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어를 꿈꿨었는데, 지금은 마케터를 합니다
오늘은 내 밥벌이가 된 마케팅 ㅡ 그 시작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쯤이었을까, 가족들과 상해 여행을 갔었는데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한국인 호텔리어를 만났다. 그도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나 반가웠겠지만, 우리 가족도 패키지로 간 여행이 아니라서 한국인을 많이 마주치지 않았었던 터라 호텔에서 마주친 그분이 참 반가웠었다. 자연스럽게 라운지에 동석하게 되었는데 아빠가 그분께 한창 진로 고민이 많은 내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호텔리어가 되었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는 왜 호텔리어를 꿈꾸게 되었는지, 본인의 10년 뒤 꿈은 무엇인지, 꿈을 이룬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당시 꿈을 상실했었던 나한테는 본인이 사랑하는 일이 있는 그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고, 수많은 고객 중 한 명인 나에게 정성을 쏟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자연스러운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나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호텔리어가 되겠단 마음을 먹었고 집으로 돌아와 호텔리어에 대해 찾아보는데 호텔리어도 워낙 포지션이 다양해서 객실팀, 식음료팀, 세일즈 마케팅팀 등 너무나 다양했다. 나는 호텔에서 어떤 일을 맡으면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란 질문의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 후로 교과과목 공부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의 시간이 지금의 내 커리어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yes24 사이트에 '호텔리어'를 검색해서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구매해서 읽었는데 호텔리어로서 고객을 감동을 주는 방법에 대한 서적들이 대다수였고, (돌이켜보니 그 시절 읽었던 것이 행사 때 인플루언서를 맞이하고 응대하는 방식에도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호텔경영학과의 전공서적에서 호텔의 역사, 호텔 체인, 호텔 운영방식에 대해 살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의 사보에서 여성 최초 총지배인님 인터뷰를 보았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 일면식도 없으면서 무작정 손편지를 썼다. 여고생의 과감한 팬레터에 총지배인님은 감사하게도 답장을 해주셨고 역삼에 있던 호텔에 초대받아 총지배인실에서 대화를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었다.
이렇게 호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점점 커지는데 가고 싶은 호텔을 가보는 것도 일년에 한두번이지, 호텔을 계속 가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명 호텔들의 페이스북을 팔로우하고 숙박권이나 호텔 레스토랑 식사권이 걸린 이벤트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당첨이 간절해지니 자연스럽게 이번 시즌에 출시한 신메뉴나, 대대적으로 론칭하는 객실 제휴 패키지에 대한 정보도 꿰뚫게 되었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호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여 여러 번 당첨을 꿰차기도 하였다. (아이패드도 당첨될 정도여서 한 때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이벤트 여왕이었다)
어느 정도 SNS 이벤트를 정복하고서는, 호텔 홈페이지에 관심을 가졌다. 호텔마다 홈페이지가 다르게 구성되어있었고 홈메뉴구성, 룸 종류안내, 예약서비스, 호텔위치안내 등 메뉴별로 비교해보다 보니 개선이 필요한 호텔사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선방향을 정리해서 자료를 호텔 측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열정에 눈이 멀어 자발적으로 밤을 새면서 진행했던 호텔 제안서 작성의 경험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문체부 홈페이지 모니터링단이 되는 계기가 되었고, 첫 회사의 이커머스팀에 입사하는 계기가 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아무튼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디지털 마케팅에 노출이 되었고 학습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입시시절, 호텔경영과가 아닌 경영학과에 붙으면서 (큰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어쨌건) 호텔에 국한되어 있던 시야가 자연스럽게 소비재쪽으로도 확장되었고 내가 호텔이라는 업계가 아닌 - 마케팅 직무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론 부전공도 광고/홍보 쪽으로 선택하면서 마케터란 직업을 갖기 위해 나만의 스텝을 밟아갔다. 호텔에서 PR 행사를 할때마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어쨌든, 내 밥벌이의 역사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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