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어렵고도 힘들어
돈키호테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돈키호테가 확실하다
아주 오래전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오사카에 있는 돈키호테를 한번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도무지 물건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가
좁디좁아 내 엉덩이가 물건을 쓰러뜨릴 거 같아서 온 몸에 힘을 바짝 줘야지만
겨우 한걸음 내딛을 수 있어서 자꾸 몸을 축소시켜야 할 것 같은 경직된 기분.
누군가 내게 뭐라고 타박하지 않았지만 셀프 타박 속에서 긴장해야 하는 기분.
정말 피곤의 토네이도가 휩쓸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다르지 않게 들어가는 입구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결국 2층 의약품 매장에서 정신이 날아갔다. 의약품은 거기서만
계산을 해야 한다고 하고, 그게 면세범위 5천엔 이상이면 4층으로 올라가서 면세를 받아야 하는데
이미 앞전에 서 있는 중국인 관광객의 순조롭지 않은 계산 과정을 지켜보며 아차 싶었고,
나는 의약품만을 사서 바로 위층으로 안내를 받아 갔지만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아서,
때가 꼬질꼬질한 코팅된 번호표를 들고 있자니,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겠다고 이러는 것도
추레하고(내가 돈이 많은 건 절대 아니면서) 순간 너무 더웠고, 정신이 쏙 빠지게 멘붕이 왔더랬다.
물론 열폭을 하지도 않고, 차례를 기다려 돈을 돌려받고 물건까지 받았는데, 그 포장은 뜯으면 안 된다고 하니, 아니 왜???
남들은 뜯을지도 모르겠지만 큰일 날 거처럼 말을 해서 고이 모여들고 내려갔다.
그리고 2층에서 사장님을 만나 동전파스를 사시라고 종용했으며. 그 후 나는 사장님 바구니에 있던
라면을 보고 지하로 내려가 라면 두 개와 초콜릿을 구매해서 냅다 계산했다.
사장님은 나와서 담배를 태우실 각이었는데, 역시, 흡연 천국. 저 자리에서 흡연을 해도 무방했다.
나야 웃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빨리 술자리가 펼쳐지고 있는 나카쓰 포장마차로 가시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야 따라나서겠지만, 술을 끊고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된 후로는 웬만하면 그런 자리 안 간다.
사장님을 술자리가 펼쳐질 나카쓰 포장마차로 보내고는 나는 호텔로 돌아오기로 한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 조용히 길을 걷고 싶었고,
밤거리가 살짝 무서웠지만 그래도 빨리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돌아가 마시고 싶었다.
걷는 동안은 구글이 안 되어서 길을 잃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렇게 길치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았고,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일하게 오롯하게 혼자 있던 시간.
후쿠오카의 밤은 의외로 조용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연말이어서 그런 듯했다.
세븐일레븐이 아닌 패밀리마트에 가서 하루 종일 구경을 하다 결국 또 맥주 한 캔과 치즈 하나만을 사서 나왔다. 이미 돈키호테에서 산 라면이 있으니까.
호텔에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C가 와 있었다. 내가 없어져서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 관계로 컵라면을 끓이고, 초밥과 오뎅을 사 와서는 C와 M까지 모여서 먹어치웠다. 배는 부르고 아직도 이 여행이 절반밖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 까마득했다.
피곤함이 스멀스멀 몰려왔다.그렇게 C와 수다를 떨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우리는 배가 불러 그냥 내려가 간단히 커피 한잔만 하자고 했으나 자리를 안내받자마자
어제 못 먹은 카레가 눈에 띄었고, 오믈렛도 먹어줘야 했고, 미소시루와 카레를 먹고,
일본은 쌀이 좋아 밥이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크로와상에 커피를 마시며
어쩌면 빵도 맛있다고 좋아했다. 점심 저녁이 부실할 것을 예상해서 많이 먹어두어야 했다.
짐을 다 꾸려서 8시 넘어 버스에 탔다. 없었던 센스와 개그감이 하룻밤 잤다고 괜찮아질 리 없는
가이드와 함께 그리고 어젯밤 술 한잔씩 걸치고 돌아온 일행들과 함께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야냐가와 뱃놀이를 하러 간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