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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미 Nov 06. 2019

늘 후회하면서도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는 진짜 이유

아이에게 화가 날 때 기억해야 할 것-부모 편

우리는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 즉 가족인 배우자나 자녀, 동생, 부모 등에게 더 쉽게 화가 나거나 더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욱하게 된다.

안 그러고 싶은데 저절로 행동이 먼저 나가버린다.


이상하다.


특히 아이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는 좌절감에다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이 더해진다.


이처럼 늘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아이나 가족에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남편에게 더 쉽게 짜증과 화를 내는 이유가 내 남편이고 내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 아이 아빠로서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장 동료가 아프다고 하면,

“어휴 요새 감기 오래간다는데, 약은 먹었냐, 좀 쉬지 그랬냐?”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남편이 아프다고 그러면, 어떤가?

걱정되는 마음도 있긴 하지만, 우리 안에서 뭔가가 부글거리며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것도 어제 회식하거나 혼자 나가 놀다 와서 그러면 걱정보다는 괘씸하고 부아가 치민다.


우리 안에는 남편이 아이랑 좀 잘 놀아주고, 집안일도 같이 해주길 바라는 남편으로서 아이 아빠로서 갖는 역할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가 있다. 그 기대가 깨지면 화가 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다른 아이의 행동은 좀 더 너그럽게 넘어가면서도 내 아이에 대해서는 평정심을 유지하지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내 아이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내 틀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즉 나의 가치 체계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바꾸려고 애쓴다.

대표적인 대상이 바로 자녀다. 아무한테나 내 가치를 요구하며 바꾸려 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에 있는 대상일수록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되고, 또 고치려 든다.

문제는 과거에 결핍된 어떤 것을 현재의 대상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배우자나 자녀가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배우자나 아이가 우리의 기대하는 만큼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이다.



둘째, 안전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타인들 앞에서 화를 내는 것보다 가정은 훨씬 안전한 사적인 공간이다. 집에서 하는 것처럼 밖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할 분 여럿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체득한 관계 경험은 친밀한 관계에서 반복 재현되기 때문이다.

늘 미안해하면서도 배우자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다.

우리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관계의 경험이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자꾸 반복하게 된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자.




심리학자들이 왜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고 말할까?


바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스펀지처럼 부모님의 모든 것, 가치관, 태도, 신념 등을 흡수하게 된다. 나를 보는 눈, 나를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관계를 맺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구조적인 틀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인격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고 가장 중요한 대상인 부모와의 상호작용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관계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핵심 신념을 발달시키고, 핵심 신념은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기준이 되고 방향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과 방향에 따라 우리가 어느 한쪽 방향으로 쉽게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감정과 반응은 달라진다.


우리가 만약 상황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높으면 쉽게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신념의 근원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이 토대가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경험을 통해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우리 몸에 배게 된다.




부끄러움이 많던 9살 여자아이는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이의 차례가 되었고, 아이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선생님의 앉으라는 말에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아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울지 않아 다행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학기 초 상담이 시작되어 아이의 엄마가 학교로 왔고, 선생님과 만났다.
선생님은 며칠 전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말을 안 하길래, 처음에는 말 못 하는 벙어리인 줄 알았다.'라고.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전하며 아이에게 면박을 주었다.
"내가 그 말을 듣는 데, 부끄러워 죽을 뻔했다, 다시는 내가 학교에 가나 봐라."라며 자신이 느낀 수치감을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바로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품어주기는 커녕 아이를 비난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엄마는 자기주장이나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본인이 싫어하던 자신의 모습을 딸아이가 보이니 얼마나 싫었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기 자신의 결핍과 상처부터 돌봐야 아이를 푸근하게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을 아이에게 기대하고 요구한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는 해 내라고 강요하게 된다.


즉, 내 문제인데 아이 문제라고 여긴다.

있는 그대로 아이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지지하고 품어주기보다는 지적하고 고치려고 한다.



9살 여자아이는 성인이 되는 내내 '외향적인 사람'을 부러워했고,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이 너무나 싫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이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잘못됐다고 여겨졌다. 바꾸고 싶고 달라지고 싶었지만 내향적인 성향은 늘 그대로여서 아이를 괴롭혔다.

아이가 성장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엄마가 된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고 소심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아이의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면목으로 아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모임에 아이를 가입시켰다.



따라서 아이 때문에 생겼다고 확신하는 분노가 사실은 내가 갖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나에 대해서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결핍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경험을 기억해 내면서 특히 속상했던 일, 억울하거나 원망스러웠던 일, 슬펐던 일 등에 대해 탐색해 보고 그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정리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부모와 겪었던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부끄럼 많아 남 앞에서 자기주장이 어려웠던 아이의 불안과, 지지받지 못해 외로웠던 당시 아이가 느꼈던 감정을 지금이라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아이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을 알아주고 다독여주면 된다. 그 마음을 흘려보내고 나면 더 이상 그 감정에 매이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왜곡된 시선이 아니라, 투명하게 나와 아이 그리고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와 만나고 들여다보고 또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거는 달라지지 않지만 과거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진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결핍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게 된다.


즉, 현재의 건강한 관점을 통해 과거의 상처 받은 나를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앞으로는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거나 이전과 다르게 건강하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부모라면 모두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나에 대해서 알려면 나의 부모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관계의 틀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내 안의 해결하지 못한 슬픔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왜곡한다.




글쓴이: <오늘도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자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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