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말할 것 같으면, 어차피 오래전 일이니 뻥을 잔뜩 더해서, 영화에 나올 법한 사람이었다. 그 영화는 허니와 클로버 풍이라고 치자. 영화 동아리 선배인데, 똑똑한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부터 들고 다니는 책까지 그가 하는 것이라면 다 멋있어 보였다(모리스 블랑쇼의 책을 들고 다니는 걸 슬쩍 보고 따라서 샀는데, 한 쪽도 못 읽었다). 나는 1학년이었고 그는 한참 선배였으니 모든 게 더 크고 멋지게 보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장편, 단편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책을 내는 소설가가 된 그와의 인연을 어떻게든 끄집어내고 그러모아 과장하고 싶은 것은데, 별게 없다. 말마따나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학생식당 몇 번 같이 가고 플스방에서 몇 번 간 게 전부다. 아, 세미나가 있었다. 그리고 말이 있었다. 로버트 알트만, 기타노 다케시, 코엔 형제, 빌리 와일더(아는 척 한번 해봤다) 등 유명 감독의 영화를 공부하는 세미나를 했었다. 지금은 영화 제목도 가물가물하니 감독과 영화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래도 선명하게 남은 말이 하나 있다. 세미나를 시작하는 날 그 형이 한 말이다. "이 세미나 끝날 때쯤이면, 적어도 영화를 보고 '좋았다' '별로였다' 너머의 얘기나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 이곳이 바로 대학교로구나. 그 얘기를 들을 때 나의 눈은 이세야 유스케를 바라보는 아오이 유우의 눈이었을 거다. 분명. 아무튼, 그의 말처럼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는 일의 재미와 의미는 '좋았어'와 '별로였어'의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막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좋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인데, 이 소설의 진짜 재미와 의미 또한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무튼, 그거 부지런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만큼 나는 구매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밥값, 플스방값, '말값'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