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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Jul 16. 2018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

닭의 여왕, 왕의 닭 - 프랑스 브레스 닭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프랑스인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먹는 음식을 통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닭고기는 프랑스인이 가장 즐겨먹는 식재료중 하나다. 프랑스 인들의 닭 소비량을 보면 일 년에 약 26.1kg로 우리나라 12kg의 두배가 넘고 유럽 평균 21.9kg보다도 많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가금류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며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금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프랑스가 얼마나 닭을 많이 먹는 나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지난해와 올해 서울대 문정훈 교수가 진행하는 토종닭 프로젝트에 프랑스 코디네이터로 합류해 프랑스 닭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프랑스에 거주할 때만 해도 채식을 했기 때문에 사실 닭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다. 내가 채식을 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의 이유였다. 나는 산업혁 식육 가공 농장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오늘날 대부분의 육류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호르몬, 항생제 내성, 심각한 환경오염들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전체를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자연의 시스템에 위배되는 공장식 사육으로부터 온 육고기를 소비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육류의 '맛'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특히 향기로운 기름을 잔뜩 머금고 부드러운 살결에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좋아한다. 올바른 방식으로 생산되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내가 프랑스에 살 때 브레스 닭이 존재한다는 걸 그 당시 알고 있었더라면 나의 채식 식단에서 브레스 닭을 예외로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족은 접어두고, 그래서 브레스 닭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브레스는 프랑스 동부 세 개의 지역 론알프스, 브루고뉴, 그리고 프랑스 콩테 지역에 고루 위치한 지역을 가리킨다. 브레스는 프랑스에서도 닭으로 유명한데 위에서 언급했던 브리야 사바랭은 그의 저서 미식 예찬에서 브레스의 닭을 '닭의 여왕, 왕의 닭 The queen of poultry, the poultry of King'이라며 극찬했다. 브레스는 프랑스에서 닭으로는 처음 원산지 보호 명칭인 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를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맛있는 닭이라는 찬사를 얻은 브레스 닭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유명한 것일까?  

브레스 닭 생산 키워드는 자연과 지역성 그리고 엄격한 관리이다. 

넓게 펼쳐진 풀밭, 내리쬐는 햇빛, 적당한 습도, 선선한 바람, 너도밤나무가 만들어 주는 적당한 그늘. 이게 바로 브레스 닭이 자라는 환경이다. 브레스 닭은 하루 종일 바깥에서 먹고, 자고, 뛰어논다. 그들은 주식으로 애벌레, 곤충, 풀잎을 먹고 가끔 건강한 흙도 쪼아 먹는다. 사육장 내에 마련된 사료통에는 15킬로미터 떨어진 농장에서 수확한 옥수수, 콩, 밀, 메밀, 귀리 보리 등이 들어있고 근처 농장에서 생산한 우유도 마신다. 이들이 먹고 마시는 사료는 브레스 지역에서 생산한 것만 사용할 수 있으며 유전자 조작 작물은 엄격히 금지된다. 닭 한 마리당 최소 10제곱미터의 사육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는 0.05제곱미터인 우리나라 '한 뼘 닭장'의 무려 200배다. 브레스 닭은  우리나라 닭보다 무려 200배의 자유를 누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자라는 일반적인 영계 뿔레 (Poulet)은 실내에서 최대 35일, 실외에서는 최소 110일간 사육된다. 우리나라 닭이 30일을 안팎으로 도계 될 때 브레스 닭은 안전하게 실내에서 자라다가 세상을 맛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간다. 샤퐁(Chapon)이라 불리는 거세된 수탉 같은 경우 사육기간이 무려 224일이다. 

