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어린이만 받습니다
봄기운도 한걸음 더디게 오는 두메산골.
강원도 운곡면 두운리에는 동장군의 입김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었다. 햇살이 닿는 곳에는 봄꽃들이 한창 기지개를 켰지만,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여전히 눈더미가 남아있었다.
마을 입구, 녹슨 버스 정류장 표지판 옆으로 낡은 지프차 한 대가 들어섰다. 차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을회관과 분교를 지나갔다. 언덕 아래, 외따로 선 건물 앞에 이르러서야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체구가 컸지만, 마치 녹아내린 눈사람처럼 축 처진 인상이었다. 고수머리는 흩날렸고, 수염은 덥수룩했다.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그는 한참이나 건물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운리 보건지소.
페인트 벗겨진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복층의 시멘트 건물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창고 같았다. 창가를 손으로 훑으니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남자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오소소, 바람이 불었다. 잠시 후 그는 차 뒷좌석에서 낡은 배낭과 캐리어, 의료 가방을 꺼냈다.
- 끼이익
보건지소의 문은 열려있었다. 남자가 조심스레 문을 밀자, 녹슨 경첩이 쇳소리를 냈다. 내부는 예상보다 깨끗했다. 문이 닫히기 전에 그래도 청소를 해놓은 것 같았다. 벽은 낡았지만 다행히 곰팡이 자국은 없었다. 대기실엔 플라스틱 의자 네 개가 일렬로 놓여있었고, 그 너머로 진료실 문이 보였다.
남자는 의료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내부에는 작은 책상과 진료 침대, 그리고 캐비닛이 있었다. 통창 너머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나무와 밭 사이에 흩어져있었고, 그 사이로 좁은 하천이 흘렀다. 마을회관 옆에는 작은 학교가 자리했는데, 놀이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군데군데 돌부리가 드러나 있었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가, 급하게 다시 썼다. 눈가에는 그림자가 짙게 패였다. 누가 봐도 오랜 시간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진료실을 휘이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캐리어를 열고, 안에서 청진기부터 꺼냈다. 귀걸이 부분의 금속은 닳아 있었고, 튜브도 주름이 잡혀서 오래된 티가 났다. 남자는 청진기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손마디가 미세하게 떨렸다.
“괜찮겠지.”
남자는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를 털고 바닥을 닦았다. 의료 캐비닛을 열어 빈 선반을 물티슈로 훔쳤고, 책상 서랍을 열어 다 쓴 볼펜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잠시 후 그는 차 트렁크의 짐들을 날랐다. 의료용품 박스가 둘, 약품 상자 하나, 그리고 개인 짐 서너 개였다.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단칸방 하나가 나왔다. 낡은 이불장과 전기장판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행히 전기장판에는 불이 들어왔다. 남자는 배낭을 구석에 던져놓고 위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얼마쯤 쓸고 닦았을까. 그런대로 사람 하나 지낼만한 꼴이 갖추어지자, 남자는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는 검은색 매직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써 내려갔다.
‘소아과’
그 글자 밑으로 한 줄을 더 갈겨썼다.
‘어린이만 받습니다’
남자는 스케치북 앞장을 찢어 현관문 앞에 테이프로 붙였다. 종이가 바람에 흩날렸다. 다시 테이프를 겹겹이 붙였다.
“그래, 어린이만.”
그는 조용히 속삭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문이 닫혔다.
같은 시각, 마을 입구의 두운리 세탁소.
“저 사람 누구래요?”
세탁소 주인 옥분이 다림질을 하면서 물었다.
마을 이장 김순덕은 팔짱을 낀 채 보건지소 건물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칠순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운이 넘치고 목소리는 걸걸했다.
“의사라던데.”
“저 사람이요?”
“보건지소 다시 연다고 했잖아. 군청에서 연락 왔어.”
옥분은 눈을 크게 떴다. 보건지소는 수년 전부터 비어 있었다. 의사가 떠난 뒤, 군청에서는 대체 인력을 보내지 않았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였다. 아니, 재작년부터는 예산을 늘려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픈 사람은 면소재지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급한 환자는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출동한 대원들이 이 산골까지 오는 데도 사십 분이 넘게 걸렸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옥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저 사람, 의사 같지 않아서요. 차도 그렇고, 머리도 길고… 왠지 도망 온 사람 같잖아요?”
김순덕이 피식,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 사람치고 멀쩡한 사람 있어? 다 이유가 있어서 오는 거지.”
“그래도요. 소아과래요, 소아과. 애들만 본다니.”
“그게 뭐 어때서? 요즘 시골에 아동청소년과가 아예 없다잖아. 애들이라도 봐주면 다행이지. 어른들은 면소재지 가면 되고.”
“그래도 이상해요.”
옥분은 고개를 저었다.
김순덕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마을회관 쪽으로 걸어갔다. 옥분은 잠시 보건지소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다림질을 했다. 다리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그 너머로 한바탕 바람이 마을을 훑고 지나갔다.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산 그림자가 길어지고, 마을에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날 밤, 보건지소 건물의 2층 단칸방.
남자는 전기장판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별이 가득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무수한 별들이 쪽방까지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손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아보았다. 수면제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았다. 낮에는 몸을 쓰고, 밤에는 잠이 들 때까지 누워있을 것. 그것이 불면증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도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이 들더라도 악몽 때문에 금세 깨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늘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보건지소 문이 열렸다.
산등성이 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드리워졌다. 아침 공기는 선선했고, 집집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개들이 여기저기서 짖어댔다. 남자는 문 앞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고수머리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수염은 더 무성해졌다. 그는 문 옆에 붙은 스케치북 글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소아과, 어린이만 받습니다.”
가만히 중얼거렸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말을 하니 가슴이 시렸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보건지소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남자는 진료실에 앉아 의료용품을 정리했다. 소독약, 붕대, 체온계, 청진기를 하나씩 선반에 놓았다. 다시금 위치를 체크하며 그 밑으로 라벨을 붙였다.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첼로 소리가 흘렀다. 비로소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남자는 음악을 들으며 손을 움직였다. 한때 청진기는 지휘봉이었고, 의료기구들은 악기였다. 아이들한테는 듣기 싫은 소리였겠지만, 그는 인형과 더불어 합주했고, 아이들이 웃어주었을 때 비로소 자리를 떴다.
쿠쿵,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북소리.
보건소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바흐의 무반주첼로 선율이 끊겼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쪽에서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의사 선생님?”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끼익,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급하게 스피커를 껐고,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갔다.
대기실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사십 대로 보이는 여자였다. 투박한 인상에 짧은 머리, 낡은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데리고 온 여자아이는 일곱 살쯤 되었을까. 분홍색 외투에, 한 손에는 곰 인형을 안고 있었다. 곰돌이의 갈색 털은 잔뜩 바래있었고, 한쪽 귀는 해어져 솜이 삐져나왔다. 왼쪽 팔에는 작은 밴드가 붙어 있었다. 군데군데 실로 꿰맨 흔적이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남자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의 이마와 곰을 번갈아 보며 가만히 숨을 가다듬었다.
“애가 넘어졌어요. 이마를 다쳤는데, 피가 안 멈춰요!”
여자의 말에, 남자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