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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Mar 11. 2021

빛은 어둠을 이긴다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편견>, <가재가 노래하는 곳>, <힐빌리의 노래>에 이어 미국 사회 속 감추어진 모습을 알고 싶어 선택한 책이 <니클의 소년들>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스토리의 유기적 연관성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뒤섞여 있었고, 매 챕터마다 새로운 배경과 새로운 시대적 상황이 등장하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진한 여운과 하나의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읽는데 불편했던 모든 요소를 다 잊을 만큼 강렬했다. 


 <니클의 소년들>은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시점보다 한참 미래의 사건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고고학자들은 부트 힐이라는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뼛조각이 겹겹이 쌓여있는 무덤을 발견한다. 1 에이커의 흙 속에는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려있는 머리뼈를 비롯해 대형 산탄이 잔뜩 박혀있는 어린 소년의 갈비뼈도 발견된다. 눈으로 보이는 처참한 유해들을 이야기하며 책을 시작하지만, 작가는 책에 전반을 할애해 유해 속에 누군가가 숨기고 묻어버리려고 했던, 우리가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 그 사실들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평범하고 똑똑했던 주인공 엘우드는 불합리한 판결로 인하여 니클이라는 학교,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소년원과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갖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채 정신적 학대를 당하면서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고결한 정신을 되새기며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엘우드가 경험한 현실 속의 '끔찍한 세상’과 마틴 루터 킹의 고결한 ‘진리의 목소리’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부분이다. 결국 엘우드는 진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만, 그의 용기만큼 결말은 아름답지 않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버밍햄의 감옥에서 쓴 편지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 편지에는 킹 목사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강력한 호소력이 있었다. 킹 목사가 그때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행동하라는 웅대한 외침도 없었을 것이다. […] 세상은 평생 동안 그의 귀에 세상의 규칙을 속삭였지만, 그는 그 소리를 거부하고 대신 더 고결한 명령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은 계속 그를 가르치려 들었다. 사랑하지 마라, 그들이 사라질 테니. 믿지 마라, 배신당할 테니, 일어서지 마라, 얻어맞고 무릎 꿇게 될 테니. 그래도 그의 귀에는 고결한 명령이 계속 들려왔다. 사랑하면 사랑의 보답이 있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믿으면 그 길이 너를 해방으로 이끌 것이다. 싸우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눈앞에 뻔히 드러나 있는 것에 결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뽑혀 나오고 말았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고결한 명령에 귀를 기울여 행동한다고 해도 하늘이 결국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점은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는 내내 마음을 한없이 묵직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행동은 결국 그와 그의 민족을 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을 해방의 길로 인도해주었다고 믿기에 담담해질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처음에는 인종차별이라는 표현 아래 흑인에게 수십 년 동안 가해진 정신적 고통과 이를 안고 살아가는 후대의 사람들에 대해 집중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특정 인종과 특정 사건을 떠나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빛뿐이며,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고, 증오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미소를 지으며 너를 속여 텅 빈 것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게서 너의 자존감을 빼앗아 가는 사람도 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욕을 당할 때마다 도랑에 빠진 기분이든다면, 어떻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겠는가? 살다 보면 필요한 곳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터득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외면하고 묵인한다면, 모두가 한패라는 뜻이다"


"엘우드는 세상을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 눈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라웠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세상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 이것이었다"


"법을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없다"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써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 이렇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금하는 것.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 같은 생각까지도 금하는 것은 곧 인간성을 죽이는 일이었다."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으로 당신들을 지치게 해서 언젠가 자유를 얻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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