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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Feb 24. 2017

안 팔리는 책

얼마 전 선배 한 분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송인서적의 부도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선배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내가 다니는 출판사의 상황은 괜찮은지 물어봤다. 책과 출판계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 뒤, 그는 이어서 책 공급률 이야기를 꺼냈다. 책이 나오면 출판사에서 도서 유통사 및 서점에 책을 얼마에 넘기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정가의 60% 내외라고 대답하자 새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중간 유통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서점이 정가의 30% 이상을 가져간다는 건데 출판사 입장에서 뭔가 불합리하게 여겨질 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출판사의 규모와 협상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구매한 뒤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단 서점에 깔아놓고 팔리면 돈을 지급하는 위탁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여전히 많으니 어찌 보면 출판사가 서점에 끌려다닌다고 볼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보여 출판에 대한 대화를 유야무야 끝내려던 차에 날아온 또 다른 질문. “서점 말고 다른 데서 팔면 되잖아?”  

 이게 바로 시야와 통찰력의 차이인가. 책의 유통과 판매 차원에서 보면 출판사는 대형서점의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판사에는 책을 구매한 사람의 성별, 나이, 거주지와 같은 아주 기초적인 데이터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대형서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의존하게 될수록 독자와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심리와 욕구까지 속속들이 파악하는 게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요즘, 독자 엽서라도 받았던 옛날이 차라리 독자와 가까웠다며 헛헛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지금 출판사의 현실인 것이다. 자신이 들어가 있는 냄비가 조금씩 달궈지는 것도 모른 채 어어 하다가 결국 팔팔 끓는 물에 어이없이 죽게 되는 개구리의 우화는 딱 출판사의 모습이 아닐까. 몇몇 대형 출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판사는 판매, 홍보, 정보, 관리 가릴 것 없이 모든 주도권을 대형 서점에 넘겨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니즈니 원츠니 하는 귀동냥으로 들은 용어를 섞어가며 예상 독자의 취향에 꼭 맞는 책을 만들고 예상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 방안을 짠다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예상’이라는 말이 허공을 떠돈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고,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본질과 원칙으로 간다!” 훌륭한 저자, 세심한 편집, 예술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갖춘 디자인, 이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책을 만든다면 그리고 눈 밝은 독자가 알아봐주고 운이 좋아 입소문을 탄다면 꽤 괜찮게 팔릴지도 모른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종씩 쏟아지는 신간들 속에서도 도드라는 낭중지추가 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물론 장판파를 맡겨주면 백만 대군이든 천만 대군이든 막아내겠다는 장비와 같은 패기로 판만 제대로 깔리면 내가 만든 책은 잘 팔릴 것이라며 호기롭게 말하는 건 아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인다고 하지만 한눈에 봐도 좋은 책이 수두룩하다(물론 내 능력이 달리기도 하고). 돈만 있으면 다 사고 싶을 정도다. 한 지인은 내가 출판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네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좋은 책 만들면 알려줘. 바로 살게”라고 말해주었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나는 자신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나온 책이 그런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마운 두 명의 말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 것 같다. 어디에 내놔도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드는 것, 동시에 새로운 판로와 홍보 방안을 찾는 것. 질문이 바뀌면 개념이 바뀌고, 개념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 일단 질문이 바뀌긴 했는데 과연 개념이 바뀔지 모르겠다. 세상이 바뀌는 건 더 요원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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