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2021년의 REWIND]
제가 일본음악 연말결산을 하기 시작한 것은 IZM에 들어간 다음해부터였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음악을 듣고 쓰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지만, 그래도 나만의 특장점을 만들고 싶었다고 할까요. 당시 IZM엔 일본음악 담당이 마침 없었던지라, 원래 제이팝을 즐겨들었던 저는 아예 이쪽으로 포지셔닝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여러 일본음악 콘텐츠들을 넘치는 의욕으로 써내려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취업반이었던 저, 직장인이 답이 맞을까 라는 고민을 하며 정말 스펀지처럼 음악을 듣고 쓰던 시절이네요. 그리고 어느덧 그 결산이 작년으로 딱 열번째가 되었죠.
그 10년치를 한 곳에 모아놓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는데, 마침 브런치에 개설할 수 있는 매거진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어 이번 글을 시작으로 과거의 결산 글을 지금의 소회와 함께 모두 가져와보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는 2011년의 제이팝 앨범 결산!
지금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이때는 2년도 채 안되었을 때라 '왜 저런 표현을 썼을까' 싶은 부분이 중간중간 보이네요. ㅎㅎ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때였기에 쓸 수 있는 표현도 있고... 과거의 글을 보고 있자면 여러 감상에 젖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만 해도 풋풋하던 대학생 시절 ㅠㅠ
리스트를 슥 살펴보니 재미있네요. 랏도의 앨범은 개인적으로는 최고작이라 생각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지금은 좀처럼 이런 로킹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땜시 더 정이 가기도.. 그와 별개로 최근에 있었던 쿠와하라의 불륜 발각은 정말 얼척이 없었습니다. 범프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런 것까지 따라하는 거?
안디모리에 대한 글은 그들에 대해 꽤나 깊게 알게 된 지금에 와서는 너무 얕게 평을 썼구나 싶기도 합니다. 퍼퓸은 하도 전작 < GAME >이랑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아 살짝 악에 받쳐 글을 끼적였던 기억도 나고요.
네고토는 참 아쉽네요. 초반의 임팩트를 결국 이어가지 못한 셈이 되어버렸고, 보디스도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는데 뭔가 예전만큼의 불꽃이 안나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이 글을 쓸때만 해도 모모쿠로가 도쿄 돔에서 공연하는 대형 아이돌로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ㅎㅎ 혹시 2011년에 들었던 일본음악이 기억나시나요? 여러 분들은 어떤 음악들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래드윔프스(RADWIMPS) < 絶体絶命(절체절명) >
항상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과의 비교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그들이 드디어 동등한 위치에 올라왔음을 당당히 피력한 한해였다. 소절에 따라 변화하는 편곡, 철학적인 세계관을 유연한 플로우에 담아낸 가사, 거기에 표현력 충만한 연주력과 보컬까지. 올 한해 이렇게 파격적임과 동시에 대중적인 면모를 담아낸 작품이 또 있었나 싶다. 'DADA'나 '狭心症(협심증)' 등 싱글도 매력적이지만 '学芸会(학예회)' 등으로 대표되는 수록곡들도 엄청난 퀄리티를 내뿜는, 손에 꼽을 만한 수작이다.
사류 바이 사류(salyu x salyu) < s(o)un(d)beams >
참신함. 이 세 글자로 설명은 충분하다. 목소리를 분절해 악기와 같이 삽입한 '다중녹음' 콘셉트의 이 앨범은 고정관념을 깨는 아이디어가 그에 걸맞은 프로듀서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을 구현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플리퍼즈 기타(Flipper's Guitar)시절부터 지금의 코넬리우스(Cornelius)에 이르기까지 항상 제이팝의 새 지평을 열어왔던 오야마다 케이고(小山田圭吾)의 감각과 표현력에 있어서 최대치를 발휘했던 사류의 보컬이 합쳐져 만들어 낸 신세계라 할 만하다. 장르의 벽을 허무는 몽환적인 소리의 향연을 체험하기 위해 꼭 필요한 프리패스.
