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의 줄 서기 문화
명품이나 한정판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사기 위해 기다린 얘기가 아니다. 베이글 가게, 그것도 신규 오픈이 아닌 무려 2년 전에 문을 연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베이글을 맛보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긴 줄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언정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니다. 맛집, 베이커리, 놀이공원, 팝업스토어, 미술관 등에서 이미 많은 인기 장소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줄 서기를 경험하고 있다.
(출처 :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스타그램)
팬데믹 기간 차곡차곡 내재됐던 욕구는 엔데믹에 이르면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로 분출되고 있다. 먹고 마시고 보고 즐기는 곳에는 어김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다. 파이브가이즈 같은 버거부터, 리움미술관 ‘조선백자’ 전 같은 미술전시까지. 심지어 요즘엔 명품 약과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약과 가게 앞까지 사람이 몰린다.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달고 SNS에 인기 스팟을 인증하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욱 몰린다. 유튜브 등 미디어에 스팟이 소개되기라도 하면 그때부턴 긴 줄 없이는 방문이 어려운 초인기 스팟이 되고 만다.
줄 서기가 사회적 동조(Conformity)의 결과물이라면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더 빠른 경험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바로 ‘오픈런(open run)’이다. 오픈런은 남들보다 빠른 속도가 중요한 적극적인 줄서기다. 2022년 7월 엠브렌드 트렌드모니터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오픈런에 대한 인식 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 중 71%가 ‘오픈런’을 알고 있으며, 47.4%가 직접 경험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오픈런의 경험대상으로 식당/음식점 등 맛집(22.7%), 놀이공원/테마파크(21.7%), 카페/베이커리(15.7%), 백화점/아울렛(12.7%), 관광지(11.6%), 의류/신발매장(6.4%), 마트/슈퍼마켓(6.1%), 팝업스토어/편집숍(5.8%), 미술관/전시회(5.7%) 순으로 조사되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줄 서기가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오픈런을 MZ 세대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오픈런을 경험한 비율에서 20대가 94.7%, 30대가 91.6%로 다른 연령계층(40대 38.6%, 50대 5.5%, 60대 이상 1.9%) 대비 뚜렷하게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MZ 세대가 굳이 자기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시대의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MZ 세대에게는 경험이 곧 소비가 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담고 있는 스토리, 브랜드 철학, 매장 분위기, 아이덴티티와 연결된 굿즈(Goods) 등을 경험하고 공유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소비를 완결했다고 여긴다. 인스타워시(instaworthy),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과 같이 공유할 가치가 있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에 퍼뜨리면서 내 것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전 세대가 가진 소유가 곧 소비라는 접근과는 다른 것이다.
MZ 세대가 줄을 서며 시간만 때우는 것이 아니다. 가게 앞을 구경하고, 가게 배경으로 자신을 찍어 인증하고 공유하며, 함께 줄 서기에 참여한 이들과 브랜드에 대해 대화하며 줄 서기 과정 자체를 즐긴다. IT의 발달로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부모님 세대는 명절 기차표 사려고 밤샘 줄을 불사했다)에 사는 MZ세대는 기다림이 필요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이런 문화를 만끽하기 위해 기다림을 기꺼이 자처하는 셈이다.
‘0차’라는 신조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흔히 “1차 간다, 2차 간다”할 때 그 ‘차’인데, 1차도 아닌 0차라면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바로 처음 가는 가게, 즉 1차 스팟에 들러 웨이팅을 신청한 후, 기다리는 동안 들를만한 주변 가게들을 1차 이전이란 뜻에서 0차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기 스팟 주변에는 흔히 편집숍처럼 잠깐 시간 내어 들를 수 있는 스팟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어, 이들 0차 스팟들을 구경하는 것이 MZ 세대의 루틴이 되었다.
또 줄서기가 보편화되며 웨이팅 앱 역시 큰 인기다. 외식 플랫폼 캐치테이블의 웨이팅 서비스 누적 이용 건수가 65만 건을 넘어섰고 올해 3월 대비 7월 이용건수는 1500% 증가했다. 테이블링은 작년 기준 MAU가 115만 명에 회원 300만 명을 확보했다. 웨이팅 앱을 통한 스마트한 기다림, 그리고 기다리는 과정마저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 줄 서기 문화 역시 진화하고 있다.
에버트 로저스의 수용주기를 응용해 적용해 본다면 무언가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을 때 얼리 어댑터(early adoptor), 인플루언서(influencer), 셀러브리티(Celebrity)들이 해당 현상을 먼저 체험하고 누리며 확산시킨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초기 수용층(early majority)으로 편입되며, 마지막으로 대세가 되어 버린 현상을 외면할 수 없어 조용히 따르는 이들이 후기 수용층(late majority)이 된다. 후기 수용층은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 자신이 해보지 못한 가치 있는 경험을 다수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 불안해하며 참여를 하게 된다.
줄 서기 문화도 비슷하다. “얼마나 맛있다고 저렇게 기다려? 시간이 남네 남아” 이렇게 비아냥거리긴 쉽지만, 그런 태도로는 줄 서기 속에 담긴 MZ 세대의 소비 키워드를 놓치기 십상이다. 밥만 먹고 떠나는, 물건만 사고 가버리는 그런 소비가 아닌, 기다리고 소통하고 기다리며 만끽하는 즐거움이 MZ 세대 소비의 핵심이다. 적어도 마케터, 브랜드 담당자라면 꼭 알아야 하는 인사이트가 아닐까?
[Source : Cheil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