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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r 04. 2018

꿈꾸는 여행자. 여행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진정한 여행에 대한 사색 그리고 청년 이야기꾼의 무일푼 걷기 여행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여행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사실 어떤 면에서 여행과 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 없이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19세기 말에 활약했던 미국 기자 넬리 블라이는 25살에 시작한 세계 여행을 72일 만에 완주하고 말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느냐는 거죠!"


사실 우리는 편안한 여행을 원하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숙소는 안락해야 하며 이동 수단은 편안해야 한다. 그 지역의 관광 명소는 무조건 들러야 하고 유명한 음식은 먹어봐야 한다. 물론 그때 멋진 옷을 입고 찍는 인증사진은 필수다. 이러한 여행. 여행이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현대식 관광이나 바캉스는 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다르다. 여행은 하기 전에 왜 여행을 떠나야 하는지, 여행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알 고 있어야 한다. 여행의 서정은 풍요로운 경험과 새로운 깨달음을 내 안에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다양성 속의 조화, 대지와 인류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해하고 옛 진리와 법칙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 안에서 재발견하는데 진정한 여행이 있다. 



제롬을 만난 건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2015년 여름날이었다. 벨기에로 향하는 강을 따라 한가로이 늘어선 흰색 벽돌집 사이 18번가에 제롬이 살고 있었다. 제롬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나탈리의 남편으로 2년 전부터 벨기에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틸 레이에 살고 있었다. 집 앞에서 아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던 제롬은 우리를 보자 집안으로 안내했다. 흙으로 지어진 듯한 집 내부는 아담하고 아늑했다. 여기저기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옷들이 널려 있었고 조금만 앞으로 가니 정원으로 가는 문이 나왔다. 야생초가 얽히설키 자라 있는 정원에는 한 구석에 텃밭이 있었다. 호박넝쿨, 토마노, 대파, 바질 등 다양한 작물이 심어져 있었고 정원 가장자리에는 사과나무 몇 그루에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정원에는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암탉이 느긋하게 거닐고 있었다. 


제롬은 시원한 물에 딸기 시럽을 타서 주며 말했다. "얼마 전 산에 갔다가 야생 딸기가 있길래 따서 시럽을 만들었어요. 먹어봐요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무척 달죠!" 분홍빛 딸기 시럽이 들어간 물을 마시며 제롬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제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전문대학에 입학한 뒤 극장의 조명 시스템을 점검하는 공연장 엔지니어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조명을 점검하다 말고 문득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늘 자연을 동경했고 자연에 있는 게 좋았다. 삶이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수중에는 딱 3천 유로가 있었는데 한 달에 예산을 100유로로 잡는다면 그래도 3년은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롬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걷는 여행을 했다. 


"3년 동안 매일 아침, 점심, 저녁식사로 당근 한 개, 사과 한 개 조금의 빵과 치즈를 먹었어요. 한 번도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그는 정원 가장자리에 곧게 자라 있는 사과나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 나무에 달린 사과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에게 충분한 양식을 제공해 줘요"


그가 처음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우선 그가 살고 있던 작은 집과 그 안에 있던 살림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순간, 친구 모두를 집으로 불러 가져가고 싶은 모든 것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물건들은 노숙자들을 돕는 단체에 기증함으로써 걷는데 필요한 몇 개의 옷가지를 제외하곤 모두 정리했다. 모든 것은 일주일 만에 이루어졌다. 


나무 한 그루가 1년 내내 공든 탑을 모두 무너뜨리고 버리는 데에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나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또다시 그것들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호프 자렌 박사는 말했다. '용감한 나무들은 자신들이 지닌 모든 속세의 보물들을 땅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 보물들은 곧바로 썩고 분해가 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내년의 보물과 영혼을 하늘에 쌓아 올릴지 모든 성인과 순교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물건을 지니고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땅과 멀어졌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였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등에 매고 있는 배낭 속 8킬로 정도의 물건으로 걷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작은 배낭 하나 매고 길을 나아갈 때 몸과 마음은 가볍다 못해 날아갈 것 같았다. 

 

우리는 나무로부터 배워야 한다. 물질적인 것들로 하루하루 삶을 채우는 게 아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꿈과 희망찬 확신을 가지고 가끔씩이라도 가지고 있던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나무 같은 삶 말이다. 


제롬은 길을 나섰다. 자기가 살고 있던 집을 시작으로 걷고 또 걸었다. 하루는 우연히 프로방스 지역의 작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곳을 지나게 됐다. 그곳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축제를 즐기고 있던 이 곳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렇게 그는 이야기꾼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펼쳤다. 주제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제롬은 정성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홀로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땅을 가꾸고 이를 통해 자기 치유를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을 모여들어 제롬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제롬은 이야기를 선물하며 길을 걷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가끔 빵을 주기도 하고,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여행에 쓰라며 노잣돈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야기를 선물하고 여행에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하루 3유로의 삶을 유지하면서 가끔씩 들어오는 종잣돈으로는 한 조각의 초콜릿을 먹기도 하고 비가 올 때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기도 했다. 제롬은 프로방스를 거쳐, 피레네 산맥, 북쪽의 브르타뉴 지역을 걷고 또 걸었다. 


낮이 길면 더 많이 걸었고 낮이 짧아지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텐트나 나무 위에서 자곤 했는데 달이 밝은 날에는 새벽 달빛에 자주 깼다. 그럼 어김없이 머리맡에 받히고 자던 책을 펼쳐 읽었다. 사방이 조용하니 책과 하나가 되어 몇 시간이고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3년 정도 걸었을까, 몽생미셸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우연히 운명의 상대 나탈리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첫눈에 반했고 둘은 자연스럽게 함께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걸으며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매일 홀로 걷던 제롬에게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홀로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제롬은 커플로 함께 여행을 해도 독립적인 시간을 꼭 가졌다.


사랑하는 사이, 아주 친한 친구나 가족 사이에도 우리는 종종 적당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죽고 못 사는 사이여도 24시간을 매일같이 붙어 있으라고 하면 계속 즐겁기는 쉽지 않다. 또한 신경이 예민해질 때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친구나 연인과 여행을 떠나서, 가끔은 혼자서 있고 싶다고 용기 있게 말해야 한다. 가끔은 서로가 각자의 공간 속에서 온전하게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을 때 둘이 되어도 온전할 수 있다. 


이렇게 제롬은 혼자서 또 가끔은 그의 아내 나탈리와 함께 소박한 걷기 여행을 했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별을 따라갔다. 삶의 근원에 대해 진한 질문을 던졌고, 스스로를 마주했다. 이야기를 통해 주위 사람들과 소통했다. 이름 모를 작은 꽃들, 지극히 희미한 대기의 색조, 지역의 언어에 깃든 조금씩 차이가 있는 억양, 집들의 모양과 문화를 알게 되었다. 잠을 자는 자연의 공간 속에서 흙의 향기를 맡았고 나무 결을 느꼈으며 4계절 불어오는 각기 다른 바람을 마셨다. 


제롬은 말한다.


 "제가 행복을 느끼는 건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손끝으로 만지는 한 방울의 빗물, 하루 종일 걷고 난 뒤에 먹는 한 조각의 초콜릿, 나무 위에 누워 바라보는 아름다운 은하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걷는 기쁨. 이 모든 소박한 것들이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들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가장 소박하고 작은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바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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