안디모리(andymori) < 革命(혁명) >
2011년에 재현된 일본판 '개러지 록 리바이벌'. 단순한 코드와 3분이 되지 않는 짧은 곡 길이, 끼적이듯 써내려간 가사까지 한 번 슥 들으면 왠지 매력 없어 보이지만 그 싱거움이 거듭된 감상을 통해 짙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그들이 만들어낸 혁명에 일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터. 자극적인 작품은 아니라 단숨에 시선을 붙잡지는 못할지라도, 한번 빠져들면 오랫동안 유유히 들을 수 있는 참 편안한 록 앨범이다.
아베 마오(安部 眞央) < 素(꾸미지 않은) >
올해의 여성 싱어는 니시노 카나(西野 カナ)도, 주주(JUJU)도, 수퍼플라이(Superfly)의 오치 시호(越智 志帆)도 아니었다. 사정없이 몰아붙여 급소를 후려치는 통렬함, 때로는 호흡을 조절하며 끊어질 듯 노래를 이어나가는 요염함, 여기에 가성과 진성을 오가며 듣는 이를 감화시키는 테크닉까지. 여러 요소를 고루 갖춘 재야의 고수가 좋은 곡을 만나며 기대 이상의 파급효과를 냈던 한 해였다. 차트 성적이 앞서 언급한 가수들보다 다소 쳐지긴 했지만 좋은 가수는 언젠가 빛을 보는 법. 조만간 정상을 밟을 것 같은, 앞으로 이어질 영화(榮華)에 대한 예고편이다.
스키마스위치(スキマスイッチ) < Musium >
솔로활동을 끝낸 후 내놓는 멋진 컴백작. 판매고에 비해 불려지는 곡들은 다소 적은 그들이었기에 이를 극복하고자 절치부심한 흔적이 가득하다. 다소 스탠다드한 팝록 사운드임에도 표현에 있어서 더욱 세밀해진 오오하시 타쿠야의 보컬, 어느 한곡 쳐지지 않는 평준화 된 멜로디라인이 러닝타임 전체를 풍성하게 만들며 어느 한 곳 귀를 뗄 수 없도록 했다. 특히나 'センチメンタルホームタウン(Sentimental hometown)'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절절히 느껴지는 베스트 트랙. 그들의 대표 싱글이 '全力少年(전력소년)'이라면, 대표 앨범은 이 < Musium >이 될 확률이 커 보인다. 참고로 앨범 타이틀인 < Musium >은 오타가 아닌 Museum과 Music의 합성어라는 사실.
퍼퓸(Perfume) < JPN >
신곡이 별로 없다는 점도 안다. 그룹 본연의 색이 조금 옅어졌다는 의견 역시 인정한다. 그렇다고 < Game >이나 < ⊿(Triangle) >과 같은 스타일을 재현하기에는 판매량과 반응에 있어서 다소 시들해져가는 그룹의 전환점을 마련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꺼내든 수가 바로 '팝으로의 무게 추 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장르적 이점을 무시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이 둘을 기가 막힐 정도로 영리하게 섞어 놓은 프로듀서 나카타 야스타카(中田 ヤスタカ)의 능력이 오히려 퍼퓸이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여러 커뮤니티를 보면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모양새지만, 그룹에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 있어서 그 허들이 낮아졌다는 점과,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래도 '대중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이 많이 회자된다라는 가정 하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된 작품. 아, 물론 여태까지 나온 싱글을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두다가 이 앨범 한 장에서 몰아들은 내 탓도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더 보디스(The Bawdies) < Live the Life I Love >
일본판 문샤이너스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단지 문샤이너스는 양(陽), 이쪽은 음(陰)이랄까. 1950~60년대의 록큰롤과 브리티시 록에 기원을 둔 이들의 세 번째 작품은 사람들이 땀으로 범벅되어 뛰어노는 허름한 클럽의 분위기가 환상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걸걸한 중저음대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베이스 겸 보컬 로이(Roy)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나는 록 파티가 2011년을 맞아 드디어 절정을 맞았다. 기타의 쵸킹음과 함께 화음을 쌓는 후렴이 인상적인 'Just be cool', 상승하는 리프가 토요일 밤의 열기를 휘감는 'A new day is comin'' 등 가슴이 뻥 뚫리는 40여분간의 시간여행을 책임져 줄 타임머신!
