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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Oct 07. 2022

[아티스트웨이 시즌 2]심청이 5주차

W5. 마음속 영웅에게 지혜를 구하는 법

삶은 얼마만큼 용기를 내느냐에 따라 쪼그라들거나 팽창한다.

- 줄리아 캐머런, <아티스트웨이>, 비즈니스북스, 2021, 263쪽.


이번 주에 대학원 종합시험이 있었다. 내가 공부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서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 볼까. 마음속으로 갈등이 일어났다. 좋은 답안은 이미 글렀다고 포기한 셈인데, 그래도 용기를 내서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을 것이 뻔하다. 진땀 빼는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 학교를 나섰다. 결과는 정말 운이 좋아야 넘어갈 것이다. 담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상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마음속으로 엄청 조마조마해하면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36계 줄행랑을 치느라 바빴다. 


오늘은 그냥 비겁해지지 않은 내가 너무 기특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내가 정말 공부하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 넣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관련된 논문이나 자료에 대해 동학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관련된 논문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뒷북이지만, 나만의 답안을 다시 만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 문학 교과와도 관련이 있었으므로 지금 정리해둔다면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비겁해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 나의 마음속 영웅은 지도교수님이었다. 교수님 같은 연구자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을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막상 교수님 앞에 가면 바보가 된 것처럼 질문이나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말들만 횡설수설 늘어놓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마음속 영웅이라는 말이 더 맞게 되어버렸다. 실제로 교수님께 질문하거나 대답을 듣기보다는 혼자서 상상해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걸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실까. 늘 위대한 실패, 도전을 하라고 격려해주셨으니 더더욱 내가 도망가면 안 될 것이다. 엄청 용기를 내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조금 더 자랐다.



아티스트웨이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비슷한 영웅 찾기 과제가 있었다. 그때 내가 발견한 영웅은 그랜마 모지스 (Grandma Moses)다. 70대에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 늘그막에 시작한 그녀의 그림은 '소소한 특별함'이 무엇인지 나에게 분명히 알려주었다. 항상 더디고 시작도 느린, 거북이 도전과 굼벵이 추진력을 소유한 나에게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메시지는 희망과 위안을 동시에 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작게 시작한 꾸준함이 특별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그녀의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내 마음속 영웅의 발견은 다산 정약용의 시, <노인일쾌사 老人一快事>였다. 최근 건강에 다시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는 퇴행성... 내 몸에 통증이 하나둘 늘어가는 이유가 늙어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슬펐다. 세상은 동안과 젊음에 관한 예찬만 가득하고, 늙고 쇠퇴하는 것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 느끼고 있어서 내가 점점 늙어간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런데, 정약용은 그 늙음을 위트 있게 수용하고, 성숙을 향해 나아감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지금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 해도 늙고 병드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것. 늙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위트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산 정약용의 <노인일쾌사>의 전문은 한국고전종합DB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1260A_0060_010_1340)


20221002_심청이모임_W5

WEEK 5. 심청이 모임 피드백들을 기록해 본다.


 심청3은 내가 하고 싶은 분야들의 멘토들을 내 마음의 영웅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전파하는 오프라 윈프리, 그리고 아티스트웨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의 저자인 카메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고 했다. 그리고 책에서 제시한 것처럼, 카메론은 심청3의 질문에 응답해주었다고 했다. 격려와 지지뿐만 아니라 조언도 해주었다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다산 정약용과의 대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청3처럼 아티스트웨이 프로그램 운영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심청1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20220926_일탈놀이_그네타기재도전

  일탈놀이(아티스트데이트)로 나는 다시 그네 타기를 꼽았다. 그렇게 참담하게 실패하고도 또 할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면 어지간히 그네 타기를 좋아했던 어린이였음이 분명하다. 재도전을 도와준 것은 공교롭게도 산책이었다. 따로 시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산책은 글쓰기의 영감을 주는 원천이면서 동시에 일탈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으니, 별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나는 그네형 벤치가 연달아 4대가 놓은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은 이미 만석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 눈에 포착된 것은 어린아이, 대학생들, 주부, 노부부가 그네의 한 칸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나이에 걸맞은 그네 타기 시범조교들이었다. 어린이는 그네 벤치라는 것을 잊은 듯 하늘 끝까지 올라가겠다고 그네가 부서져라 높이높이 발을 구르느라 바빴고, 힘든 그네 벤치는 지난주에 내가 그랬듯 힘겹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네 벤치라는 말처럼 그네> 안락의자> 의자 사이의 적절함을 나는 그들을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즐겁게 그네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중해서 읽어야 할 대학원 교재를 안락의자와 같은 벤치에서 편안한 맘으로 읽는 묘한 즐거움에 신나 했다.


  나에게 생긴 또 하나의 일탈 놀이는 물놀이다. 물이라면 극도로 무서워하던 나였는데, 수영을 배우면서 물과 친해져야 한다는 수영코치 샘의 배려로 이런저런 물의 즐거움을 배웠다. 토요일에 아들과 아파트 수영장에 가서 물속에서 놀았다. 오래 잠수하기를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웃겨주고, 물장구치고 누가 먼저 가나 내기도 하고,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에 보기도 했고, 물의 감촉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새삼 놀라웠다. 싫어하던 것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경험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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