브레스 닭의 모든 생산 과정은 CIVB라는 브레스 가금류 위원회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 곳에서는 생산, 관리, 추적 및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데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주인인 조르쥬 블랑 George Blanc이 이 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는 건 브레스 닭의 생산부터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브레스 닭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모든 사람들과 기업은 CIVB에 협회 멤버로 등록해야 한다. 닭의 생산 규정에서부터 출하 가격까지 협회 당사자들 그러니깐 생산자, 도계장, 유통기업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닭'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은 이렇게 브레스 닭과 관련해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바로 이것이 브레스 닭이 가지고 있는 생산의 기본적인 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산된 브레스 닭의 '맛'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보통 토종닭이라고 하면 질기고 뻑뻑하다는 인식이 있다. 예전에 히말라야에 올랐을 때 고산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이때 같이 갔던 친오빠가 불쌍한 동생을 위해 히말라야 산을 식은 죽 먹듯 오르내린 토종닭을 잡아다 목을 베고 털을 벗긴 뒤에 무려 닭볶음탕을 해준 적이 있다. 산에서 풀 뜯어먹고 자란 히말라야산 토종닭이니 그 맛이 어찌나 기가 막힐까 하고 기대했지만, 다리 하나 제대로 뜯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에 브레스 방문을 통해 알았다. 한국의 토종닭이 맛이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일단, 바깥에서 뛰어 자란 토종닭은 대체로 지방보다 근육이 많고 수분함량이 적다.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니니 근육이 발달하고 지방이 적을 수밖에. 또한 도계한 뒤 짧은 유통기간 내에 식탁에 오르는 것도 맛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다. 신선함이 가장 중요시되고 빠른 로테이션이 생명인 우리나라 도계 산업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동물은 죽은 뒤 사후 경직이 일어난다. 근육이 수축해 뻣뻣하게 굳는 증상을 말하는데 이런 상태의 닭을 먹으면 당연히 질기고 뻑뻑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결국 먹지 못했던 히말라야 토종닭도 같은 이유였다.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보다 더 날쌔게 산을 타던 수탉을 그것도 잡자마자 요리했으니, 요리로서는 원시시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 부분에서 브레스 닭 생산자들의 고민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브레스에서는 도계 하기 전 영계는 최소 10일, 거세된 수탉은 4주 동안 어두운 계사에서 '살찌는 과정'을 거친다. 'Épinette'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브레스 닭이 맛있어지는 핵심중에 핵심이다. 이때 생기는 닭의 지방은 브레스 닭 자체의 풍미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얀 닭의 살결 사이사이에 보이는 노란 지방은 구이 과정에서 닭 전체에 고소한 향을 입혀준다. 

이게 다가 아니다. 도계한 후 브레스 닭은 내장을 제거한 뒤 최소 7일간의 숙성과정을 거친다. 빠르게 생산한 뒤 빠르게 유통되는 우리 구조와 정확하게 반대이다. 이 숙성 과정에서 '살찌는 과정'을 통해 생성된 지방질이 천천히 근육 사이사이에 들어가게 되고, 이는 부드러운 육질로 연결된다. 닭의 지방이 주는 고소한 향기와 부드럽고 쫄깃한 육질을 가진 브레스 닭은 왜 맛있는지 이토록 디테일하고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영양학적으로는 어떨까? 

사바랭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말해준다. 닭이 무엇을 먹으면 닭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산업형 방식으로 생산된 닭의 주식은 옥수수와 콩이다. 풀이라고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못 보는 닭은 풀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소를 제대로 얻지 못한다. 녹색 풀은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 엽산이 풍부하다. 풀을 먹는 동물은 이런 영양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풀 먹고 자란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의 노른자가 진한 오렌지 색깔을 띠는 것도 베타카로틴 덕분이다. 또한 방목한 닭의 지방은 단일 불포화 지방보다 다중 불포화 지방 함량이 더 높고 오메가-3 지방산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식물의 잎에서 만들어진다. 이와는 다르게 옥수수와 콩 같은 씨앗 작물에는 오메가-6 지방산이 풍부하다. 우리 몸은 이 두 가지 지방산을 모두 필요로 하는데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아야 하고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브레스 닭을 포함해 풀을 먹고 자란 닭은 오메가-6와 오메가-3의 비율이 무려 14:1이다. 일반 닭을 14마리 먹어야 풀 먹은 닭 한 마리에 들어있는 오메가-3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 풀 먹은 토종닭이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것 아닌가? 

브레스 지역에 가면, 웬만한 레스토랑에 브레스 닭 메뉴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다. 셰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거다. 또한 워낙 그 식재료의 맛이 훌륭하기에 진한 소스나 복잡한 요리법으로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감출 이유도 없다. 레스토랑 중에서도 브레스 닭 요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보나 (Vonnas)에 있는 미슐랭 3 스타 조르쥬 블랑 레스토랑이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소금구이 닭인데,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식재료 본연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맛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밀가루, 소금, 물로만 반죽한 밀가루 틀에 브레스 닭을 소금 후추 간만 해서 오븐에 2시간 동안 구워내면 끝이다. 두꺼운 밀가루 반죽 껍데기 속에서 닭은 조금의 향과 즙의 유출 없이 안전하게 익혀진다. 밀가루 껍데기 안에서 적절한 온도로 익혀진 닭은 기름과 닭 본연의 수분이 만들어낸 즙으로 익혀져 육질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밀가루 껍데기 속 소금으로 간도 적절하게 배어 있다. 맛있는 음식의 핵심은 맛있는 식재료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표현해 내는 것이 셰프들의 역할이다. 

브레스 닭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분명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이해관계자들의 고민과 성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잘 안다는 것은 비단 요리에 대한 것이 아닌 음식이 포크에 꽂혀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모든 과정에 대한 것이다. 




사진제공 : 서울대 푸드랩, 푸드저널리스트 장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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