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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디인더가든 Jun 13. 2022

직장인 시골 소형 주택 살이를 하며 느낀점

불안한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삶 만들어가기

시골 마을에 작은 이동식 주택에서 생활한지 6개월이 되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집을 지탱하는 살구나무잎이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가 들린다.


가구가 갖춰지기 전 모습

위치적으로 도심과 거리가 떨어져있어 모임에 나간지도 오래되었고 평일엔 재택근무, 일주일에 2번정도 서울로 출근을 하지만 출근을 할때마다 야근을 해서 친구들과 만난지도 오래이다.

sns도 하지 않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혼자 식물만 보고 있으니, 혼자 잘 지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가끔 내가 멈춰있는것은 아닌가 불현듯 불안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시골에 와서 식물을 기르는 취미도 생기고, 핑거푸드를 하나씩 만들어보는 재미도 발견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이 좋은 것을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란 생각이다.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인프라, 그리고 화려함도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 출퇴근 때문에 용산에서 자취 생활을 했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면 내가 용산에 살았을 때 주변 인프라는 훌륭했지만 나는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고, 잘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서울은 좋지만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주 1회 출근에 재택근무가 지속되었다.

원룸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답답했고 쉼과 업무가 분리가 안되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고 답답할때마다 아빠가 운영하시는 펜션 옆에 작게 만들어진 원룸크기의 농막에서

재택근무를 병행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이 곳으로 내가 이사와서 계속 생활할 생각은 못했던 것같다.


코로나 2년동안 부동산 시장은 마치 지금이 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며 심각한 불안감을 주었다.

나는 아직 직장인 2년차여서 아파트를 살 시드머니도 없는데 너도나도 영끌해서 아파트를 매입하는 모습을 보았다. 뒤쳐지는 것 같고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 아파트를 매입할 생각이 없던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알아보고 임장도 다녀왔었다.

하지만 막상 4-5억 아파트를 사려니 갚아나갈 돈이 내가 받는 월급으로는 충당이 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 돈을 주고 사고싶지가 않았다.

시장이 형성해놓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만큼의 빚을 지고 내 생활을 포기하고싶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임장을 마지막으로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지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전원생활을 3번정도 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유치원때 아빠가 스튜디오를 하시면서 시골로 이사를 와서 스튜디오겸 집에서 생활을 했고,

두번째는 그 다음에 스튜디오를 만들며 스튜디오 겸 집으로 또 이사를 가며 전원주택생활을 했다.

세번째는 고등학생때 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미국에서의 전원 생활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사는 것 보다는 마당이 있고 정원이있으며 사람들을 많이 초대할 수 있는 문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누구나 막연하게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할텐데 나에게는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아늑한 소형 주택에 야외 정원에서 사람들과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내 반려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 내가 막연히 그리던 원하는 집의 모습이었던 것같다.


아빠는 과거에도 스튜디오 겸 주택 생활을 하신 경험이 있기 때문에 펜션을 만드신 것도 사실은 스튜디오겸 주택을 만드신거였다. 나도 많이 그곳에 머물렀고 시골 마을에 있어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갈때마다 잘쉬고 왔었다. 마침 펜션이 있는 땅에 죽어가는 나무가 쓰러져있는 안쓰는 아주 좁은땅이있었는데 아빠는 이 공간을 아빠가 펜션을 관리하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셨다.

전형적인 주택은 아닌데 이동식 주택이라고 불리는 원룸 크기의 작은 집이였다.

서울 원룸에서 재택근무를 하는게 답답해서 나도 이 곳으로 와서 재택근무를 종종하기도했다.

그러던 작년 겨울 늦은 휴가를 일주일정도내어 이 곳에서 일주일 내내 생활을 해봤다.

그때 당시 나는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고 무언갈 결정하고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대로 서울 원룸 자취방에 살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부동산을 찾으며 불안함을 달랠 것인지, 아니면 일찍부터 내가 원하는 주택 살이를 작게라도 시작해볼건지 결정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모은 돈을 들여 내가 살 수 있도록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는데 사용했다.

물론 아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난 너무 감사하고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이 소형 주택, 농막에 살게되었고 6개월이 된 지금은 참 잘한 선택이었던것같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29년 인생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주체적으로 진짜 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에 농막 주택에서 살게된 것은 나에게 엄청 큰 결단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1년 후 돌아와서 모든 친구들이 잘하는 영어를 살려 문과로 갈때 나는 수학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꿈도 미국에서 익숙해진 영어를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였지만 취업을 잘하기 위해 이과로 갔다. 결국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 아니라, 취업 시장에서 이공계열이 좀 더 유리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잘한 선택이긴했던 것같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고 잘하지도 못했기에 수험 생활이 너무 고단했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하고 대학교 2학년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대외활동을 하며 인맥을 쌓고 쌓은 인맥중에 하나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보며 나도 무조건 대기업에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달려왔던 것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잘하고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했지만, 결국 대기업을 가기위한 궤도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나는 여러 직무 경험을 쌓아 중고신입으로 대기업에 입사하게되었다.

