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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의 외도

제6회 수려한 합천 영화제 사무국에 취업(?)을 함

by Hyemi Lee

가만 돌이켜보니, 평생 나는 직장에서 9to6와 같은,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아서 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결제를 받고, 검수를 받고 하는 일 따위를 할 수 없는 매우 제멋대로인 성격으로의 성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생 시절에도 책상 앞에 8시간 이상 앉아 있을 재간이 없어 걸핏하면 땡땡이를 치고 몰래 도망을 가곤 했던 내가, 이 시점에서 남 밑에서 일정 시간 일을 하면서 싸워야 할 가장 큰 고비는 바로 허리 통증이었다. 학교야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지. 팀원들 눈치를 보느라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느라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나마 화장실을 오가며 틈틈이 맨몸 스쿼트라도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운동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대단한 행위라는 것을,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또한 새삼스럽게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2025년 제6회 수려한 합천 영화제 사무국에 합류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쓰리잡씩 뛰면서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 글을 써 보겠다고 바둥거리던 내가, 한 달 동안 꼼짝없이 다른 일에 매진하게 된 것이다. 팔자 좋게 한 달 살기 한다며 다른 지역에 오다닐 적에도 컴퓨터만 있으면 구멍 없이 회사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는 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영화제를 흥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제의 집행위원장님은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20년이 넘게 '사부'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분이었다. 오랜 시간 봐 온 나를 믿고 맡겨준 일이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물론 사심도 있다.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열정이다. 열네댓 살 정도 되던 때에 내가 간절하게 바라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단편영화도 여러 편 찍었다.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정말 제멋대로 찍어 올렸지만, 나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여러 번 청소년 영화제에 수상을 하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당시, 영화를 전공하는 대신 무술 전공을 선택하며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지만, 그때 영상을 찍고 편집하던 습관 덕분에,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된 요즘, 뒤처지지 않고 무언가를 찍고 편집하며 회사 홍보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스무 살 당시, 영화와 무술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하며, 영화는 나이 들어서도 찍을 수 있지만, 무술은 나이 들면 하기 힘드니, 일단 희소성 있는 것부터 하자고 생각해 무술을 선택했다. 더 나이가 들어 나를 알게 되고서는, 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협업을 하는 것보다는 혼자 조용히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나 자신의 성향을 알게 되었다. 만일 내가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해 가며 해야 하는 영화 일을 했다면 분명 중간에 그만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아, 영화를 찍는 대신 글을 씀으로써 일종의 표현의 배설 욕구를 충족하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운명 같은 것들은 어떻게든 나에게 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부라 부르는 이번 영화제의 대장은, 열여덟 살이던 내가, 무술영화를 찍어 보겠다고 출품한 통영 영화제의 편집을 맡아준 편집실의 수장이었다. 무술영화를 편집하며 그를 사부라 부르게 되었고 이십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렇게 부르고 있다. 영화 한 번 찍어 보겠다고 8mm짜리 대빵만 한 카메라를 들고 설치고 다니던 고등학생이, 어느덧 완숙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 또 다른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영화제의 진행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일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시키지 않아도 영화제의 트래픽을 위해 갖은 간식 협찬을 구하기 위해 백방 알아보았으며, 공식 SNS 계정 대신 비공식 SNS 계정을 따로 만들어 내 멋대로 올리며 홍보를 전담하고 있다. 우리는 9월 중순부터 경남 합천에서 모여 합숙을 하며 오로지 영화제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8명의 인원이 몽땅!


이렇게 새로 시작하는 일 덕분에 요즘 나의 뇌는 완전 새롭게 돌아가고 있다. 휴식도 좋고,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다른 일을 하며,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자극이다. 일이 즐거웠던지, 전에 없이 식사를 많이 하고 소화도 잘 되어 살이 포동포동 찌고 있다. 항상 화닥화닥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 안달하던 나의 성격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예술가와 같은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쌓는 사부님의 성향에 물들어 십 수년 동안 해 온 나의 사업에, 나의 글쓰기 습관에, 나의 생활 전반의 리듬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연휴가 끝나면 마지막 일주일의 박차를 가한 다음, 영화제를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에 꿈을 실은 감독님, 배우님들과, 또한 각자의 이유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분들을 만날 테다. 어떤 이는, 영화관에서 집중해서 본 단편영화 한 편에 영화인이 되는 꿈을 키울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출품한 영화가 수상하여 기쁠 테고, 그렇지 못해 아쉬운 사람도 있을 테다. 그 모든 과정이 모든 분들께 득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제삼자의 눈으로 관망하며, 잊고 살았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충전하고 올 것 같다. 한 때 나도 영화인이 되고 싶던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말이다.

또한 시골에 살며 다양한 축제, 행사에 참여하고 개입해 본 적 있는 나로서, 축제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수칙! 그렇기 때문에 기분 좋은 간식도 많이 준비했고, 영화 외에도 재미난, 다양한 게임도 많이 준비했다. 혹시 행사가 궁금하신 분이 계실까 봐 아래에 행사 전반 안내를 하며 글을 맺는다. 그러니까 브런치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는 것은...... 이렇듯 바쁘게 뛰어다녔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어 본다.




제6회 수려한 합천 영화제

일시 : 2025년 10월 18일(토)~10월 19일(일)

장소 : 경남 합천 영상테마파크

입장료 : 매표소에서 "수려한 합천 영화제 사무국의 사무국장 이혜미 씨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말씀하시면, 무료입장 가능합니다.

영화상영 : 자세한 내용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오후 1시~6시까지 짧고 힙한 단편영화들이 상영합니다. https://www.bhiff.co.kr/

장편영화 : <<파이란>> 18일 17시 상영 예정.

이 가을에 어울리는 한 남자의 진한 사랑이야기.

여전히 평점 9점을 고수하고 있는, 한 번쯤은 영화관에서 집중해서 보고픈 영화!

게다가 + 무려 간식 5종 세트를 드립니다!!

스탬프투어 : 18일(토), 19일(일) 오후 1시에 스타트!

8개의 영화 관련 퀴즈를 풀고, 게임을 완성하면

8개 완성 지역상품권 2만 원, 4개 완성 지역상품권 1만 원.


그러니까 데이트 비용 없이, 아이들 데리고 돈 쓰면서 주말 여행 할 필요 없이 무료로 즐기고,

식구 수대로 지역상품권까지 타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실 수 있는 거죠!


https://www.instagram.com/reel/DPaWVbolCKv/?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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