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매너 좀 지켜주세요 (2)
다시 매너 이야기다. 매너의 의미와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 하나,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콜린 퍼스가 완벽한 ‘수트발’을 자랑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 대사다. 평소에 자신의 욕구를 앞세우기 이전에 다른 이가 느끼게 될 불편을 염려하고, 때로는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줄도 아는 태도의 중요성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여준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콜린 퍼스의 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보자.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매너를 행하는 이가 아니라 매너를 받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따져보는 것이다. 매너를 갖춘다는 것은 상대방을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상대방을 사람으로 인정했을 때 우리는 매너를 갖춘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은 인간과 사람의 개념을 구분하며 둘의 차이를 사회적 인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다른 이에게 사회적 인정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행동을 우리가 매너, 예의, 예절, 배려, 친절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호의를 통해 우리는 존엄성을 재차 확인하고 받은 호의를 보답하기 위해 그를 호의로 대하고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오지 한가운데서 원주민을 만난 자원봉사자는 자기가 손을 내밀면 상대방도 손을 내미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인류 사회’의 일원임을 새삼 깨닫는다.”⁑
반대로 군대의 경우를 보자. 누구든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사람이라는 사회적 인정의 경계 외부에 놓인 존재가 된다. 똑같은 옷을 입게 됨으로써 개성을 박탈당하고,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과 명령에 따르게 됨으로써 개인적 욕구를 제한당한다. 훈련병은 병력의 일부, 훈육의 대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애써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고, 굳이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다. 명령과 지시가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게다. 상대방이 매너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뜻이라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의미라고.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을 달가워할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모두는 무시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를 원한다.
사람대접 좀 해주세요, 매너 좀 지켜주세요
공공장소에서 안면몰수를 보여주는 사람을 목격할 때면 공공장소의 매너에 관한 엄격한 법을 만들어,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강력한 처벌이라도 내려야 하지 아닐까 하는 과격한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눈앞을 막는 모든 것을 탱크처럼 짓밟으려는 생각인지 막무가내로 주변 승객을 치고 다니는 사람, 자신의 물건은 애지중지하면서 그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불편을 주는지는 나 몰라라 하는 사람, 신으로부터 특권이라도 부여받는 양 기껏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을 앞질러 새치기하는 사람, 신발을 벗는 등 공공장소에서 마치 자신의 안방처럼 행동하는 사람 모두 분노와 짜증을 유발한다. 저기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는 걸 안다. 법의 잣대로 이 모든 걸 판단하기에는 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지점이 너무나 넓다. 만약 기다리는 사람을 뒤로하고 맨 앞으로 가는 새치기가 처벌의 대상이라면, 뒤쪽 한두 사람을 앞지르는 새치기는 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리는 처벌이 두려워 법의 지시가 있으면 따르고, 법의 지시가 없으면 멋대로 행동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들이다. 벌금이 무서워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과 청소노동자, 거리를 걷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같은 행동이더라도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우리의 자발적인 매너와 예절이다. 자발적인 매너는 법보다 크다. 우리 모두는 사람으로서 대접받길 원하고 평등한 존재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것의 시작이 매너와 예절을 지키는 일이다. 나부터 실천해보자. 사소한 매너가 나를, 그리고 상대방을 사람대접하는 첫걸음이다.
① ‘쩍벌’ 금지: ‘쩍벌’은 ‘쩍벌남’과 한 세트로 자주 쓰이는, 다리를 있는 힘껏 늘여 옆 사람의 자리를 땅따먹기 하듯이 야금야금 차지하려는 행위를 가리킨다. 지하철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하철 요금에 포함된 권리에 한 자리만을 점유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영토 확장에 나선다. 정복왕의 후예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듯하다. 프랑스 파리 시내 전철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인 포스터가 부착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왕이면 다리 좀 오므리세요. 당신의 ‘그것’이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리를 오므려도 터지지 않으니까요.”⁂
② 실내에서 우산 거두기: 비가 내리는 날 출퇴근길 버스와 지하철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습기는 넘쳐흘러 없어질 줄 모르지, 바닥은 흙과 뒤섞인 빗물로 질척이지, 우산이 미처 막아내지 못한 빗물로 젖은 옷은 찝찝하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여기에 모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우산이다. 정확히는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팔랑거리는 우산이다. 우산 끝부분에 찔려본 사람을 알 것이다. 우산이 그 이름과 다르게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우산을 뒤로 기울이거나 크게 흔들지 말자. 뒷사람을 찌르지 않도록 제대로 세워서 잡아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뿐만 아니라 거리를 걸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전투에 나서는 비장한 사무라이처럼 보이고 싶더라도, 영화 <프렌치 커넥션>에서 페르난도 레이가 지하철에서 우산을 이용해 형사를 보기 좋게 따돌린 장면을 따라하고 싶더라도, 참도록 하자.
③ 등산용 폴대 주의하기: 등산용 폴대는 우산보다 훨씬 위험하다. 우산보다 훨씬 날카롭고 뾰족하다. 게다가 우산은 비오는 날밖에 볼 수 없지만, 등산용 폴대는 계절과 날씨를 가릴 것 없이 등장하는 불청객이다. 산으로 떠나며 들뜬 마음에 폴대를 기분 좋게 흔들고 싶은 마음도,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폴대조차 간수하기 힘들 만큼 피로하다는 것도 알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조금만 더 신경 쓰자.
④ 재채기는 입을 가리고: 재채기는 순전히 생리적인 현상이다. 우람한 천하장사도 작디작은 입에서 튀어나오는 재채기는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손이나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건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다. 재채기가 나오는 건 생리적 영역이지만,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화적 영역이다. 갑자기 신호를 보내는 방귀, 콧물 또한 마찬가지다.
⑤ 자전거는 정해진 시간에만: 혼자의 몸이 아니라 자전거와 함께 지하철에 오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공공의 적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하철과 버스는 공공의 이동수단이므로, 일정 요금을 내면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를 끌고 탄다고 해서 대중교통 이용에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다른 처지를 조금 더 이해하고 서로서로 양보할 필요가 있다. 평일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에 오르는 걸 자제하면, 자전거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전거 때문에 주변에 눈치를 안 봐도 되니 좋고 통근자는 자전거로 인한 공연한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매너 있는 행동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사람 한 명이 그러할진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는 사회가 쉽게 변할까. 이 말이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일 리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을 단념하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가능성이 낮을지라도 좋은 변화로의 시도가 늦은 시기는 없다. 매너 있는 생활도 그중 하나이리라. 매너 있게 행동하고자 하는 결심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위에 언급한 몇 가지가 매너 있는 행동의 전부는 아니다. 감수성과 예민함에 따라 느끼는 불편이 다를 테고, 시간과 지역에 따라 요구되는 매너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나이와 성별에 따른 차이도 중요하다. 그래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행동을 제약하는지 돌아보는 일.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 말이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31쪽.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145쪽.
⁂ 신혜정, 「‘쩍벌’은 국제적인 문제다」, 『한국일보』, 2017.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