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를 딱 두 번 가 봤다. 두 번 다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는 함양 한 달 살기를 할 때, 두 번째는 담양 한 달 살기를 할 때. 부러 만나려면 충북에선 서 너 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 내가 전라도로 내려가게 되자, 한, 두 시간 거리쯤이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와 나는 평생 다른 지역에 살았다. 유일하게 같은 곳에서 지냈던 때는 북경에서 유학할 적이었는데, 그마저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만나야 했다. 나는 북경체육대학교, 그녀는 북경사범대학교를 다녔다. 북경사범대학 근처의 신졔코우 거리를 기억한다. 언니는 나에게 비싸고 고급스럽고 특이한 중국요리를 많이 사 주었는데, 나는 한인들이 많은 우다오코우에서 당시 한화로 3,000원 하던 된장찌개 한 그릇을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둘 다 가난했고 부모님께 손 벌려 유학하는 것을 빚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피 터지게 공부했다. 굳이 학교에서도 요구하지 않던 HSK 고급 자격증을 딴 것은 언니의 영향이었다. 드라마 한 편의 중국어 자막을 몽땅 다 받아 적거나, 하루에 새로운 단어를 수십 개씩 외우는 것도 몽땅 언니에게 배운 것들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곳은 우슈 경기장에서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파릇파릇했던 우리는 그저 열심히 운동을 해서 성적을 잘 내고 싶던 학생이었다. 파란 치파오 도복을 입고 창술을 연기하던 언니는 내 우상이었다. 단국대에 특채로 입학했던 언니는, 돌연 자퇴를 하고 북경행을 선택했고, 먼저 북경으로 유학을 갔던 언니의 영향으로 나도 중국 유학을 꿈꿀 수 있었다. 언니는 유학원 대신 나의 북경체대 진학을 알아봐 주었다. 내가 북경에 도착할 때 공항에 마중 나온 것도 언니었고, 함께 학교로 가서 입학신청을 도와준 것도 언니었고, 먼저 알고 지내던 북경체대의 한국 유학생 선배를 소개해 준 것도 언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언니가 소개해 주었던 그 선배들과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
언니는 낯선 중국에서 가진 게 배짱 밖에 없던 나보다 더 용감했다. 중국어를 잘 몰라 손짓 발짓을 섞어서 대화를 해야 하던 시절에도 닭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가서 “달걀 엄마 있나요?”하고 용감하게 물어, 지금껏 유학생들 사이에 전설로 회자된다. (이 일화는 저서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에 에피소드로 등장하기도 했다.)
나는 인간관계가 매우 좁고 깊은 편이라 여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가 나의 세월을 다 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나의 전 남자친구를 다 알고 나의 성공과 실패를 모조리 지켜보았으며 바쁘다고 가끔 잠수를 타는 것을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20년 넘게 본 사람들이다. 서로가 아주 꼬꼬마 어린 시절부터. 자주 만나 부대끼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대해 응원하고 지지해 준다. 그런 친구들을 가끔 만나는 날이 오면 어쩐지 굉장히 설레는 기분이 든다. 웬만해선 잘 설레지도 않는 요즘인데 말이다.
간만의 나의 여수 방문에, 손 많이 가는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있는 언니가 신경 쓰일까 봐 나는 내 스케줄을 미리 다 짜놓고 언니에게 함께할 수 있는 것만 같이 하자고 했다. 나의 여수여행은 나의 것이므로. 언니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오겠다는 언니의 아이들에게 5만 원씩을 쥐어 주며 엄마를 빌렸다. 엄마랑 밥 먹고 올 테니 알아서 시켜 먹고 있으라고. 언니와 푸짐한 여수식 식사를 하고 포차거리에 가서 딱새우회를 시켰다. 여수밤바다는 아름답고 오랜만에 본 그녀와 옛날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했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는 건 늘 즐겁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너는 어떻게 살 거야, 뭐 재밌는 새로운 일 있어, 이런 질문이 오가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러는 그들에게 영감이 되기도 하는.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몹시 피곤한 사람이다. 작가가 예민하다고 하더니, 사람에게로 받는 스트레스의 초예민함으로 따지자면 거의 대작가라도 될 수 있을 듯한 수준이다. 그것이 얼굴에 드러날 법도 하지만 평상시 내 얼굴은 누구보다 평온하다.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일하기 때문에, 피곤한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닐까. 불편한 사람들과 인사하고 낑겨 살지 않아도 되는 환경 덕분이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며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전혀 없다. 외로울 것 같으나 늘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생에 진심으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라 말을 하는데 그 말대로라면 나는 이미 성공이다. 이 친구들은 내 인생을 표류하지도,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다. 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미운 감정이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사람들이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무엇이라도 내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여행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 낯선 풍경과 분위기, 공기, 먹거리, 볼거리. 그중에 가장 좋은 여행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 아닌가 한다. 사람 때문에, 평생 가 볼 일 없는 곳에 발을 내디딘다. 이제 그 도시는 그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수밤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호텔에서 하루 묵고 전남 한 달 살기를 마무리했다. 긴 시간 운전을 하여 충북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오랜만에 돌아오니 집이 최고긴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6Gl0aR3D8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