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네, 자넨 이것이 되고 싶지만 다른 것을 해야만 하자. 이런 것이 자네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넨 너무나 잘 알아. 또 어떤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자. 그걸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야. 밀고 당김의 긴장은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과 비슷해.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살지”
”무슨 레슬링 경기 같네요.”
”레슬링 경기라… 그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묘사해도 좋겠지.”
교수님은 웃음을 터뜨린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공감한다. 내 인생도 레슬링 경기와 같다. 나의 우측 홍코너에는 모리 교수가 말하는 사회의 통념과 커리어 그리고 돈이 있다. 좌측 청코너에는 모리가 말한 삶의 핵심(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삶의 골수) 그리고 기여가 있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한 발 한 발 내디딜수록 홍코너의 힘은 강해졌다. 청코너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인간성으로 인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홍코너에게 짓눌려 가려진 청코너의 존재를 거의 잊을 뻔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독서모임을 만났다. 그 후 다양한 책을 읽고 대화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짓눌려있던 청코너가 조금씩 꿈틀댔다. 도약하기 위해 호흡을 갈무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달 모임에 나갈 때마다 청코너에 힘이 보태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홍코너를 밀어내며 조금씩 일어섰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마침내 청코너는 우뚝 섰고 그 기세를 몰아 홍코너를 누르기 시작했다. 전세가 역전됐다. 나는 그렇게 퇴사하고 백수가 됐다. 1년이라 기간 동안 독서와 사색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1년 동안 다양한 작가들이 청코너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고 지나갔다. 이제 청코너의 힘이 너무 강해져 오히려 홍코너를 짓눌려 버렸다. 나는 돈과 소비를 어느 정도는 증오하기 시작했고. 돈버는 일에 열심히인 사람들을 사회의 노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책들이 청코너에만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상가는 중용을 얘기하며 청코너와 홍코너 모두를 격려해 주었다.
백수의 기간이 지나 다시 일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홍코너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청코너를 짓눌러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청코너가 너무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일과 삶 그 조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홍코너와 청코너는 균형 있게 합을 주고받으며 즐기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레슬링이 아닌 왈츠를 추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누가 우세하냐 열세하냐 아니라, 어느 쪽이 리드하냐로 느낌이 바뀌어가고 있다.
앞으로 내 삶은 균형을 유지하되 청코너가 리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난 계속 읽고 쓰고 대화할 것이다. 청코너에게 사랑을 주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언제 다시 홍코너가 주도권을 잡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