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로파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람스터 Nov 09. 2018

대리만족과 고민해결 사이

tvN <선다방>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 사랑 좋다. 하지만 누군 안하고 싶어서 안 하나. ‘N포 세대’란 무시무시한 이름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취업 준비하고, 아르바이트 하며 돈 벌기 바쁜 청춘에게 연애는 후순위로 밀리기 십상. 막상 사회에서 자리 잡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연애를 해야 한다, 이거야”라고 후배들에게 충고를 건네 보지만, 그런다고 없던 사람이 생기지는 않는다. 어렵사리 잡은 소개팅 기회는 어느새 죽어버린 연애세포 때문에 허탕 치기 일쑤다.


그런 중에 기특한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니, tvN의 <선다방>이다. 멋진 외모에 화려한 직업은 물론 자상함과 센스까지 갖춘 매력 남녀들의 사랑을 엿보는 <하트시그널> 류의 프로와 달리, <선다방>은 일반인 남녀의 연애 고민 해결에 적극 나선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의 신기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개팅 주선에 직접 뛰어 든 것이다. 남의 사랑 이뤄주려다 내가 상처받을 각오까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소개팅 주선자의 역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연애가 고픈 사람에게나 소개팅 요청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에게나 고마울 수밖에. 실제 매칭 성공률도 꽤 놓은 편이라, 출연진 중 두 쌍의 커플이 진지하게 만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그 외의 쏠쏠한 소득도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람들의 소개팅을 지켜보다 보면 과거의 ‘망한’ 소개팅들이 줄줄이 떠오르며 타산지석 삼을 만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라’라는 친구의 하나마나 한 조언보다, 팝콘에 정신 쏠린 남자와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자의 굳어가는 얼굴이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 카페지기 중 한 명인 유인나가 사이사이 건네는 소개팅 팁도 알아두면 쓸 데가 있어서, 인터넷에는 그녀의 어록이 따로 정리 돼 올라오기도 한다. 연애의 설렘을 거쳐 결혼이란 안정기에 접어든 유부남 이적과, 특유의 촐랑거림으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소개팅 당사자들 간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내는 양세형의 앙상블도 좋다. 세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거짓된 모습으로 사랑 받으려 하기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미움 받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선다방>은 단순한 맞선 프로그램을 넘어 사랑에 대한 철학을 나누는 자리까지 넘본다.


그렇지만 <선다방>이 <하트시그널>이나 <러브캐처>와 같은 프로그램과 본질적으로 다른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쉽지 않다. 남의 피 수혈 받듯, 남의 연애 보며 가슴 떨리는 설렘을 외부에서 조달 받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 재미라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유인나가 전하는 소개팅 꿀팁을 적어두고 외운다고 해서, 연애가 계속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마냥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선남선녀를 찾는 제작진의 적극적인 섭외 하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거리감은 한층 커진다. 결국 연애 프로그램은 이상적 남녀의 사랑을 엿보는 대리만족과 나의 고민해결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의 불안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