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

nu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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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nuance)






뉘앙스는 작은 어감의 차이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원래 미묘한 색의 차이를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차이를 느끼는 영역이 사람에 따라 주관적이라, 미묘한 차이에 기분이 좋았다 나빠졌다 한다면 그건 상대 잘못이 아니니 혼자 알아서 할 일이다.


색을 다루는 디자이너나 미술가에게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들 머리에는 아마 수백 가지의 파랑이 오락가락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파랑?'이라는 건지 물어올 수도 있다. 아니 디자이너이니 쉬크하게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을 가능성 90% 이상. 그렇다고 전국의 수학 선생님이 펜톤 컬러 북까지 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체 그 블루가 명도는 어떠한지, 채도는 어떠한지, 틴트, 셰이드, 톤은 어떠한지 정확히 알 필요도 없고. 그들에게는 수백 가지 파랑보다 수백 개의 숫자가 생명이다.


나는 색의 전문가도 아니고 수학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영역 밖의 일들은 대충 하는 편이다. 파랑이라면 "그 사람 이런 블루 좋아해". "파란색이 너무 쨍하네" 정도면 살아가는데 아직 큰 문제는 없다. 숫자도 다른 사람에게 갚을 돈 계산만 정확하면 역시 생명에 지장이 없다.


내가 예민한 곳은 말이다. 기가 막히게 프랑스어의 뉘앙스가 적용되는 곳이다. 예를 들어 같은 단어를 여러 상황에서 똑같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도 예쁘고, 풍경도 예쁘고, 음식도 예쁘다. 그럼 나는 "왜 저럴 때 저걸 예쁘다고 하지?" 신기함 더하기 갑갑함 더하기 지루함이 있다. 가끔은 "제발 다른 동의어나 대체어를 찾아서 한달에 한번이라도 바꿔 봐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정도 애정이 있는 대상은 가족 더하기 열 손가락 정도니 대부분 단조로운 뉘앙스의 부재를 참는다.


이런 평범하고도 부질없는 이야기를 열 줄 넘게 쓰고 있는 이유는 세가지이다. 첫째, 브런치가 글 쓰는 작가에게는 성실함이 작가의 책무라는 경고문을 계속 보내오고 있다. 둘째, 가끔 내 글을 읽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이 고맙고, 반갑고, 신기해서. 셋째,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일단 기분은 나쁘겠지만 몇 개의 새 단어를 개발하여 나와 전화 통화나 문자에 사용해준다면 무척 고마울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기여할 뉘앙스의 영역을 열어주면 좋겠다. "당신은 색에 둔감해.", "당신은 강아지에 관심이 없더군." "당신은 왜 소리에 그렇게 민감하지?" 이런 사소한 말이어도 환영. 서로의 뉘앙스는 취향이나 호불호이니, 사람들 다른 것도 심심한 세상에 재미 하나 더하는 일.


그것도 인격의 아주 미묘한 뉘앙스.


전공 불문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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