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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mo Jun 16. 2019

히말라야의 비경, 'Hidden Lake'를 찾아서-5



8일째 : 타토파니(Tatopanio)~포카라(Pokhara)


아침에 일어나니 종아리 부분이 뻐근하다. 오랜만에 장시간 산행을 했을 때 느끼는 통증인데, 강도가 다르다. 사실 이런 통증이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나타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사람 몸이란 목표를 향해 계속 긴장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 맞춰 반응하나 보다. 긴장했던 몸이 온천을 만나 일거에 무장해제되어버린 느낌이다.


타토파니에서 포카라로의 이동은 로컬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구글맵을 켜고 검색을 해보니 포카라까지는 정확히 100km. 한국이라면 1시간 남짓 걸릴 거리이지만, 4시간 20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이곳 도로 사정을 감안한 시간 계산 일거다.



그래도 8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점심은 포카라에서 한식으로 먹을 수 있겠지… 해외여행 가서 2주 정도는 한식을 안 먹어도 괜찮은 체질이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어제 타토파니에 도착해서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마침 이 지역 특산 사과주스가 있어서 한 병을 다 비웠지만, 일부러 주문한 닭고기 요리는 두 점 이상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아무래도 한식을 먹어야 식욕이 돌아올 것 같다.


로컬버스는 30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크기다. 거의 만석이다. 승객 절반 정도가 외국인 트레커들. 대부분 어제 온천에서 본 얼굴들이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예상대로 비포장 도로를 계속 달린다. 흙먼지가 날리는데도 승하차하는 문을 열어놓고 달린다. 안전벨트는 아예 없다. 운전석 문은 잠금장치가 고장 났는지 굵은 끈으로 동여맸다.



마을 하나를 더 통과해서 강변도로로 접어들었는데, 바닥이 진흙밭이다. 어제 꽤 오랜 시간 비가 내렸기 때문에 질척이는 정도가 예사롭지 않다. 아슬아슬하게 진흙밭 위를 달리던 버스는 30분쯤 달리다 결국 서버렸다. 깊은 진흙탕에 빠져 바퀴가 헛돌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10여분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전후진을 반복하더니 마침내 그곳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버스 안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구간을 벗어나자 도로는 비교적 단단히 다져져 있다. 버스는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거침없이 달린다. 그러나 다시 1시간을 채 못가 다시 서버렸다. 이번엔 전방에서 도로확장 공사를 하고 있나 보다. 포클레인이 아예 도로를 막아놓고 산 쪽 암벽을 깨서 길을 넓히고 있다. 우리 버스 앞뒤로 수십대의 차량이 줄지어 섰다. 이때가 오전 10시. 기사는 길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며 버스 주변에서 기다리란다. 아무도 짜증 내는 사람은 없다. 모두 이런 상황을 즐기는 표정이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길가에 갖가지 음식을 파는 간이 천막들이 늘어서 있다. 도로확장 공사가 벌어지는 동안 매일 되풀이되는 풍경인가 보다. 네팔인들은 익숙하게 커리 한 그릇씩을 주문해 그늘로 간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야유회 모드로 들어간 팀도 있다. 잠시 후 세련돼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오더니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나선다. 이렇게 시작된 춤판은 30분이나 이어졌다. 트레킹 첫날 울레리에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들려왔던 그 노래와 환호성 소리가 떠올랐다. 정말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이구나…



도로공사는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멈추고 차량통행이 재개됐다. 하행선 차량들을 먼저 보내고 출발하니 12시가 넘었다. 포카라가 가까워올수록 나타나는 마을의 빈도도 잦아진다. 버스는 마을마다 사람들을 내려놓고 태우고를 반복하느라 거북이걸음이다. 오후 3시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부가 비좁아 버스 지붕에 올려놓은 배낭이 문제였다. 일제히 배낭을 내려 안으로 갖고 들어오니 만원 버스가 더 비좁아졌다. 그래도 목적지까지만 무사히 가다오…


포카라에 도착한 시각은 5시 30분. 100km를 이동하는데 무려 9시간 반이 걸린 것이다. 곧장 ‘산촌다람쥐’로 가서 청국장 백반을 시켜 절반 정도를 비웠다. 살 것 같다.


Epilogue


포카라로 돌아와 4일간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포카라는 과연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일단 물가가 싸다. 그러면서도 관광지로서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추고 있다. 혼자서 무엇을 해도 전혀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는 곳이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페와(phewa) 호수 주변으로 수준 높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서 커피 한잔, 맥주 한잔과 함께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아마도 지구 상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스릴 넘치는 페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고, 자전거를 빌려 국제산악박물관 등 주변 명소들을 둘러보거나, 보트를 빌려 페와호를 한 바퀴 둘러볼 수도 있다. 누적된 트레킹으로 뭉친 근육과 누적된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샾도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친 뒤 일단 몸의 뚜렷한 변화가 느껴졌다. 48시간 넘게 지속된 비의도적 단식의 영향인지 체중이 확 줄었다. 뱃살, 옆구리살은 물론 상체 근육들까지 다 빠져나갔다. 정신적으로도 몸에 못지않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바닥까지 내려간 느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연상시키고, 여기서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접근한 뒤 돌아와 맞이하는 세상은 이전과 다른 느낌이다.


나에게 그토록 확신에 차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권했던 사람들도 앞서 이런 경험을 했었던 걸까? 그중 한 분은 “이 세상은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저마다 경험이 다르고, 추천의 이유도 달랐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히말라야 트레킹이 주는 임팩트는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여행기를 정리해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처음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발 3666m에서 맞았던 그 밤만큼 춥고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는 해발 4000m 지점에서 진퇴를 놓고 내렸던 그 결정의 순간을 떠올리게 되겠지.


매일 아침 경배하듯 바라봤던 설산 봉우리들을 뒤로하면서 히말라야의 신들에게 남은 내 인생이 결코 안주하는 삶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끝>


마차푸차레(Machapuchre) 6997m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 South) 6940m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m
안나푸르나(Annapurna1) 809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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