그렇게 내 20대는 대기업을 가기 위한 모든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물론 연애도하고 친구도 만나고 했지만 이런 것을 제외하고 내가 뭘하고 살아야하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내 답은 이미 대기업에 취업해서 커리어를 잘 쌓는 직장인에 한정적이었다. 물론 커리어도 잘 쌓아서 미국 대학원도 가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에 대기업에 또 취업하고자하는 꿈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고급 인력으로 고용되기위한 꿈을 꾸었다. 물론 회사에 소속되어 직업을 갖는 것은 멋진 일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자본주의세상을 살면서 내가 원하는 진정한 자유, 내가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고용만 되길 준비하는 나의 지난 삶과 현재는 더이상 나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도 지켜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코로나를 겪으며 보낸 시간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결국에 내가 믿고 있었던 전제가 깨졌다.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서 내가 꿈꾸던 막연한 무지개 다리 너머의 안정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였다.

코로나 때에 자산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갑자기 부동산 부자가 된 사람, 주식 부자, 코인부자 등 신흥 부자가 속출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았던 나도 유튜브나 책을 통해 자본주의세상에 대해 알게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앞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직업이 평생 안정을 책임져주지도 않고 받는 월급으로 그나마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투자하기도 이미 늦은것같다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회사생활을 통해 내가 성장하거나 나중에 이것을 확장해서 뭔가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낼 것같다는 확신도 들지않았다.

결국 나는 우리 회사 제품의 아주 일부분을 좋게 만들려는 형식적인 일들을 하며 내 근무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나에게 월급을 주는 회사지만 이 안정감은 내가 어느 회사로 가도 언제 깨질지 모르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내가 대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결국 여지껏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없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내가 형성한 나의 페르소나, 나의 스토리 (자소서에 쓰며 세뇌된), 나의 경험들을 만들어나갔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들이 아깝거나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려면 시드는 필요하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고급인력으로 고용되기 위해서 준비하는데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게 내 결론이었고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했다.

내가 어디서 살지, 어떻게 살지, 뭘하며 먹고 살지는 세상이 정해준 명문대 입학, 대기업 취업, 수도권 아파트 매입.. 내가 기존에 무의식적으로 세뇌되었던 이 공식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좋은 대학을 안가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많고 대기업을 간다고 미래가 보장되지않는다.

그리고 수도권 아파트에 산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다.

결국 본인이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 맞는지, 어떤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일을 하며 생활할 때 비로소 내가 미래에 무지개 다리 너머에 있는 행복을 위해 지금 불행해도 참고 사는 것이 아닌, 그 과정 안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해야할 일을 발견하고 행동할 때, 미래에 경제적 시간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루트를 따라가며 하나씩 퀘스트를 하면 그래도 나는 이정도했으니까 행복하다고 스스로 세뇌를 하게 되는 것같다. 하지만 개인에게 맞는 삶의 양식은 너무나도 다르고 결국 참았던 것은 터지고 지속가능할 수 없다.


물론 이미 정해져있는 길대로 살아오다가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아가며 사는 것은 무섭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인데, 이럴 때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방향성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대기업도 다니고 나쁘지 않은 연봉에 그래도 평타친다고 느낄 수 있는 이 삶을 지속하면 할 수록 막연하게 그래도 흐르는대로 살면 나아지겠지라고만 생각하며 살아도 미래는 다가온다.


시골 주택 살이 이야기를 하다가 삶의 방향성까지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은 나는 이 곳으로 이사오며 생각보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나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매일 체감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시간을 투자하고 뭘 준비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부터였다.

지금은 식물을 기르면서 가드닝을 공부하고 있는데, 자연에서 오는 깊은 행복감이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만 느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람은 자연을 통해 진정한 쉼을 얻고 치유를 받는다.

또 정원에서 살면 좋은 점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이쁘게 플레이팅하고 먹었을 때 그림이 이쁘다.

도심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정원이 있는 집에서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작은 가든 파티 느낌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도심에서도 테라스 카페를 갈 수는 있지만 내가 요리하고 준비해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여기서 나는 수요를 발견했고 그래서 내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사는 곳을 옮기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하나씩 취미를 만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그려갈 수 있었고, 사업적으로도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때로는 생활적으로 불편한점도 있고 내가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울 원룸에서 살았을 때보다 더 부지런하게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작게 시작한 나의 시골 농막살이로 내가 앞으로 어떤 기회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이 과정속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며 즐거움을 찾고, 이를 세상과 공유하기 위한 작업도 해나가며 소통할 준비를 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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