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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나이는 어떻게 진짜 사나이를 넘어섰을까?

가짜 사나이는 MBC 예능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를 패러디한 콘텐츠로 BJ, 스트리머 등 인터넷 방송인들이 한국군 특수부대 훈련을 받는 과정을 담았다. 가짜 사나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어느 ‘웃긴 댓글 모음’을 보면서였다. 훈련받는 모습은 진지하고 심각한데 웃음 포인트가 지뢰처럼 곳곳에 숨어있다. 웃음에 감동까지 더한 콘텐츠 구성으로 가짜 사나이 1기 ep1은 조회수 천만을 돌파했고 가짜 사나이에 출연한 유튜버, 교관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유튜브 콘텐츠 역사의 한 획을 긋었다는 평을 받은 가짜 사나이가 이토록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짜사나이 캡쳐

1.     유행어 제조기 이근 대위

가짜 사나이 교관 대장 이근 대위는 원래 뛰어난 군 경력에 대박 콘텐츠로 날개를 달았다. 이근 대위는 모든 면에서 엘리트적인 면모를 갖췄다. 버지니아 군사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음에도 ‘군인이 되고 싶다면 한국 군에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입대했다. UDT에 지원하여 특수부대 훈련을 받았으며 경찰특공대, 특수전부대 교육을 도맡았다. 가짜 사나이에서는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너 인성 문제 있어?, 반으로 죽일거야, 4번은 개인주의야” 등 명대사를 빵빵 터트리며 수많은 패러디 양산에 일조했다.


2.     진지한데 웃기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인생이라 했던가. 가짜 사나이 훈련 과정은 인생을 똑 닮았다. 교육생들이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IBS 배 들고 달리기, 30kg 군장 매고 부상자 동료 목적지까지 옮기기를 보면 짠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교육생들이 너무 힘든 나머지 정신줄을 놓고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거나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모습은 웃긴 게 아닌데 웃기다. 매우 힘들어 미쳐버릴 것 같은 그들을 멀리서 관망하는 사람들 눈에는 희극처럼 느껴지는 현실. 인생의 축소판을 담아 놓은 듯한 훈련 장면이 몰입도를 높인다.


3.     맵지만 순한 맛 교관들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근 대위는 아무리 극한 상황으로 몰아붙여 훈련을 해도 전쟁은 무조건 그보다 100% 더 힘들다고 말한다. 다만 전쟁과 최대한 유사한 상황으로 만들고 그런 상황에서도 팀을 버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는 최정예 부대를 만들기 위한 훈련임을 강조한다.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려면 강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여기에는 한계에 치닫게 하는 훈련과 욕설이 난무한다. 교관들은 훈련시킬 때 무섭게 몰아붙이지만 죽어가는 교육생들에게 윽박지르면서도 그들을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어준다. 이미 1일 차에 전원 퇴교했기 때문에 교육생들의 체력으로는 무리라는 게 판명된 상황. 정신력과 의지를 보겠다며 멘탈을 관리해 주는, 비교적 상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Ep5에는 실제로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인기 유튜버는 관심을 받지만 동시에 악플 등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수련회 마지막 날 모닥불 피워놓고 부모님 생각하며 즙 짜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날카로운 모습으로 교육생을 긴장시켰던 H교관이 담담하게 교육생들에게 힘을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4.     성장 드라마

이근 대위는 교육생들에 대해 체력 개판, 멘탈 개판, 팀워크 개판, 리더십 개판이라 말한다. 마지막 편에서 우수 교육생을 뽑아 달라는 주문에도 그는 회의를 거쳤으나 우수 교육생은 ‘없다’로 결론 내렸다며 쿨하게 떠난다. 그는 지금까지 군인, 민간인 중에서도 어느 정도 멘탈이나 체력적으로 준비가 된 교육생들을 훈려시켜왔다. 보통, 혹은 평균 이하의 방송인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하지만 그는 보람을 분명 교육생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았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개인주의인데 에너지까지 없는 4번 교육생

서양인은 왠지 동양인보다 에너지가 많을 것 같다는 편견을 깨준 4번 교육생 가브리엘. 그는 팀워크가 생명인 훈련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모두가 30kg 군장을 매고 부상병을 운반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대놓고 편한 쪽을 선택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수중 훈련에서는 1등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다시 돌아가 제일 뒤쳐지고 있는 3번 교육생을 이끌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짜사나이 캡쳐

다시 ‘구보한다’는 말에 퍼져 버린 3번 교육생

3번 교육생은 평균보다 육중한 몸으로 본의 아니게 엉덩이 골을 내놓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엉덩이만 내놓은 게 아니라 잠시 마음까지 내려놓은 순간이 문제였다. 3번 교육생이 제대로 하지 않을 때마다 다른 교육생들이 기합을 받아야 했다. 그는 퇴출 위기에 몰렸으나 다른 교육생들의 요청으로 결국 합류한다. 30kg 군장을 매고 훈련병을 옮기는 순간에도 요령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며 팀원들을 독려하는 모습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UDT는 양성이 아닌 선발의 개념으로 진행된다. 본인이 포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종을 치고 퇴교할 수 있다. 계속 진흙에서 뒹굴고 100kg이 넘는 보트를 들고 한 시간 내내 구보를 하며 쓰러져 가는 교육생들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일게 했다. 달리고 달리다가 종을 칠까 말까,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이근 대위는 이 훈련이 X같지만 재밌는 이유가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본성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훈련을 통해 가짜 자신을 벗고 진짜로, 진짜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기에 이런 말을 한 게 아닐까. 진짜가 되기 위한 가짜들의 눈물겨운 투혼, 단짠 맛 교관이 만들어낸 가짜들의 진짜 이야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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