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삭제'를 검색하니 연관 검색어로 유튜브나 구글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데이터 삭제하는 방법이 딸려 나온다. 내친김에 활동 삭제하기를 해보았다. 뭔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지난 토요일 점심에는 얼마 전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답례품도 전달할 겸 밥을 사준다기에 쪼르르 나갔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아이들이라 그야말로 격의 없는 편한 대화가 이어졌다.
몇 명 되지 않는 내 친구들은 나와 달리 점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 친구가 물었다.
“넌 점보는 거 안 좋아하지?”
“딱히 궁금한 것도 없어.”
곧 퇴사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들은 친구는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긴 하다.
퇴사를 2주 남짓 앞둔 요즘, 이제까지 회사에 남긴 나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 마음속에서도 회사와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비워내고 있다. 내 삶에 생긴 또 하나의 빈칸이 무엇으로 어떻게 다시 채워질지 불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일요일에는 우렁차게 뒷북을 울리며 동네 영화관에 조조로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갔다. 라일리의 자아와 미래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던 감정들은 마침내 그들 중 누구도 자아를 결정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평균 수명을 별 무리 없이 달성한다고 가정하면, 지금 나는 인생의 정중앙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할 수도,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이제껏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사람들,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중 무엇 하나만이 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벌써 무엇인가를 이뤘을 테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무엇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나잇값 못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랄까.
하지만 세상의 시선에 떠밀려, 조바심에 쫓긴 나머지 불안이 내 머릿속을 잠식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여유를 갖고 나 자신을 좀 더 탐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