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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e by Mar 11. 2024

(2)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아버지가 졸업한 공업고등학교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이름을 혼동해서 부산기계고등학교에 먼저 전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 학교는 1967년에 개교한 학교였다.

"아무리 늦게 입학을 했어도 지금 전화 주신 분 아버님이시면 우리 학교 졸업생 아닐 텐데요. 부산공업고등학교로 전화를 해보십시오. 거긴 개교 100주년입니다."


  아버지가 나온 고등학교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니. 하긴 부산공고, 부산기계공고, 부산상고... 서로 너무 비슷하니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합리화...


  “여기가 100 주년 된 부산공고 맞습니까? 작고하신 아버지의 생활 기록부를 떼고 싶은데, 가능한지요?”

왜 생활 기록부를 떼느냐 물을 법도 한데 그런 질문은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생경한 대답이었다.

"아버님 졸업 연도의 기록은 여기가 아니라 부경대학교로 이관해서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로 문의하시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사람들이 작고한 부모님 생활기록부를 자주 떼나? 담당자가 나에게 생활기록부를 문의하는 이유를 묻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경대학교 담당자도 묻지 않았다. 바로 아버지의 출생 연도와 이름을 묻고는 졸업생이 맞고, 기록이 그곳에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딸입니다. 어떤 서류를 가져가면 뗄 수 있을까요?”

“학적부는 본인만 뗄 수 있는데요."

"작고하셨습니다."

"그럼 사망 진단서와 지금 전화 주신 분이 따님이라는 증빙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러웠던 이별의 기억이 엄습했다.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작고 하신 분이라는 증빙이면 됩니다. 주민센터 가면 떼 주거든요.”

그때 담당자가 이상한 듯 말했다.

"여기 아버님 학적이 두 개가 보이거든요. 동명이인, 생일까지 같은 분이 있기는 어려운데..."

"혹시 두 학적이 같은 사람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실까요?"

"이게 다 한자로 적혀 있어서, 확인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언제 오십니까?"

"여긴 서울입니다. 가도 다음 달은 되어야 할 거예요."

"그럼 팩스 민원으로 신청하세요. 가까운 주민센터에 가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부산에 가서 직접 받겠습니다. 아버지 서류를 직접 보고 싶어요."

부경대학교 담당자 사무실 위치, 이름, 점심시간 등을 메모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네 주민센터에 전화를 했다.

"작고하신 아버님 사망 신고서를 주민센터에서 뗄 수 있나요?"

”사망 신고서는 병원에서 떼는 건데요."

"작고하셨다는 확인 서류가 있다고 하는데."

"아버님 본인 제적 증명을 떼시면 됩니다. 사망 신고는 하셨지요?"

신고를 안 하는 사람도 있나? 있나 보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와 가족 관계라는 상세 가족 증명도 신청할 수 있습니까"

"전화 주신 분 신분증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법적 친아버지 맞습니까?"

그렇구나. 실제 아버지와 법적 아버지가 아닌 경우도 많구나.


  주민센터에 갔다. 아버지 서류의 경우 민원서류 온라인 시스템 이전이기 때문에 제적증명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민원서류를 쓰는데 아버지의 이름 한자가 기억나지 않았고, 아버지 주민등록번호도 기억나지 않았다.


 서류가 나왔다. 아버지의 이름을 만져보았다.  이름도 살아남은 가족들의 이름도 모두 X자로 지워져 있었다. 흔적의 기록이었다.


  화창한 일요일, 서류를 품에 안고 부산행 기차를 탔다. 바다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열 명쯤 되는 남학생들이 함성을 지르며 차가운 바닷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도 저 나이쯤이었겠지.


  미포항 끝까지 걷다가 블루라인 정거장 언덕 위로 더 더 올라갔다. 사라지는 노을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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