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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스터 Jun 10. 2018

지독한데 아름다운 심리전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고

모래성 게임을 생각해보자.     


어렸을 적 운동장이나 해변에서 누구나 한 번쯤을 해봤을 법한 놀이니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1박 2일>에 나온 모래성 게임


엉덩이를 깔고 앉아 모래를 쌓아 올린 뒤, 정중앙에 깃발(혹은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나 빨대 등)을 꽂으면 준비는 모두 끝.     


룰은 간단하다. 상대와 번갈아가면서 모래를 자기 쪽으로 가져가는 것. 자기 차례에 깃발이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면 벌칙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차례에 깃발이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적당히 섬세하면서도, 상대가 벌칙을 받을 수 있게 최소한의 모래더미만 남도록 적당히 과감한 손놀림을 구사하려 애쓴다.     


그런데 게임을 한창 하고 있던 도중, 이상한 생각이 당신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당신과 게임을 하고 있는 ‘그들’이 당신의 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 게임에서 당신이 이뤄내야 할 것은 ‘그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당신과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서로가 깃발을 무너뜨리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라,

깃발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그래서 그 누구도 벌칙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면서, 깃발 아래에 묻혀 있는 그 무언가를 함께 찾아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래서 당신과 그들은 노력해보게 된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늦추지 못하면서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깃발 아래 묻혀 있는 그 무언가에 함께 도달하려는 노력.


방심한 사이 깃발이 균형을 잃어 누군가 벌칙을 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내가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는 내내 떠올렸던 이미지다.     


이 책은 수키 김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겸 저널리스트가 평양과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보낸 6개월을 글로 기록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엄격한 통제의 실상이라든지, 감추려는 북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목격되는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구체적인 장면과 사례들로 엿본다는 재미도 분명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북한 학생들과 강사 수키 김이 맺어나가는 관계의 양상이다.     


평양과기대에서 강사들과 학생들은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과는 무관한 일체의 교류, 특히 북한의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만한 이야기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키 김은 학생들에게 보다 자유롭고 넓은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 견제하고 검열할 수밖에 없다. 연애와 같이 아주 일상적인, 체제나 국가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소재를 말할 때조차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북한에서는 인터넷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마는 식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의 자기 검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 담당관으로 대표되는 북한 당국의 통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키 김의 학생이기 이전에 북한 체제에서 자라온 완전한 타자이다. 그래서 그녀는 학생들이 가끔씩 던져오는 난감한 질문이 어쩌면 자신의 사상을 확인하기 위한 함정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반대로 학생들에게는 수키 김의 존재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그녀는 바로 ‘조국의 원수’ 미국으로부터 온 사람이니까. 분명 그들에게는 수키 김이 자신들의 국가와 사회와 문화를 부정하려하는 침입자이자 적대자로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경계나 두려움, 의심을 완전히 거두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불안감은 단순한 거부감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그녀에게 '잘못 넘어간다면', 그들은 체제에 균열을 불러왔다는 죄목으로 언제 어떻게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키 김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심정이 책에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끔씩 학생들의 반감이 드러나는 지점들이 보인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것이 어찌 체제와 체제, 이념과 이념의 만남이라는 틀로만 한정 될 수 있을까.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 사이에는 공감이나 이해와 같은 순간들이 아주 조금씩,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래, 그리고 어떤 조그마한 낌새에도 쉽게 뒤집힐 만큼 미약하게나마, 쌓여 나간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수키 김이 학생들에게 ‘젠틀맨’이라고 불렀을 때 학생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설레어하는 미소를 보인 그 순간부터 이미.         


그렇게 수키 김과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와 불안함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려는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움직임을 벌여나가게 된다.


서로가 깃발을 무너뜨리도록 만드는 것을 그만두고, 함께 목적지(당장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조금 옮겨 보자면 아래와 같다.          


“대통령이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죠? 아닙니까?”     
나는 그 순간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를 들은, 정확히 그런 종류의 토론이었다. 나는 이 학생이 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노력할지 모르며 더 나아가 내가 그를 큰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런 것과 비슷해”     
나는 주의 깊게 말했다.     
“예를 들어 이 학교에서 제임스 김 총장이 평양과기대의 얼굴이지만, 실제 권한은 그의 것이 아니며 그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되지. 우리 체제에서도 똑같아.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나라야. 대통령은 단지 얼굴이고 상징이며 실제 권한은 국민에게 있어. 국민이 결정을 한단다.”     
내가 방금 묘사한 것은 대강의 민주주의였다. 나는 그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거의 곧바로 그가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시간을 너무 많이 뺏고 싶지 않습니다. 함께 저녁을 하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그날 저녁 케이티(동료 강사)와 나는 그 학생의 동기에 대한 커지는 두려움을 상의하면서 다시 캠퍼스를 몇 바퀴 돌았다. 어쩌면 그는 우리에 관한 정보를 넘기고 어떤 종류의 보상을 얻는 임무를 띠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죠?”     
케이티가 말했다.     
“그들이 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를 강제로 추방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추방당해서 집으로 보내지는 거고 그거야 좋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쩌죠? 만일 그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두 번째 시나리오가 우리 둘을 암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의 의문에 대한 선동자라면, 지금까지 그가 알았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우리가 진실로 가는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만일 그가 요청하더라도 다시는 그와 함께 앉지 말자고 합의했다.     
“우리와의 저녁 한 끼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어요”     
케이티가 말했다. 스물 세 살짜리 멜로드라마 같은 언급을 묵살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게 그런 게 아님을 알았다. 북한에서 그런 결과는 전적으로 가능했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과 상대의 의도에 대한 의심, 그러나 동시에 존재하는 상대에 대한 애정 어린 걱정. 이 모든 것들이 뒤섞인 상태로 그들은 묻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교류한다.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몸놀림의 끝에 그들이 결국 도달하게 될 목적지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는 모르겠다. 체제와 이념을 뛰어넘은 진정한 교류와 공감과 이해, 일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 어떤 종류의 각성과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두들 모래성 게임을 해봐서 알 듯, 깃발은 별것 아닌 움직임에도 무너진다. 실제로 수키 김과 학생들은, 학생들이 학기 말에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나듯 어느 정도의 진정한 교감을 이루어낸 듯하지만 그 교감은 김정일의 사망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도 쉽게 뒤집혀 버린다.     


그러나 6개월이란 짧은 체류시간이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아주 긴 시간의 단위로 본다면, 결국엔 어딘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질문이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남는다. 그것은 내가 학생들과 수키 김 간의 관계에서 그 가능성을 분명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능성을 지독하지만 아름다운 심리전,이라 이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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