예선과 수용소가 좋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영어를 높은 수준의 공부 목표로 생각해야 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은 전체 한국 사람 중 극소수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소통이 목적인 간단한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전체 한국 사람에게 극소수를 위한 높은 수준의 영어 시험 공부에 매달리도록 몰아넣고, 진짜 중요한 기본 소통은 놓치게 만드는 것이 한국의 영어 교육이다. 조선시대부터 그래왔고, 21세기가 되어서도 그러고 있다.

    당연하게도 영어 교육에만 이런 폐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수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고등 수학이 꼭 필요한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등 수학 교육이 필요 없고 수학 교육을 통해서 숫자 계산을 활용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수학 교육은 대다수 국민에게 높은 수학 시험 점수를 요구하며 몰아대서는, 이도저도 못하고 기본조차 포기하는 수학 포기자가 되도록 몰아넣는데... 대학교수들까지 "요새 학생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제대로 안 배워와서 가르치기 힘들다"는 소릴 하질 않나... 한국 대학이 뒤떨어지는 이유가 수학을 덜 배워왔기 때문이면, 한국보다 수학 덜 배운 학생들이 입학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보다 한국 대학이 뒤떨어지는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이냐? 더 자세히 말하면 글이 옆으로 많이 새니까 이만 적겠다만...


잠시 남탓을 해보자. 잘못된 책임을 떠밀지 말고 "내 탓이요"하며 문제를 해결하자는 얘기도 있다만, 남탓이 맞고 필요한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앞뒤가 이해 되고 필요가 와닿으면 잘 배우고 결과도 잘 냈던 것 같다. 뭔가 막연하고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하면, 굉장히 불편해 했고 잘 배우지도 못하고 결과도 제대로 못냈다. 교과서에 오른 시(詩, poem)의 해석에 정답이란 것이 있고 -_-; 잘못된(?) 해석을 선택하면 야단을 맞거나 심지어 국가 공인 대입시험에서까지 감점을 당하는 교육 풍토에서, 나 같은 성향의 사람이 언어 영역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외국사람과 소통하려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죽은 언어를 막연하게 공부해서 시험 점수 따려고 아둥아둥 하는 일에 얼마나 흥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정도면, 나의 경우가 잘못된 한국 교육 시스템의 피해자라며 남탓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을까?



해결 방법?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면?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지. 하지만, 국가의 교육 시스템처럼 규모가 크고 뜯어고치는 일이 만만치 않다면? 시스템 고치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자신에게 닥치는 시스템의 폐해를 피해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피하나... 요령껏... -_-;


요령껏... 참 쉬운 말이면서도 참 어려운 말이다.


만약, 내가 한국 영어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잘 이해하는 학교 영어선생님이고, 그 폐해를 피하기 위해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목표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고 하자. 그러다가 외부 학력평가 시험이나 상급학교 입학시험에서 학생들 성적이 떨어지면? 몸 담는 학교는 물론이고 학부모, 심지어 가르친 학생들한테까지 원망을 받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몰리겠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옳은 교육을 했는데도... 바른 교육을 추구하다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는 선생님이 나오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는데, 한국 교육의 현실은 그런 영화보다 훨씬 가혹하다.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가 교육 시스템의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가 성적과 입시에 과도하게 매달려서 발생하고, 입시학원과 강사란 이런 문제를 심화시키면서 기생하고 공생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기괴한 구성원이며, 입시학원과 강사의 품성과 자질 문제도 여기서 불거지긴 한다만, 그렇다고 이게 다 입시학원과 강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도 애매한 것이 저런 가혹한 현실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강사마저 자메이카 영어가 broken english라며 영어공부법(?)이라는 것을 설파하는 나라에서 시스템 폐해를 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소수 능력자만 알아서 요령껏 -_-; '매트릭스'를 탈출하고, 나머지는 시스템이 사육한대로 살아가는 개돼지가 -_-; 되기 쉽상이다.

    그런데... 잘못된 채로 굳어버린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장기적 안목으로 고치기, 단기적으로는 그 폐혜를 요령껏 피하기, 어느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엇이 잘못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결국은 잘못이 해결된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다행히...


이렇게 영어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을 생각하는 것이, 크게 보면 2016 병신년 -_-; 한국 사회를 격랑에 몰아넣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 방법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시대의 소용돌이 와중에 이런 글을 적는 거다.


끝으로... 오늘 JTBC 뉴스룸에 사용되어 화제를 모았던 김윤아의 'Going Home'... 이 노래, 처음 들을 때는 가사나 곡조에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거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노래가 어울리는 때도 있기는 있더라구...


https://www.youtube.com/watch?v=yfHfXS1sYuY


작가의 이전글 AI와 로봇의 미래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