네고토(ねごと) < ex Negoto >
올해는 여성 록 신의 바통터치가 두드러진 한 해였다. 솔로는 유이(YUI)에서 미와(Miwa)로, 그리고 그룹은 챠토몬치(Chatmonchy)가 타카하시 쿠미코(高橋久美子)의 탈퇴로 주춤한 틈을 타 이 팀으로 그 헤게모니가 상당 부분 옮겨간 느낌이다. 독특하게도 키보드 포지션의 멤버가 노래를 담당하는 이 4인조 여성 록 밴드는 강렬하면서도 탄탄한 얼개를 가진 사운드와 발군의 선율 제조능력을 보이며 단숨에 메인스트림의 중심부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앞서 언급한 챠토몬치가 아마추어의 흔적이 남아있는 심플함을 무기로 삼는다면 네고토는 철저히 그 퀄리티, 여려보이지만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는 음악성으로 승부한다. 독특한 신스 음을 사용한 'ループ(Loop)', 절정의 선율로 다가가는 그 순간순간의 과정이 포인트인 'カロン(Charon)'을 듣고 있자면 우리나라에도 어서 숨죽이고 있는 여성 밴드들이 치고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만 가득해진다.
야마시타 타츠로(山下 達朗)< Ray of Hope >
중견 뮤지션들의 공력 또한 대단했다. 오다 카즈마사(小田 和正)의 신보, 그리고 호테이 토모야스(布袋 寅泰)의 30주년 기념 콜라보레이션 작품 등 그 이름만큼이나 풍성했지만 그 중의 톱은 바로 이 작품으로 조심스레 꼽고 싶다. 이미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검증된 그만의 팝 감각은 이제 더 이상 의심을 가지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그런 수준에까지 이른 듯 하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는 모습은 많은 음악인들의 본보기가 되어 온지 오래. 신작 역시 특유의 음색, 아카펠라의 적극적인 삽입 등 예전과 같은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때로는 오토튠을 도입하는 등 신구 조화에 흐름을 놓지 않는 진짜 뮤지션의 자세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높게 평가되어야 할 야마시타 타츠로의 세월이 담겨 있는 명반.
모모이로클로버Z(ももいろクロバZ) < バトル アンド ロマンス(Battle and Romance) >
자국민들조차 일본 아이돌은 오타쿠의 전유물이라 비웃는 와중에서도 철저히 그 노선을 유지하며 여기에 전대물이라는 콘셉트까지 차용해 좁디좁은 팬 층에서 차별화를 노린 앨범이다. 5분이라는 시간 동안 후뢰시맨 한편을 집어넣은 듯 한 깨알 같은 구성의 'Z伝説 ~終わりなき革命~(Z전설 끝나지 않은 혁명)', 속도감 있는 라틴 리듬과 애처로운 멜로디가 가슴을 후벼 파는 가운데 가사를 듣다보니 '방학 숙제 못했다는 이유로 1학기로 다시 돌려달라고' 떼를 쓰더라는 황당무계한 'ワニとシャンプー(악어와 샴푸)',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의 편곡이 왠지 모르게 쓸데없어 보이는 와중에도 멋있게 곡을 포장하는 'D'の純情(D의 순정)' 등 여러모로 상식을 뒤집는 곡들이 산재한다. 여기에다 극강의 선율을 선보이는 'コノウタ(이 노래)'까지. 머리비우고 재미있게 듣기에 최적화된,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마이너한 아이돌 세계로의 초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