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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코로나 이후 근무 환경의 변화

코로나가 터지고 처음 재택근무를 해봤다. 재택의 시작은 5월 중순. 7시 15분에 맞춘 알람을 비활성화하고 8시 40분 알람을 켜놓는다.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집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출근 버튼을 누른다. 버스와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뛰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 가는 일련의 과정이 제외된 일상.


집에서 일하면 좋은 점


틈틈이 하기 어려운 스트레칭도 곧잘 한다. 어깨가 뻐근하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허리를 늘려준다. 별일 아니어도 30분에 한 번씩 일어나 줘야 한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 회사에서는 그냥 일어났다 앉는 게 눈치 보인다. 스트레칭을 해도 되지만 큰 동작이면 동료의 관심을 받게 되므로 잘 안 하게 된다.


평소 변비가 있는데 화장실 가기가 편하다. 출근을 하면 변이 탈출하는 황금 시간대(?)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 스트레스는 장을 멈추게 한다니 불편한 상황에 수축된 장은 변을 내보낼 생각을 안 한다. 재택 하면 변비가 씻은 듯이 나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화장실에 잘 간다.


5월은 재택 하기 좋은 계절


마음이 편한 나머지 정해진 시간 이외에도 음식을 먹는다. 재택이 일주일이니 망정이지 몇 주 더 계속되면 살이 찔 것 같다. 살은 맘이 편할 때 찐다. 조금씩 불러오는 배를 보니 재택은 천고마비의 계절이 틀림없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바람 부는 5월. 12시가 되면 바로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안양천 둑길로 간다. 너무 앉아 있으면 허리 아프니 산책을 해야 한다는 마음 반, 5월의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고 싶은 마음 반. 12시 땡 하자마자 나가서 안양천 둑길을 걷는 기분이란.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몸소 실감하게 된다.

끝없이 이어진 안양천을 따라 한강까지 가고 싶지만 점심시간을 고려해 반쯤 갔을 때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점심시간에 밥 대신 봄바람을 잔뜩 마셨더니 허파에 바람만 들었다. 부푼 마음으로 오후 업무를 하다 보면 전화와 메신저로 오는 일들을 처리한다.  


저녁 6시 땡 하면 또 안양천 둑길에 갈 준비를 한다. 엄마는 난리 났네, 난리 났어 혀를 끌끌 찬다. 동네 강아지처럼 산책할 생각에 온 몸이 들썩인다. 지하에 있어야 할 6시. 노을로 그라데이션을 넣은 하늘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출퇴근이 없는 일상은 재택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인생 첫 화상회의


재택은 A조, B조로 나눠 출근하는 인원과 재택 인원을 달리한다. 내가 재택을 하던 기간에 주간보고를 할 일이 있었다. 함께 회의하는 인원 중 몇몇은 회사에 출근해 있는 상황. 처음으로 Zoom을 이용해 화상회의를 해봤다. 방을 예약하면 링크와 함께 접속할 때 필요한 암호를 서로 공유할 수 있다. 시간에 맞춰 링크에 접속했는데 나 혼자 헤맸다. 필요 암호를 등록했으나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팀원들을 기다리게 하며 우여곡절 끝에 화상회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늦은 접속의 미안함도 잠시, 작은 모바일 화면에 각자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뜬 것을 보고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 아래로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두 턱이 된 자신의 모습을 모두와 공유하게 된다. 부끄러우니 맨 얼굴은 마스크로 가린다. 한결 마음이 안정된다. 얼굴 뒤 배경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마스크 쓴 얼굴이 가득 나오도록 각도를 조절한다. 이 와중에 상사의 집 배경은 아주 전문적인 느낌을 준다. 배경 없이 얼굴로 화면을 채운 나와 달리 백그라운드를 서재로 장식하셨다. 팀원들은 전문성을 탑재한 상사의 백그라운드에 감동을 표한다. 나중에 팀원들은 상사의 서재를 회상하며 혹시 책과 책꽂이를 그린 판넬을 뒤에 세워 둔 건 아닐까 의심해 본다.


화상회의는 얼굴이 크게 나오는 것,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모바일로 한정돼 있다는 것 말고는 괜찮았다.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렸고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초반에 방에 출입하지 못한 것 빼곤 나쁘지 않았다. 다만 상반신만 옷을 바꿔 입듯 뒷 배경의 민낯을 조금 관리(?)해 줘야 하는 귀찮음이 있다.


8월 말부터 다시 시작된 재택


코로나가 수도권으로 확산되며 8월말부터 재택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A조와 B조로 나누어 인원을 조절했다. B조의 재택이 끝날 무렵 공지사항이 떴다. 연일 확진자가 200명이 넘으며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하자 재택근무 기간이 연장됐다. B조를 선택한 나는 A조가 재택을 할 동안 다시 회사로 나간다. 텅 빈자리와 한산한 사무실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만 가끔씩 들린다. 5월이 마지막일 줄 알았던 재택이 이어진다. 내년에도 집에서 근무하는 일이 있을까. 재택의 바람을 불어넣은 코로나 시대는 언제쯤 끝날지, 비가 추적추적 오는 B조 근무자의 어두운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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