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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의사권선생 Jan 25. 2018

E19. 괜찮아질 거야!(반려동물 희귀 질환,애디슨병)

닥터 아이펫 동물병원 진료 에세이, 애디슨 병

베어(Bear)는 유기견 출신의 수컷 믹스견이다. 2013년 11월 정도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다행스럽게도 꼬꼬마 시절 때 구조되었다. 그래서 예방접종 1 차부터 내가 접종해주었고, 중성화 수술 또한 우리 병원에서 9 개월령에 해주었다.  


보호자 분께서는 금발의 젊은 백인 남성 분이시다. 한국에서 유기견 구조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셨는데, 이 것이 인연 되었다고 하신다. 마음씨 넉넉한 보호자 분을 만나 베어에게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정말 아무 이상이 없었다. 너무나도 건강했고, 늘 활기가 넘쳤다.

베어는 정말 건강했다.


어느 정도로 건강했었냐 하면, 3살을 갓 넘었을 때 살짝쿵 교통사고가 났었다.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베어의 머리 쪽을 '툭!' 하고 친 것이다. 그때 이빨이 부러지는 등의 외상 손상이 있었는데도 하나도 아파하질 않았다. 밥도 잘 먹고 진찰을 할 때도 '끼잉~' 소리 한 번 없었다. 그리고는 눈 깜빡할 사이에 회복되었다. 노파심에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전혀 특이소견이 없었다.


그랬던 아이였다.


그런데 교통사고 난지 6개월 후부터 몸의 이상이 찾아왔다. 갑자기 수척해지더니 모발이 푸석해졌다. 넘실거리듯 출렁이는 모발은 다 떨어진 빗자루 끝 뭉텅이처럼 빛바랬다. 털이 사정없이 빠지면서 야위어갔다. 밥을 잘 먹지도 않고 15Kg가 넘던 몸무게는 11Kg로 줄었다. 건장한 70Kg 성인 남자가 한 달만에 50Kg로 변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세세한 검사를 진행할까 하다가, 설마 애디슨 병인가 싶었다.


애디슨 질병은 몸의 코티솔과 알도스테론(부신이란 장기의 바깥 부분에서 생성되는 호르몬) 호르몬 생성이 부족해서 생긴다. 멀쩡한 개체에서도 생후 3년이 지나면 생긴다. 원인은 뚜렷하지 않으나 유전적인 면역질환, 감염증, 암 등으로 여겨진다. 해부학적 위치를 따져보면, 뇌의 문제일 수도 있고 부신이란 장기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 토마스 애디슨이란 영국 의사가 1855년에 6명의 환자를 예후 관찰하여 첫 보고하였다. 과거 의학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나, 30년 동안이나 환자들을 평가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이 병은 진단이 어렵고 희귀하다.


당연히 일반 혈액검사와 같은 기초검사로는 확인 불가하다. 특수검사가 필요하다. 코티솔 수치는 ACTH 자극검사로 보통 검사하는 편이다.

전형적인 애디슨병은 코티솔과 알도스테론, 이 두 호르몬 모두 적게 생산다. 코티솔만  경우는 비교적 노령 반려동물에서 확인다. 약물 선택 시 고려되는 사항이 있기 때문에 두 호르몬의 수치를 확인하는 것은 진단에 필수다.


알도스테론은 전해질 검사 또는 심전도 검사로 확인한다. 우리 병원에서 진행을 하기 위해서는 혈액 샘플 채취 후, 외부 검사 기관에 의뢰해야 했다. 그래서 보호자께 상담드리고 모든 검사 장비가 구비되어 있고 결과도 바로 나오는 근처 2차 상위 동물병원으로 후송 보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의심만 될 뿐, '설마, 애디슨이겠어? 이렇게 건강하고 덩치가 좋은 베어가??' 이런 생각이었다.


한 달 후 베어 보호자께서 오셨다. 후송보낸 병원에서 애디슨 확진을 받았고 한 달치 약도 처방받았다고 하셨다.

희귀병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진단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 순전히 뒷걸음치다가 쥐꼬리 밟은 격이었다. 확진 소식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최근 애디슨 병을 진단받고 온 다른 푸들 아이 덕분에 관련질환으로 쉽게 의심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보호자님께서 한 번만 더 검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너무나 건강하다는 것이다. 언제 아팠던 것처럼.


절대 재검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제발 한 번만 더 하자고 하셨다. 애디슨 질병은 평생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약만 잘 먹으면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약을 복용하자마자 다시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검사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고 재차 말씀드렸지만, 결국 우리 병원에서 코티솔 수치만 재검사를 진행하였다.   


두 번째로 검사한 호르몬 결과. 역시나 애디슨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보호자님의 심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불필요한 검사를 한 것 같았다. 근처 2차 병원에서 저 나트륨 혈증과 고 칼륨 혈증을 확인한 검사 자료도 받았다. 그리고 이들 자료를 설명드리면서 처방 약물을 상담드렸다.


한 달 치 약 조제과정. 워낙 소량이라, 한 종류의 약을 먼저 소분하고 다른 약을 첨가하는 식으로 조제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애디슨 병의 주사 치료제는 국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처방하는 약품이라, 구하는게 미숙한 지 싶어서 한국지사 직원과 직접 통화를 하였다. 그런데 유통이 단종되었다고 했다. 희귀병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어른들의 사정으로 치료약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베어를 위한 영문 처방전

다행히도 보호자 분이 외국인이시라, 내가 영문 처방전을 발행드리고, 외국에서 주사 치료제를 구입하셨다. 조금 더 경제적인 측면도 있고, 관리가 편한 것도 장점이다. 물론 이 주사를 4주 간격으로 맞아도 하루 한 번 약을 먹을 필요는 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이 지났다. 결론적으로 베어는 아주 건강한 상태로 잘 지내고 있다. 보호자께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있을 부작용에 대해서도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조언드리고 있다.


주사도 잘 맞고, 약도 잘 먹는 아이라서 다행이다. 매일매일 약 먹는 걸 힘들어하지 않아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베어 같은 경우를 보면서 옷깃을 여민다. 유기견, 외국인 보호자, 난치병... 이처럼 굴곡 있는 견생은 좀처럼 드물 것이다.


늘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앞으로 건강하게만 지내렴, 베어야~


부쩍 건강해진 베어. 체중도 애디슨 발병 이전, 예전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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