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근 10년간 가장 자주 만나고 제일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 둘이 있다. 그렇게 셋은 사는 곳이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도 조금씩 달라졌는데, 지역에 따라 특정 시기로 이름 붙이자면 당시는 ‘광화문 시대’였다. 친구 A의 자취방이 광화문역 근처였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 그곳에서 모였고, 별다른 일이 없어도 만나서 웃고 떠드는 게 일이었다. 종로에서 간단히 저녁 겸 반주를 하고, 술과 안주를 자취방에 사 들고 가 한창을 떠들고, 다음날 간단히 늦은 아침을 먹은 뒤 헤어진다. 당시 우리 모임의 패턴이었다.
계절로는 아마 겨울에 가까운 시기였을 거다. 빌딩 사이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헤어질 요량이었다. 친구 A가 담배를 꺼내며 나에게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했다. 라이터를 까먹고 안 들고 나오는 일이야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일 축에도 못 끼지만, 나는 라이터를 건네며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너 인마, 이건 총 안 들고 전쟁터 나가는 거야~” 요란하기만 했지 재미도 없고, 뻔하디 뻔한 상투적인 말이었다.
라이터를 받아 든 친구는 맥아리 없이 떠도는 나의 농담을 재주 좋게 받아쳤다. “라이터 안 가져온 거는 건빵 안 가져온 정도밖에 안 돼~” 자기가 던진 농에 스스로 만족했는지 친구 A도 웃고, 곁에 있던 친구 B도와 나도 기분 좋게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담뱃불과 농담을 주고받은 뒤 제 갈 길을 갔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실없는 소리를 한껏 떠들던 그때를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난다. 라이터의 가치를 총에서 건빵 정도로 격하시킨 그 친구는 지금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때처럼 라이터를 가운데 두고 떠들 일은 없어졌지만, 라이터를 빌릴 일이 생기거나 빌려줄 일이 생길 때면 문득 생각나는 것이다. “저기, 건빵, 아니 라이터 좀 빌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