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림 Dec 20. 2020

그분이 오신다.

#1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이란 말 그대로 성스러운 그분이 오시는 날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예수님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더 간절히 기다린다. 선물을 들고 오시니까. “코로나 때문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을까?”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아이에게 “글쎄,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조금 늦게 도착하실지도 몰라, 어쩌면 확진자와 마주쳐서 자가격리하시느라 더 많이 늦거나 못 오실 수도 있어. ……. 이해해줄 수 있지?”라며 밑밥을 깔아 두었다. 잠자코 듣는 아이에게 “원래 성탄절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인데, 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아이들에게 줄까? 예수님은 자기가 받을 선물을 산타할아버지에게 대신 부탁한 것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받는 생일 선물인 거지. 혹시 우리가 산타가 되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는 내 말에 아이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코로나 때문에 자기가 받아야 할 선물을 못 받을까 봐, 즐거운 성탄 파티를 할 수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다가올 성탄절은 가난한 마음으로 맞이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창비.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구두장이 쎄묜이 있었다. 선한 사람이었지만, 한 벌의 외투로 아내와 번갈아 입으며 겨울을 나야 하고,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하며 근근이 일상을 이어간다. 어느 날 받아야 할 수금도 받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에 술 한잔 들이켜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미하일을 만난다. 그에게 외투를 벗어주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함께 생활하다가 그에게 범상치 않은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느님에게 벌을 받은 천사였던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숙제는 세 가지 질문에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말도 없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세 가지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는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서로 모여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사실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리처드 T. 모리스 글 /르웬 팜 그림,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소원나무.


비단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여기 그걸 깨달은 동물들의 이야기,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가 있다. 강을 따라나선 곰은 굽이굽이 흐르는 강에 풍덩 빠진다. 강에 빠졌다는 것은 알았으나 엄청난 모험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개구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개구리는 자신이 외롭다는 것은 알았지만, 친구가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거북이들이 올라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처럼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다가 누군가를 만나고 돌고 도는 강물을 따라 함께 감으로서 하나씩 하나씩 깨달음을 얻는다. 인상적인 장면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비버조차 돌아가는 길도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목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인생조차 쭉 뻗은 고속도로만 달리지 않는다. 굽이치는 강물처럼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폭포를 만나 떨어지는 긴박한 순간 곰은 개구리를 꽉 붙들고, 개구리는 거북이를, 거북이는 비버를, 비버는 너구리를, 너구리는 오리를 붙들며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그 모습이 우리에게 말한다. “삶을 즐겁게 살고 싶다면 서로 손을 내밀어 보라고!”     


다가오는 성탄절은 거센 폭포를 만난 통나무배처럼 당혹스럽다. 신이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알려주지 않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만 알려준다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할 따듯한 마음의 손길, 사랑이다. 오, 사랑! 연말연시면 어김없이 이웃들에게,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하며 손 내밀기를 권하지만 선뜻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닥친 걱정들 속에 파묻혀 지내느라 결국 손 내밀 시기를 놓친다면 세상 가장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은 내가 될지 모른다. 걱정과 두려움에 얽매여 미하일을 지나쳤던 쎄묜이 발길을 되돌린 바로 그 순간, 미하일은 신의 얼굴을 그에게서 본다.      


얼마 안 남았다. 그분이 오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과 이상이라는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