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물의사권선생 Jan 07. 2017

E02. 아주 많이 아팠던 아롱이, 자궁축농증

자궁축농증에 관한 기분좋은 에피소드

아침에 원래 예약된 수술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보호자 분이 연락 없이 안 오셨다. 이런 걸 No Show라고 하던가. 씁슬했다. 뭔가 오지도 않는 님을 기다리는 소쩍새가 된 기분. 암튼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어 그냥 수술 준비했던 것들을 도로 원위치하고, 간만에 여유로운 병원 일상을 보내며 오전시간을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진 보호자 분께서 보들보들한 담요에 흰색 푸들아이를 돌돌 말아 데리고 오셨다. 수척하지만 꽤나 야무지게 생긴 아롱이란 푸들아이는 생식기에서 3일 전부터 고름이 나왔다고 한다. 보호자 분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자궁축농증인데 수술해야 한다고 알게 되어서....이래저래의 이유로 데려오셨다고 했다.


흠.. 그냥 검색 마시고 일찍 오시지..라 생각하며 진찰해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전신으로 세균이 퍼진 패혈증까지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바로 수술하자고 말씀드렸다.


보호자 분께서는 평소에 너무 건강했던 아이라 당황스럽다고 하시며 조금 생각하고 오시겠다고 했다. 사실 처음 보호자님이 오셔서 아롱이 오늘 미용 가능하냐고 여쭤보셨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셨던 것 같았다.

그러시라고 하고 진료실 문을 나가는 아롱이를 보며 걱정이 되었으나, 금세 돌아오셔서 수술을 의뢰하셨다.

수술 전 아롱이

외과수술을 깔끔한 게 장점이다. 특히 이런 자궁 축농증 같은 경우 수술 후 컨디션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다. 걱정 마시라고 하고 No Show 한 아이들 덕분에 세팅된 수술 준비물들 꺼내서 바로 수술을 했다.


2.2킬로 푸들아이에서 700cc가 넘는 고름찬 자궁과 난소를 들어냈다. 오전 중에 수술 안 했으면 이거 터졌겠다 싶을 정도로 모든 장기를 압박하고 있던 나쁜 아이를 꺼내니 내가 다 속이 시원했다.

수술 종료 후 정리 사진. 저 작은 몸에서 저리 큰 고름덩어리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수액 처치하며 기다렸더니 바로 마취 회복도 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회복된 아롱이

다행이었다. 내일이면 씻은 듯 나을 것이다.


개는 자궁질환의 가능성이 30프로가 넘는다. 사람보다 3배 이상 생식기 질환 가능성이 높고 7년 이상의 폐경이 된 노령에서는 가급적 미리 중성화 수술을 해줄 것을 권장드린다.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보람된 날이었다. 앞으로 건강히 오래 살 길..

매거진의 이전글 E01. 헌신과 사랑, 반려동물의 당뇨 관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