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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Dec 13. 2020

세상에 없는 가족을 찾아서

#11. <페인트> + <대단한 무엇>

 신문이나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아동학대에 관한 기사를 만날 때면 남편은 곁에서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지 말아야 해. 운전면허증처럼 우리나라도 부모 자격시험을 봐야 저런 뉴스를 덜 보게 될 텐데…….”라며 혀를 찬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좀 불편해진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 걸려 대롱거리고 귀로는 이미 들은 양 간질간질하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그분들도 내가 좋을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슬몃 자신이 없어졌다. 한 번은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불쑥 말해버렸다. “나는 엄마보다 더 좋은 엄마를 만나고 싶어.” 엄마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는데. 이윽고 엄마는 많은 엄마들이 딸에게 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결혼하면 더도 덜도 말고 딱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보라고.     

이희영, <페인트>, 창비

 부모 면접을 보는 소설, <페인트>를 읽었다. 저출산 문제, 인구절벽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NC센터를 세우고 버려진 아이들을 책임진다. 페인트란 자신이 함께 살 가족을 부모 면접을 통해 결정하는 아이들의 은어다. 아이들은 13살이 되면 3번의 면접과 합숙을 통해 스스로 부모를 선택해서 사회로 나간다. 제누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 면접에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 정부에서 주는 각종 혜택을 노리고 면접을 보는 어른의 속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제누의 룸메이트 아키는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밝고 천진한 아이다. 제누가 부모와의 만남을 “팔려가는 느낌”이라 말하면, 아키는 “맞춰 간다”라고 응수한다. “형, 나는 사랑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아키는 배려 깊은 착한 아이다. 제누는 신중하고 영리하게 되묻는다. “과연 완벽하게 딱 맞는다는 것이 존재할까?”     


 서하나·이해오름 부부와 페인트를 하면서 제누는 부족하고 불안정하지만 솔직한 그들의 모습에 호감을 가진다. 준비되지 않은 예비부모와의 면접을 말리는 가디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제누가 인상적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제누가 진정 바라는 부모는 완벽한 부모, 완벽한 가정이라는 신화가 아니라 믿음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신뢰였다.      

다비드 칼리 글/ 미겔 탕고 그림, <대단한 무엇>, 문학동네

그렇다면 가족의 혈통을 오래 이어온 유서 깊은 가문에 그 비결을 묻고 싶다. 그림책 <대단한 무엇>에서 주인공은 아빠와 가족사진을 보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단한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경찰의 자랑 앙구스 삼촌부터 누구나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그린 프리다 고모까지. 아빠의 이야기에 숨은 대단한 진실은 베일을 벗기듯 숨은 면을 열 때마다 유쾌하게 펼쳐진다. 용감한 소방관 도리스 고모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찾았던 이유가 엉뚱한 반전에 있음을. 알고 보면 대단치 않은 삶의 모습 하나하나가 쌓여서 일가를 이루었음을, 그리고 주인공이 그런 가문의 맥을 이어 대단한 무엇이 될 거라 호언장담하는 아빠의 믿음과 시선이 바로 대단한 비결임을 알게 된다.      


 가족 탄생의 마지막 관문에서 NC에 남겠다고 선택한 제누. 그는 갈등하는 가족이 진짜라고 보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가족은 태생부터 갈등이 필수다. 신혼 초부터 칼로 물베듯 반복되는 부부싸움, 거기에 아이가 자라면서 합세하면 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는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각, 취향, 태도와 신념은 어떤 상황이든 차이를 만들며 갈등을 만들 것이다.      


 완벽한 가정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척하는 예비 부모와 안정된 규율과 원칙 속에 키워진 NC 아이들이 단 3번의 면접과 합숙만으로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는 생각 자체가 난센스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는 건 어떤 보이지 않는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더 좋은 부모, 더 능력 있는 부모를 기다리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그저 나와 인연이 닿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뿐일지도. 탯줄처럼, 신비한 끈처럼 이어진 누군가를” 말이다. <대단한 무엇>의 가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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