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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IFE

목적 있는 만남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by 퐝지

언젠가부터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는 뻔해졌다.


작년에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푸념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올해는 그 자리를 주식과 코인, 턱없이 올라버린 집값에 대한 한숨이 메웠다. 가끔 등장하는 연애와 소개팅 이야기는 퍽퍽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지만, 회사와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을 듣다 보면 막차 시간이 되기 마련이었다.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뇌를 함께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번 모임에는 각자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 한 가지씩을 들고 와 '목적 있는 만남'을 갖자고 제안했다.




나는 조금 더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근래에 깨달은 것"이라는 주제를 가져온 친구가 이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울컥했다. 그녀는 너무 당연하게도 충분히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인데, 왜 이걸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의아하고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업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이 때문에 자기 전에 '오늘 내가 잘못한 일이 없나?'라는 반성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다 스스로를 낮추며 잘못을 뉘우치고 잠들어야 하는 것에 의문이 들어, 그녀는 매일 밤 자신을 용서하며 잠들기로 했다. 조금은 더 행복하고 편안해졌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했던 그녀가 이제는 자신을 더욱 너그럽게 바라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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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너는 인정받아도 되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이 없어."라고 진심을 담아 투박하게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뜻밖의 말을 했다.


"네가 이해 못하는 듯이 무뚝뚝하게 말하는 게 위로가 될 때가 있어"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예민한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이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내 삶에 어느 정도까지 받아 들어야 하는가

미래에 대해 불안감과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꺼내놓은 주제이다. 어떤 이들은 가족의 품에서 온기를 느끼지만, 누군가는 한기를 느낀다. 가족들이 서로 도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있는 반면, 화살표가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가족도 많다. (세상에는 화목한 가족보다 그렇지 않은 가족이 많지 않을까..)


부모님이 자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거나 적어도 자식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게 좋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 부모님들은 힘든 시대를 살았고, 그들 역시 부모를 부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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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핍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 결핍은 끊임없이 나를 성장하게 바람이었다. 부모의 화살표가 늘 자식을 향할 수는 없고, 그들도 자신을 향할 수 있다. 비교는 대체로 불행을 가져오고, 비교를 통한 위안은 아름답지 않다. 나는 아직 비교를 극복하진 못했지만, 가족에 대한 비교는 멈춘 것 같다. 지금 내가 찾은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반발을 포기한 수용은 나를 더 채찍질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져온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였다. 두려움으로 인해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살고 싶은 방식'과 현실에서 나와 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 사이에서 고민이 된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을까. 엔지니어링에서는 제약 조건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위해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낼 수 있는 성과도 제한되어 있다. 30대가 되어서도 경제적 안정과 순수한 욕망 사이에서도 아직 헤매고 있다.



1박 2일 동안 100분 토론을 서너 번 거친 듯한 밀도 있는 대화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무작정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잠시나마 돌아볼 시간을 주었다.


목적을 가진 대화는 서로가 고민하던 취약한 부분을 공유하게 했다. 뻔한 이야기가 아닌 여운이 남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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