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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현 Apr 25. 2019

[열여덟 여행] 06. 자유는 사치일 뿐

호텔에 묵을 때 호텔 조식은 먹어야 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는 아파트를 빌리거나 해서 조식 먹을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난 교토 여행 때는 혼자서 이틀 동안 조식을 알차게 먹었었다. 게다가 이번처럼 패키지여행에서는 하루 종일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평타를 치는 호텔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중국 베이징을 패키지로 갔다 온 경험에 의한 것이다. 호텔 음식들은 다양성을 띄고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먹을 수 있어서 놓칠 수 없다. 식당에 내려가니 “오하이오 고자이마쓰”로 직원들이 조용하게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C는 아픈 기색이 역력했고, 나도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내려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고 오자고 내려갔지만 보들보들한 오믈렛도 담고, 쌀이 좋아 맛이 있는 하얀 쌀밥도, 미소시루 한 그릇, 싱싱한 채소의 샐러드와 후쿠오카를 왔으면 안 먹고 지나칠 수 없는 분홍빛의 아름다운 명란도 담았다. 몸이 좋지 않다면서 이렇게 많이 먹기 있기 없기? 있다. 여행지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그렇게 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는 후식으로 커피와 슈크림 빵을 담았다. 요거트까지. 알뜰살뜰하게 먹었다. 아침 입맛이 없다고 누가 그랬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다른 부위보다 먼저 위 운동을 시켰다. 오늘은 누구나 학문과 관계가 없으면서도 반드시 가보는 ‘다자이후 텐만구’를 들렀다가 쇼핑몰 견학이 있는 스케줄이다. 견학이란 말은 지금 막 내가 붙여봤다.     


방에서 재정비를 하고 로비에 모였다. 그 전날 술을 마시고 늦게 나오는 이들 때문에 대표님의 심기가 또 한 번 불편해졌다. 따라서 우리는 불안해졌다. 내 안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밖의 감정에 예민해져야 했다. 나는 해외 워크숍에 왔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내가 소심해서라기 보다는 가장 익숙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란 여백이다.      


버스에 올라탔는데 분위기 파악을 못한 가이드는 자꾸 우리에게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시죠? 왜 그런지”

전혀 모르는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관심은 없는 이야기를 맥락 없이 점프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화법은 이상해서 개그콘서트의 아무 말 대잔치도 아니었고, 주어가 생략된 채 이어가는 사건은 수미쌍관의 법칙을 깨고 머나먼 은하까지 날아갈 법했다.     

맨 앞에 앉은 리액션이 좋은 방청객인 O를 제외하고는 무반응이었다. 다행히 목적지에 빨리 도착했다. 후쿠오카 시내였으니까. 목적지에 도착을 했는데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다는 ‘다자이후 텐만구’서 입구에 누워있는 동상을 만지면 스마트해진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똑똑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우리들은 스마트함은 남들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정작 우리들이 그 똑똑함이 필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사진뿐 이라며 단체사진 찍었다. 굳이 단체사진을 찍지 않아도 단체로 다니는 줄을 모두가 알 텐데 말이다.     


단체여행에서 자유는 사치다     


자유시간이 40여분 주어졌다. C와 나는 커피를 앉아서 마시고 싶어서 카페를 찾았는데 스타벅스에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메인도로의 외곽 2층에 보이는 커피집을 들어갔다. 보통은 이렇게 들어가면 좋아야 하는데 여기는 이상했다. 나이 지긋한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옷과 커피를 같이 팔고 있는 묘한 형태였는데 한쪽에는 갤러리까지 겸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C는 감기약을 먹고 한바탕 수다를 조용조용히 떨었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가보니 성질 급한 이들이 버스에 타있었고, 들어가 의자에 몸을 구겨 넣었다. 이렇게 버스에 타고 목적지를 편하게 데려다주는데 왜 피곤한 걸까? 이상한 일이다.

어느새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또 깜짝 놀랐다. 대표님이 사서 건넨 따뜻한 구운 모찌를 나눠 먹었다. 점심을 기대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주전부리가 당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뭘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점심 때라니 놀라웠다. 후쿠오카 타워를 간다고 했다. 올라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외관 구경이라니 또 외관만 구경하는 것인가.

전망대도 오르지 않고 1층 식당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엑스배너가 세워져 있었는데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등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흔하게 보았던 그것들이 왜 갑자기 효과를 입혀놓은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것일까 싶었다.      


그 사진 속의 음식을 파는 곳이 분명한데 그러나 우리가 안내받은 방에는 18인분의 도시락이 또 우리보다 먼저 자리 차지를 하고 있었다. 재빠르다.‘일본식 정찬’ 이꼬르 ‘도시락’이었다. 돈가스 한 조각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식은 튀김과 생선구이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6개 칸에 정갈하게 칸칸이 반찬이 담겨있었고, 밥과 국만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도시락을 또 먹었다. 이제 약간 ‘일본식 정찬’이 질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데 다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도 좋은데 싶었다. 그러나 나의 내적 투덜거림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원래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이미 대표님의 볼멘소리가 후쿠오카 타워 꼭대기에 닿을 듯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김없이 다 먹은 이들이 올라가지도 못하는 후쿠오카 타워 1층을 배회하며 기념품 샵을 기웃거리거나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등 잠깐의 여유 타임을 가졌다. 밤에 그렇게 멋진 야경을 보여준다는 후쿠오카 타워를 낮에 보았더니 파랗고 뾰족해서 과연 계절마다 다른 외관으로 조명이 바뀔까 싶을 정도로 쌀쌀맞은 인상이었다. 다음에는 야경을 볼 수 있도록 혼자 와 봐야지라고 작은 결심을 했다. 


패키지여행의 일원으로 돌아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전에 후쿠오카 타워 앞에서 슈퍼맨이 되는 것처럼 인증숏을 찍었는데 막상 타워의 끝까지 프레임에 담으려면 찍히는 당사자가 정말 날아보던가, 아니면 찍는 이가 땅바닥에 거의 누워야 가능했다. 내가 날 수 없었기에 C는 바닥에서 요가 자세를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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