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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r 06. 2018

여행하는 방법

최고로 멋진 경험은 최소한의 것으로부터. 

나라별 상황별 여행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심플 리빙을 주제로 다닌 두 달간의 여행 또한 조금은 특별했다. 프랑스는 기차나 비행기 같은 굵직굵직한 교통수단이 발달하긴 했지만 그런 수단을 이용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기차 값이 비행기 값보다 비싸고 버스 노선도 많지 않다. 그나마 자주 있는 노선들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멋진 여행을 만들기 위해 내가 선택했던 여행의 방식은 바로 멀티밴이다. 이 자동차를 만난 건 독일에서였다. 은퇴하고 여행을 즐겨 다니던 한 독일 노부부가 더 이상 여행을 다닐 수 없게 되자 그것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어찌나 깨끗하게 탔는지 연식이 많은 할아버지 자동차였는데도 불구하고 흠집 하나 없이 완벽했다. 우리는 그렇게 폭스바겐 멀티밴을 독일에서 프랑스로 이주시켰다. 그래 봤자 서울에서 경기도 가는 거리이긴 하지만. 


우리는 바다같이 파란 이 자동차를 그때부터 까미옹 블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름마다 까미옹 블루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2015년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심플한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답게 우리의 여행 또한 소박했다. 사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일단 까미옹 블루는 이동수단으로써 멋진 역할을 했다. 한번 주유하면 800킬로는 가뿐히 달렸다. 우리는 이동할 때 보통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했는데, 국도는 고불고불한 산길, 숲 속, 해안가등 멋진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장소를 만나게 되면 차를 잠깐 주차하고 그곳에서 쉬어가곤 했다. 한 번은 부르고뉴 지역을 지날 때였는데, 표지판에 천 개의 연못으로 가는 길이라고 나와 있었다. 연못이 천 개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작은 물 웅덩이부터 시작해서 크기가 비교적 큰 호수까지 말 그대로 천 개가 넘는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영을 하기도 하고 책을 보며 낮잠을 자기도 했다.  여행 책자는 물론 인터넷에도 잘 안 나와 있는 보석 같은 장소의 발견은 국도를 달리다 보면 쉽게 마주하는 것들이다. 물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보다야 시간은 배로 걸리겠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있다. 천천히 가는 것도 방법이다. 느림은 의외의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기도 하니깐 말이다. 


우리가 타고 다녔던 까미옹 블루. 왼쪽은 알프스 자락이고 오른쪽은 라벤더가 피어있는 프로방스다
천 개의 연못에서 만난 잠자리와 플라밍고


우리는 이동할 때 블라블라 카라는 공유 차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갈 때 만약 목적지가 비슷하다면 차를 함께 타고 가는 거다. 우리 차에는 총 다섯 명이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공유차가 되기도 했다. 공유 차 서비스는 비단 이동수단으로써 존재하는 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함께 차를 타면서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어있다. 잠시나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우리는 취재가 끝나면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보통 차 안에서 작업을 하거나 주변에 괜찮은 곳을 찾아서 일을 했다.. 자동차 내부에는 간이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것을 피면 작은 오피스가 만들어진다. 차가 이동하는 동안 만들어진 전기로 핸드폰부터 노트북, 촬영 장비, 냉장고 등을 충전할 수도 있다. 타입랩스 촬영을 하거나 바깥이 너무 아름다워 견딜 수 없을 때는 그곳이 어디든 우리의 워킹 플레이스가 되었다.



우리의 식사 또한 대부분이 까미옹 블루 안에서 이루어졌다. 작은 서랍장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에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작은 버너와 각종 식기를 보관했다. 충전식 냉장고도 있었는데 차갑게 온도를 낮추는 기능은 없지만 아이스박스처럼 내부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침은 보통 곡물 빵에 꿀이나 쨈을 발라서 뜨거운 차와 함께 먹었고 점심이나 저녁은 간단하게 해서 먹었다. 여러 지역을 여행 다니는 것은 다양한 식재료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답게 지역별 음식이 발달했었는데, 우리는 특히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치즈나 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채소나 과일은 우리의 단골 메뉴였다. 프로방스 지역을 지날 때는 멜론, 살구, 복숭아 자두가 재철이라 시도 때도 없이 먹었고 라벤더 쨈이나 양질의 올리브유를 빵과 같이 먹는 건 소박한 사치 었다. 해안가를 지날 때는 절인 앤쵸비로 만드는 파스타나, 생 굴, 홍합을 먹었고, 산악 지역을 다닐 때는 단단한 곡물 빵을 썰어서 염소 치즈를 살짝 올려 꿀을 발라 먹기만 해도 세상 행복했다. 산해진미란 사실 거창하게 요리한 게 아니라 제철에 나온 식재료를 사랑하는 사람과 알맞게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배부르고 적당히 기분 좋을 정도로 말이다. 프랑스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는 끝도 없으니 이쯤에서 접어두고, 


여행을 하면서 또 하나의 별미는 잠자리 선정이었다. 까미옹 블루의 가장 큰 특징은 의자를 쫙 피면 침대로 변했다. 그 말을 즉슨, 매일 저녁 안방에 있는 창문 밖 그림이 바뀐다는 것이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어디서 잘지에 대한 고민을 하곤 했는데 보통 차가 많이 다니는 큰 도로와 불 빛이 강한 도시는 피하는 편이었다. 그 대신 호숫가나 바닷가, 산자락 혹은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이런 곳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고 떠오르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달빛이 어두워지고 별빛이 밝아올 때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은하수를 찍기도 했다. 자연의 시간이 곧 우리의 리듬이었다. 새벽에 밝아 오는 희미한 빛에 눈을 뜨고 새의 지저귐과 함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호숫가에서 하는 아침 수영은 몸과 마음을 호수의 깨끗한 물처럼 정화시켜 주었다. 



우리의 여행은 소박했다. 옷은 잠옷을 포함해 세네 벌이면 충분했다. 그마저도 안 입는 옷이 나오는 걸 보면 나에게 불필요한 옷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도시에서 매일 하던 화장도 필요 없었다. 스킨, 로션, 선크림도 그냥 로션 하나로 줄여서 바르고 그마저도 생략할 때가 많았다. 공공 식수대에서 받은 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 절약도 되었다. 세수하고 양치하는 데는 딱 한 컵의 물이면 충분했다. 


먹거리는 보통 농부나 근처에 있던 유기농 협동조합에서 사 먹었다. 지역에서 마을단위로 갈수록 채소나 과일의 신선도와 맛도 덩달아 올라가고 가격은 내려갔다. 무엇보다 어찌나 많이 주시는지. 시골 인심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다. 


잠자리는 보통 까미옹 블루에서 해결했다. 가끔 우리를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다시금 차로 돌아와서 쉬곤 했다. 한 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발 뻗고 행복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잠을 자는 공간 한평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무한대의 자연이 바로 나의 거실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엇이 모자라겠는가. 


매일매일이 여행이자 일터이며 새로운 경험이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하면 더 적게 쓰고 더 적은 것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얻는 것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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