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랬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혼자 소리 내 중얼거리는 일이 많아진다. 가장 많이 하는 혼잣말은 ‘배고파, 힘들어, 피곤해.’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슬프다. 특히 퇴근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까지 터덜터덜 걸어오는 길에는 그 세 가지를 번갈아 가며 무한 반복한다. 집에만 들어가면 쉴 수 있는데, 누울 수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다.
겨우겨우 기어가다시피 집에 도착해 마침내 밥상머리에 앉아도, 막상 그다지 많이 먹게 되지 않는다. 한때 대학 시절에는 여자 동기 중에 가장 잘 먹는 것으로 정평이 났던 나인데, 이제는 위장도 늙어버렸는지 입이 짧아졌는지 조금만 먹어도 금방 속이 더부룩해지고 자주 배가 고프다. 큰언니는 요즘 들어 금방 피곤해지고 자주 졸린다고 한다. 내 말이……. 나보다 열 살 많은 큰언니와도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육체를 한탄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최근에 혼잣말 하나가 추가되었다. ‘짜증 나.’
그놈의 러브버그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정릉에 살면서 한 번도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러브버그가 북한산에서 내려온다고 하고, 우리 집은 북한산 바로 앞이다. 얼마 전에는 방에서도 나와서 정말 진저리를 쳤다. 드라마 ‘삼체'에서 외계인이 지구인들을 보는 느낌이 이럴까 싶었다.
열다섯 살짜리 조카는 ‘러브버그가싫어요만두'라는 작성자명으로 구청 게시판에 민원을 올렸다. 한 시간 만에 접수되었다고 뿌듯해했지만, 과연 반응이 있을는지……. 그 덕인지는 몰라도 다음 날 아침 부아아앙 요란을 떨며 소독차가 한 번 다녀갔지만,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늘 하는 혼잣말 중에 긍정적인 말은 하나도 없다. 어쩐지 또 울적해진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남들에게는 듣기 좋은 말이 참 잘도 나오는데. 내가 나에게 해 주는 말, 혼잣말 리스트에도 긍정적인 말들을 좀 추가해야겠다.
행복해.
맛있어.
잘 잤다.
다행이야.
(음악을 듣다가) 좋다.
(집 앞에서 마주친 삼색 무늬 길냥이에게) 귀엽다. (아, 이건 혼잣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