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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r 05. 2021

작은 존재로 대하지 않기

<겐샤이> 케빈 홀

겐샤이. Genshai


나는 인도에 와서 겐샤이를 배웠다. 겐샤이는 누군가를 대할 때 결코 그가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대해선 안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걸인에게 적선을 할 때 동전을 그냥 던져주는 것은, 그것은 겐샤이를 실천한 게 아니다. 만약 내가 자세를 낮추어 그의 눈에 나의 눈을 맞추고 동전 한 잎이라도 그의 손에 정중하게 준다면 그 동전은 돈의 가치를 넘어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인도에는 어디를 가도 구걸을 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뿐만 아니라 기념품부터 시작해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파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그중에는 겨우 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도 있고 백발의 노인도 있다. 그들에게 항상 둘러 쌓여 있다 보면 어느덧 무심하게 ‘노’를 외치거나 그들에게 눈길조차 보내지 않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겐샤이’의 가치를 상기시키곤 한다. 그들도 가슴속에 저마다의 신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 안의 신을 존중하듯 나 역시 그들 가슴속 신을 존중하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오늘 오전이었다. 네시 반쯤 일어나서 다섯 시에 배를 타기 위해 가트로 갔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바구니에 꽃을 잔뜩 담고 왔다. 나뭇잎으로 엮은 접시에는 성스러움을 상징하는 금잔화가 잔뜩 담겨 있었고, 작은 초와 성냥 하나가 담겨 있었다. 아이는 가장 먼저 가트에 도착해 꽃 접시를 팔고 있었다. 갠지스 강에서 볼 수 있는 꽃 접시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거나 기도를 올리고 나서 촛불에 불을 붙인 뒤에 강으로 흘려보낸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꽃을 사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한테 왔었을 때 나도 무의식적으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는 하루의 첫 번째 장사를 막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첫 번째 손님이 될 수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나 또한 갠지스 강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꽃은 그래 봤자 10루피. 200원도 하지 않는 돈이다. 다시 그녀에게 가서 허리를 굽히고 두 개를 달라고 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나에게 접시 두 개를 주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돈을 손에 쥐어주고 말했다. "오늘 하루 종일 행운이 있을 것 같아. 고마워!"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음은 전해졌을 것이다. 


오늘 오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가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초라한 행색을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다른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한 손은 오므려 나에게 내밀고 다른 손은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듯 그의 손은 배와 입을 분주히 왔다 갔다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나도 점심을 못 먹었어요. 먹을 게 없습니다. 미안해요라고 한뒤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몇 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수소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 소는 덩치가 너무 크고 뿔이 양쪽으로 크게 나 있어서 다가오는 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발이 뒤로 주춤했다. 그때 소가 앞에 멈추더니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소의 얼굴은 기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 나아가서 보니, 아까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던 행색이 초라한 할아버지가 자기의 옥수수를 소와 나누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먹을 것이 부족한 순간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동물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는 살포시 웃으면서 소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무릎을 굽혀 양손으로 그에게 주었다.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돈을 쥔 손을 미간에 가져다 대고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나 역시 한 손은 가슴에 한 손은 그의 어깨를 잡고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말했다.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그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입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는 건 물질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진정하다는 것은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인도 여행은 배움의 연속이다. 내 마음을 기울여 누군가를 대할 때, 그 마음은 늘 전해진다. 머리로는 알지 못해도 가슴으로는 느낀다. 만약 우리의 정신이 조금 더 깨어있으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영혼과 영혼의 대화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18년 7월 바라나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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