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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현 Apr 18. 2019

[열여덟 여행]05.하루가 이렇게 길다

아직도 1일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졸았다. 후쿠오카까지는 1시간 남짓 걸렸던 거 같은데 맥주를 마셨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리저리 꿀렁거리며 도착한 후쿠오카 시내 호텔. 이틀 밤을 자게 될 호텔은 교통도 좋은 편이고 첫인상이 매우 깔끔했다. 이 모든 것이 C가 노력한 결과였다. 

사실 패키지의 특징은 보부상처럼 짐을 풀었다가 짐을 싸는 게 특징이다. 한 호텔에서 연박을 하는 경우가 없다는 말. 3박 이면 3박 모두 3개의 호텔을 이용하게 되는데 숙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C는 일일이 체크를 하고 호텔을 선택해서 거꾸로 여행사에 알려줬다. 우리는 이 호텔에서 2박을 하게 되었다.


11개의 방을 예약했고 2인 1실이었으나 대표님이 상무님과 같이 쓸 수 없다 하여 각자 방을 배정했다. 로비에서 흩어져 각자 방으로 올라가 내일 아침에 보면 참 좋으련만, 대표님이 이렇게 잠들 수 없다며 이 인원이 다 들어갈 만한 이자카야를 알려달라고 가이드를 졸랐다. 


고객 중에서도 대표 고객님의 말에 난감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못했다. 그렇게 변죽이 좋은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술집은 다 소규모이고 단체로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시차 적응을 못하셨는지 공간 차 적응이 안 되었는지 가이드에게 가이드를 해달라고 하셨고, 대표님은 헤어짐과 동시에 또다시 만나자며 애프터 신청을 하셨다. 그 애프터 신청은 정말 안 받고 싶었지만,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는 아닌지라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냅다 눕고 싶었는데. 다시 일어나야 했다

짐만 두고 양치를 한번 하고 침대가 어떤지 잠시 누워 허리를 폈다가 다시 새우처럼 구부리고 일어나서 로비도 내려갔다. 기나긴 하루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자카야는 예상보다 가깝지 않았고, 가는 길에 로컬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들은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나라도 반기지 않을 법한 숫자와 얼굴들이었다. 그나마 큰 상가 쪽으로 걸어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테이블을 나눠서 앉았고, 가이드는 일과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문을 도와주면서 계속 함께 했다. 주인장은 따뜻한 물수건을 나눠줬는데 으레 하는 그들의 서비스에 기분도 좋아졌다. 특히 아베 총리가 직접 미국에 들고 가서 오바마와 마셨다는 유명한 사케를 시켜줬는데 비싸서 그런지, 그들이 마셨다고 해서 더 그럴듯해서 그런지 향과 맛이 정말 좋았다. 

한 점씩 돌아가서 맛있었던 걸까?

꼬치와 초밥 모둠을 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들의 먹성에는 미치지 못할 안주량이었다. 생맥주와 하이볼을 시키고 회 한두 점으로 일본에 왔다는 분위기를 물씬 냈다. 단체석에는 일본인들도 회식으로 왔는지 싶게 직장인 무리가 와서 조용히 술자리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홀짝홀짝 마셨다. 

오래 걸린 만큼 맛있던 꼬치들

안주를 더 시키고 술을 마시다가는 카드도 안 된다는 일본 이자카야에서 큰일이 날 거 같아 호텔로 돌아오기로 한다. 나오는 길에 주인장은 문밖까지 나와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쓰” 우렁차게 쏟아내며 골백번도 넘게 폴더 인사를 하며 우리를 배웅했다. 고마울 수밖에, 가성비 높은 손님 들이었을 테니까.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쇼핑을 했는데 각자 흩어져 통로 하나씩을 맡고는 편의점의 다양한 품목을 수집이라도 하듯이 하나하나 담았다.  계산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놀라게 했다. 단체손님이란 또 그런 묘미가 있지 않겠는가. 단시간에 싹쓸이를 해가는 쾌감, 정작 C와 내가 사서 먹으려 했던 ‘용각산 캔디’는 끝까지 찾지 못했다. 커다란 비닐봉지 어딘가에 들어가 누군가의 또 가방 속으로 들어갔을 거다. 유일하게 그거 딱하나 골랐는데.


꽤 큰 편의점, 없는게 없었다

편의점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C와 나는 빨리 씻고 눕고 싶었다. 사실 아침부터 목이 칼칼했고, 찬바람을 마셔서 그런지 더 목이 붓기 시작해서 침이 넘어가지 않았다. 가방 속에 선글라스 대신 챙겨 온 감기약을 찾아서 먹었다. 누워서 이불을 덮으니 앞쪽 어느 방에 모여 술을 마시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눈앞이 아득해졌다. 

길어도 너무 긴 하루

일본 호텔방이 다 똑같을 텐데 어떻게 10명이 한방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상상했다. C도 누웠지만 C는 몸이 아픈지 계속 뒤척였고, 나도 잠들었다가 뒤척이곤 했다. 기나긴 하루가 끝나가고 다시 아침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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