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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Jul 06. 2017

통근일기:17. 통근 시간이 도보 십 분으로 줄어든다면

친구와 저녁을 먹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버스를 기다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통근 시간 십 분에서 이십 분 정도 있는 건 괜찮지, 회사랑 아예 가까운 거보다 조금 떨어져 있는 게 좋을 수도 있어.” 집에서 코앞인 회사를 다니다가 지하철로 이십 분 정도 떨어진 회사로 얼마 전 이직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허무맹랑한 말에 짐짓 못 들은 척한 걸까. 그는 묵묵부답. 나의 황당한 발언에 주변 사람들도 아연실색했나보다. 시끌벅적하던 광화문 광장마저 조용해진 듯했다. 물론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개념도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친구의 표정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이내 사과를 했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지만, 사과는 할 수 있으니. “‘월요병’을 해소하려면 일요일에 일하라는 말하고 똑같았네, 미안.”

 밤늦은 그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으로 잰걸음을 하던 이들 중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혹자는 나의 사과 발언에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그 근거는 대략 이런 종류일 게다. 약간의 출퇴근 시간은 하루 종일 거의 앉아만 있는 현대인들에게 운동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고, 오가는 시간을 자기계발에 활용할 수 있으며, 생활공간과 업무공간의 분리는 일상과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등등. 

 세계적인 석학이 탄탄한 이론과 화려한 수식을 가지고 이를 증명한다 해도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통근이 건강 증진 및 삶의 질에 미치는 효용감에 대한 탐색적 연구’쯤 되려나. 건강에는 출퇴근보다 산책이나 운동이 이로운 건 두말할 필요 없고 자기계발을 하기에는 교통지옥의 현장보다 집이나 학원이 좋다. 생활과 업무의 분리? 분리가 문제가 아니다. 통근에 빼앗기는 시간 때문에 절대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약간’의 통근 시간? 어느 정도가 약간인지 설명 불가다. 십 분이면 약간이고 사십 분이면 덜 약간인가.

 이왕 이렇게 된 거 통 크게, 통근이 사라지게 되는 상황을 꿈꾼다. 출퇴근길이 걸음으로 십 분이면 족한 상황 말이다. 왕복 세 시간에 가까운 통학과 통근에 익숙해진 지가 어언 십 년에 가까워진 탓일까,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실은 채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십분만 줄게 되어도 감개무량하여 마음을 가눌 수가 없지만 한 켠에서는 확 줄어든 통근 시간이 가져올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나에게 딴짓을 허할 수 있을 텐데

주말에나 간신히 가능한 줄 알았던 고즈넉한 아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라면 거르거나 밥을 가능한 한 빠르게 입에 욱여넣는 게 기본이었던 아침식사가, 음식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출근했던 게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출근시간이 9시라고 했을 때, 약간 부지런하게 6시 30분에만 일어나도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무려 2시간 20분이다. 요리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딴짓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애써 쪼개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이다. 넉넉한 시간은 우리를 재미를 찾는 인간이 되게끔 한다.

 제일 먼저 아침 산책을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은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회사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만 생각해왔다. 바로 기억나는 회사 근처 상점과 시설이 열 개 이하라면 당신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뛰지 않아도 되고, 맘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게 되면 잠시 멈춰도 된다. (회사 부근이 아무리 빼어난 분위기를 자랑한다 해도 여간해서는 그쪽으로 가지 않겠지만) 회사 근처의 공원, 꽃집, 세탁소, 철물점, 문구점, 학교가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최단거리를 검색해주는 내비게이션에서 벗어나 목적 없는 걸음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건 먼 얘기가 아니다.  

 장거리 출퇴근 덕에 하던 약간의 걷기 운동마저 사라져, 마음에 걸린다면 아예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수영을 배워볼까 아니면 헬스장을 다녀볼까. 아니면 요가? 무엇으로 흘리는 땀이든 한여름 수많은 사람이 서로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흘러내리는 땀보다는 적어도 더 쾌적하고 몸에 좋을 것이다. 징글징글한 러시아워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줄고 거기에다 운동도 하고 건강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순수한 의도에서든, 자기계발의 목적에서든 이유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자. 체력과 경제력이 받쳐주고, 관심이 동한다면 일단 부딪쳐봐도 괜찮지 않을까. 성적으로 세워지는 줄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것만으로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가본 적 없고 갈 가능성 없는 이역만리 나라의 언어를 배우든, 생전 처음 잡아보는 망치와 톱으로 목공을 배우든, 빡빡한 회사생활로 잊고 지냈던 인문학을 배우든, 배움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at More and Commute Less 

인상 깊은 졸업식 연설이 하나 있다. “일상의 활동 중 행복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다. 일상의 활동 중 행복으로부터 가장 멀어지게 하는 것은 통근이다. 많이 먹고, 적게 통근하라.”*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사우스대학교 스와니 캠퍼스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 일부다. 졸업 연설에는 꿈, 성공, 노력, 봉사 같은 고상한 가치를 역설하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새삼 놀라웠다. ‘미국은 졸업식 때 이런 이야기도 하는구나.’

 아무튼, 가만 보니 나는 행복과 가까워지는 일은 적게 하고 행복과 멀어지는 일은 많이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나를 본다면 그의 눈은 연민으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래, 이게 다 통근 때문이다! 칼퇴근 성공에 운 좋게 지하철 타이밍까지 잘 맞아 동네로 직행해도 8시가 훌쩍 넘어가버리니 친구와 만나서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헤어짐의 인사를 해야 했다. 거리는 가깝지만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그렇게,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횟수는 차츰 줄어갔다. 휘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만약 통근에 잡아먹히는 시간이 사라진다면 막차 걱정과 다음날 출근 걱정 없이 편하게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친구들도 시간이 되어야겠지만 회사 근처에 새로 구한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을 수도 있을 게다.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즐거움. '킨포크적 삶'은 멀리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고등학교 때의 급식시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상상일까. 아니, 비싼 상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서울은 모두 알다시피, 이 몸 하나 뉘일 작은 공간조차 월에 40만 원을 호가한다. 통근의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그보다 더 클 집세의 부담을 낑낑거리며 이고 다니는 꼴이 눈에 선하다. 통근만 짧다면 심신의 건강, 배움의 즐거움,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달콤한 여유까지 모두 다 한번에 움켜쥘 자신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서울과 파주의 집값 차이는 물리적 거리 이상으로 크다.              




* 데이비드 브룩스의 졸업 연설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daily activity that contributes most to happiness is having dinner with friends. The daily activity that detracts most from happiness is commuting. Eat more. Commute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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