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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Nov 29. 2020

인간은 자유다. 고로, 삽질한다!

 #7.  <그리스인 조르바> +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너무나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인의 모습이 진정 조르바일까. 작가의 묘비명을 처음 알게 되었던 날, 솔직하게 나를 비추어보니, 이렇다. “나는 바라는 게 무지 많다. 나는 두려움도 무지 많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까지는 술술 나오다가 마지막 결론에 이르자 인정하기 싫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데, 욕망 역시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인데, 왜? 이건, 엉터리다! 결국, 수도승처럼 무소유의 삶, 무념무상, 해탈하라는 말인가? 에잇!’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결국 책을 펼치고야 말았다. 왜 그런 궤변(?)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지, 많은 사람들이 왜 조르바와 같은 삶을 꿈꾼다고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의 화자인 ‘나’는 책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의 동지이자 친구는 “책벌레”처럼 책만 파고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그를 비난하며 떠나가고 그는 크레타로 갈 결심을 한다. 그리고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만나 함께 크레타의 갈탄광으로 향한다. 첫 만남에서 조르바는 “인간은 자유”라는 명대사를 날렸다. 인간이 곧 자유라니 무슨 말인가. 정치적 자유, 종교적 자유, 개인의 자유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의 자유를 말한다. 당연한 듯하지만 나에겐 낯선 자유였다. 이야기의 커다란 뼈대는 ‘나’와 조르바가 크레타에서 6개월간 갈탄광 사업을 하면서 겪는 경험담이다. 사업도 사랑도 망하지만,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의 깊이는 역사와 사상, 철학을 넘나들며 어마어마하게 펼쳐진다.      

존 클라센 그림/ 맥 바넷 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시공주니어

 여기 ‘어마어마한 경험’을 한 소년 둘이 있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라는 그림책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삽질을 하는 소년들의 이야기다. 보석을 지척에 두고 번번이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버리지만 두 아이에게 실망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싸온 간식과 체력이 모두 다 떨어질 무렵, 까무륵 잠이 든 두 아이는 정말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부드러운 풀밭 흙 위에 내려앉게 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동시에 말하는 두 아이는 유유히 간식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동시에 말하는 두 아이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삽질만 하다 아래로 떨어졌는데 멋지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멋지다. ‘삽질’만으로 어마어마한 경험을 했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삽질=헛수고’라고 생각해왔는데 알고 보니 ‘삽질’은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 ‘내가 갈 수 있는 밑바닥의 끝까지 도달해보는 것, 바닥을 치고 올라온 경험이 과연 나는 있었던가? 노력과 성취는 반드시 인과관계처럼 붙어서 따라와야만 하나? 성취감이 있으면 반드시 행복한가? 온전한 노력과 도전만으로 행복하려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조르바와 ‘나’의 사업, 6개월간의 도전과 경험이 결과로만 보자면 무참히 실패했지만, 그들의 ‘삽질’이 어마어마한 감동과 깨달음으로 번져온 것은 다음의 문장에서였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에게 던진 질문은 ‘만약, 돈 없어, 시간 없어, 능력도 없어, 나이만 많아. 이런 제약들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내가 도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였다. 올해로 결혼한 지 15년을 넘겼다. 솥뚜껑 운전 15년 차에 내 요리 실력은 1차 조리식, 아직도 라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한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먹는 것은 늘 대충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긴 시간, 깊게 파내려 간 ‘삽질’은 일상의 요리가 아닐까. 조르바는 말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하게 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고로, 나는 다시 삽질하기로 했다! ‘할 때는 화끈하게!’ 사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특히 결과물이 맛없을 땐 더더욱 그랬다. 그건 ‘어정쩡하게’, 빨리, 대충 해치웠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방어 지리탕이다. 내 맘대로 화끈하게 끓였더니, 조르바 식의 ‘들어보지도 못한’,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음식이 나왔다. 이런 식의 실패가 이제 나쁘지 않았다. 조르바가 버찌를 질리도록 먹어서 버찌를 정복했듯이 앞으로 나의 요리도 요리로 정복할 참이다. 삐딱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도 ‘조르바처럼’을 외치게 되었다.     


 더 이상 혼자서 속으로만 우물을 파는 일은 멈추기로 했다. 나의 마음과 욕망을 솔직하게 경험하는 것의 가치를 알았으니까. 세상은 호기심 천국인데 이리저리 재어보고, 망설이고, 머뭇거리느라 놓친다면?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전인미답의 길, 일상은 삽질의 연속이고, 일상의 소소한 실수와 경험이 켜켜이 쌓이는 삶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특히 제대로 삽질하는 실패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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