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고등어조림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4년 동안 유치원을 무려 세 군데나 다녔다. 엄마 아빠가 특별히 교육열이 뜨거웠던 것은 아니고, 맞벌이하는 집이라 부모님이 출근해 있을 동안 맡겨놓을 곳도 필요한데 겸사겸사 일찍부터 유치원에 보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린이집이라고 하는 곳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중간 사정상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는데, 마지막 1년 동안 다닌 유치원은 들어갈 때 무슨 신상 카드 비슷한 것을 작성해 오라고 했다. 그냥 가볍게 좋아하는 꽃이나 색깔, 좋아하는 반찬 따위의 질문들이 있었다. 그때도 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좋아하는 꽃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옆에 있던 엄마한테 엄마는 무슨 꽃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엄마가 개나리라고 해서, 나도 개나리라고 적었다. 사실 엄마도 그 당시는 꽃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적당히 대답해 준 것 같다. (몇 년 후 그 엄마는 취미로 꽃꽂이를 하게 된다) 좋아하는 색은 노란색, 그리고 좋아하는 반찬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고등어조림이라고 당당하게 적었다.
따끈한 밥에 먹어도 맛있지만, 자작하게 물 말은 밥 (보리차 추천) 한 숟가락 떠서 짭조름한 고등어조림 한 조각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기름지고 맛깔스러운 고등어조림의 붉은 양념이 미지근한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밥알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군침이 싹 돈다. 어려서부터 밥상에는 햄, 소시지가 필수였던 편식 빌런이 좋아하는 반찬치고는 내가 생각해도 다소 의외다.
그런데, 사건은 최근 일어났다. 점심 먹으러 간 사무실 근처 식당 메뉴에 있는 고등어조림이 눈에 들어와 오랜만에 살짝 기대를 품고 주문했다. 첫 입은 나쁘지 않았는데, 두어 젓가락 먹다 보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비린 맛이…….
내가 입맛이 변한 건가? 나 고등어조림 진짜 좋아했는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에 주문했건만, 예상치 못한 비린내 어택에 동심을 파괴당한 기분이었다. 내게는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고등어, 가끔 떠올리면 금세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지고는 했던 나의 고등어가 한 발짝 멀어진 것이 아닐까 싶어 괜히 울적해졌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들이 내 마음과 다르게 예전처럼 좋은 것 같지 않을 때, 그것들은 바뀐 것 없이 그대로인데 내 열정이 식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헛헛한 감정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날 고등어가 별로 신선하지 않았거나 주방 이모가 비린내 잡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고, 양념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전라도가 고향인 엄마의 손맛이 뜻하지 않게 입맛을 높여 놓은 탓일지도.
어쨌든, 이번 주는 고등어조림 잘하는 집이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